2 나의 잡글 152

인물 대신 사상을

1. 선생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기쁜 일은 무엇보다도 선하고 훌륭한 제자와의 재회일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나보다 인격적으로 더 훌륭한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다. 몇몇 졸업생을 생각하면,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벌컥 솟아오르곤 한다. 이들에 대해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느낄 때도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어느 대목이 생각난다. 사형 당하게 된 친구는 모친상을 당하여, 가장 절친한 친구를 볼모로 구금케 하고, 고향에서 장례를 치른 뒤 헐레벌떡 감옥으로 돌아온다. 이때는 갇혀 있던 친구가 처형당하기 위해 옥문 밖으로 끌려오던 참이었다. 두 젊은이는 옥문 앞에서 뜨겁게 포옹한다. 죽음조차 나눌 수 있는 친구 - 우리에게 이러한 친구가 있는가? 2. 대학에 근무하면서 나는 세 가지 사항을 항상 아쉽게..

2 나의 잡글 2021.03.08

교복 유감

1. 교복 착용에 찬성하는 학생들: 대학 입시 정시 모집의 면접 시간에 대다수의 수험생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복 입는 것을 찬성해요. 등교할 때 혹은 외출 시에 무슨 옷을 입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학교에 대한 애정 혹은 소속감을 느낄 수 있어요. 사복은 엄청난 빈부 격차를 드러내게 하거든요.” 비단 학생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부형들 역시 여전히 교복 착용에 찬성하고 있는 것 같았다. 빈부 차이가 드러날까 봐 교복을 입는다니... 정말로 눈 가리고 아옹하는 이야기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은 교복 착용에 찬성하고 있다. 이는 무척 기이한 일이다. 자고로 사람들의 견해는 주어진 구체적 환경에서 파생되어 나오는 법이다. 가령 인도네시아에서 대마초를 피우다 적발된 자는 사형 당하는 반..

2 나의 잡글 2021.03.06

패스트푸드 유감

1. 패스트푸드, 젊은이들의 환상 “이리 오세요. 당신은 맛있고도 우람한 ‘빅맥’을 단 돈 2002원에 음미할 수 있어요. 300원만 주면, 당신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어요. 당신의 꿈과 사랑은 오로지 이곳에 있어요. 이곳으로 오세요.” 젊은이들은 패스트푸드 점으로 향한다. 무엇이 그들을 흥분하게 하는가? 맥도날드 앞에 놓여진 글자 M은 마치 마릴린 몬로의 풍만한 젖가슴처럼 불룩하다. 버거 킹은 마치 궁전을 방불케 한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젊은이들이다.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에게는 줄 서서 기다리는 습관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예외이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그들이 고대하는 것은 햄버거만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혹시 연인을 만날지 모른다. 그들은 은근히 꿈을 꾼다. 언젠가는 늠름한 백..

2 나의 잡글 2021.02.23

서로박: 나를 매료시킨 세 권의 책들

아래의 글은 약 20년 전에 집필된 것인데, 다시 읽어보니 무척 감회가 새롭습니다. ................................ 친애하는 K, 당신은 나에게 학창 시절에 감명 받았던 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자칭 열정적인 문학도였던 나는 남들에 비해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으므로 무슨 책을 소개할까? 하고 오랫동안 망설여야 했습니다. 당시에 나는 교지, 대학신문 가리지 않고, 잡문, 평문을 발표하여 원고료를 타먹곤 하였습니다. 너무 자주 글을 발표하게 되자, 학우들에게 “독식 (独食)한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하여 “池高元” (거꾸로 쓰면 “원고지”라는 뜻^^)이라는 가명으로 글을 발표했으니까요. 고료가 나오면 나는 그 돈으로 막걸리 한 잔 걸치고, 잡지 혹은 단행본 몇 권을 구..

2 나의 잡글 2021.02.20

앵무새떼가 아니었더라면...

- 오늘날 미국에서 콜럼버스의 동상은 파괴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원주민을 학살한 사람은 콜럼버스가 아니라, 이후에 신대륙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던 정복자들이었다. - 콜럼버스는 다만 한사람의 항해사이기 이전에 지상의 천국을 찾겠다는 강인한 갈망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여타의 다른 항해사와는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항해사이자, 몽상가요, 혁명가이자, 실천가가 바로 콜럼버스였습니다. 그에게는 엘도라도가 바로 에덴이었고, 에덴이 바로 엘도라도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하면 마젤란은 다만 향료를 찾으려는 부탁으로 세계를 한 바퀴 돌았던 탐험가에 불과합니다. 마젤란은 250명의 선원과 5척의 배를 거닐고 대서양을 떠난 뒤 태평양을 건너다 필리핀에서 살해당합..

2 나의 잡글 2021.02.17

서로박: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이에게

“고등학교 수업이 담수어 양식이라면, 대학 수업은 바다 양식이다. 고등학교에서 물고기는 건네주는 먹이 먹고 강 따라 헤엄치면 그만이지만, 대학에서는 스스로 먹이를 찾아먹어야 하고, 망망대해에서 제 갈 길 찾아야 한다.“ (서로박) 1. 친애하는 J, 문학 이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학을 통해서 경험의 폭을 넓히는 것이 교육상 더 효과적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죄송한 말입니다만) 마치 길들여지지 않은 셰퍼드 개처럼 영특하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삶과 문학에 대한 어떤 안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다양한 주제를 담은 작품들을 수업 시간에 곁들여 다루곤 합니다. 작품들 가운데에는 사랑과 섹스에 관한 것들, 계급투쟁과 노동 해방에 관한 것들, 여성 문제, 환경 문제, 사회적 갈..

2 나의 잡글 2020.11.28

우리가 선호하는 학문 연구의 나쁜 경향

S씨,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나쁜 (?) 학문적 경향은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난해한 학문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일수록, 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사람들은 쉽게 이해되는 것에 대해 코웃음 치며, 이를 경시합니다. 무릇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무엇을 대하게 되면, 그 속에 어떤 사상적 깊이가 내재해 있다고 지레 짐작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떤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은 인간으로 하여금 궁금증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요? 그렇기에 사람들은 그 무엇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려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무엇에 대한 본질을 파악하게 되면, 사람들은 실망에 가득 찬 채 중얼거리지요. “아, 내가 이따위 것을 알려고 그렇게 노력했다니.”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

2 나의 잡글 2020.11.09

학문, 교육, 영어중심주의

1. 철학을 전공하는 어느 동료가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영어 하나만 마스터하면 충분해. 모든 책들이 순식간에 영어로 번역되는 세상이니까.” 그의 말속에는 진실과 거짓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각종 언어로 기술된 책들은 오늘날 순식간에 영어로 번역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만 마스터하면, 모든 정보를 다 입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속에는 엄청난 잘못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번역의 질적 측면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게 그 잘못입니다. 2. 서양의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니, 영어로 번역된 책들을 자주 구해 읽곤 합니다. 과문한지 몰라도, 나는 영어로 번역된 책들 가운데 탄복할만한 것을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루터의 성서만큼 훌륭한 영어 판 성서를 나는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

2 나의 잡글 2020.10.01

서로박: 윤노빈의 한울 사상 (5)

17. 생명 사상을 태동해내는 엔텔레케이아: 그렇지만 윤노빈의 신생의 철학은 차제에 얼마든지 어떤 새로운 각도로 발전될 수 있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한울 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모든 권위적 체제에서 태동하는“인위적 人偽的” 죽임을 간파하고, 한울의 생존을 위해 실천적으로 투쟁해나가야 합니다. 『신생철학』이 간행된 지는 벌써 40년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한반도는 분단 상태로 남아 있으며, 생태 문제, 과학 기술 내지 핵문제 등,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난제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가 전체주의의 정책으로 일관하는 제반 국가들은 개개인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분단의 극복 외에도 국가의 거짓 이데올로기에 대응하며, 자유롭고도 평등하게 그리고 ..

2 나의 잡글 2020.09.09

서로박: 윤노빈의 한울 사상 (4)

14. 사고는 협동적 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인간은 신의 섭리에 따라 유동하다가 사라지는 티끌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나”는 상대방의 응답 속에서 언제나 우리일 수 있습니다. (김상봉: 287). 인간의 행위는 우주 전체를 고려할 때에는 휴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렇지만 윤노빈에 의하면 소우주로서의 인간은 오로지 상호 도움을 통해서 대우주에 해당하는, 자연 속의 “불카누스”를 포괄하는 가장 고귀한 생명체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시는 인간은 모든 불신, 거짓, 갈등, 싸움, 구속, 분단 등을 극복하고,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이웃과 한울타리 속에서 서로 협동하고 살아갈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사유 (思惟)는 윤노빈에 의하면 사유 (私有)가 아닙니..

2 나의 잡글 2020.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