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151

문학이란 무엇인가?

김훈: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필자: 문학이 하찮은 것이라는 그의 고백은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그렇지만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자그마한 것이지만, 완전히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갈망과 해원을 기술하는 일이다. 또한 자기 성찰과 기다림이 문학 속에는 있다. 인간의 갈망과 현실적 가능성 - 문학작품은 김훈의 말대로 실제 삶만큼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무작정 폐기처분할 수는 없을 정도로 존재 가치를..

2 나의 잡글 2021.06.18

서로박: 부마항쟁과 라보에시 (2)

그래, 독재자는 누구를 사랑할 수도, 사랑 받을 수도 없다. 우리는 70년대 말경에 라보에시의 책을 간행할 계획을 품고 있었다. 이는 그 자체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닌가? 라보에시는 유신 말기와 광주 사태의 숨 막히는 역사적 변화 과정을 그야말로 예언적으로 시사해주었던 것이다. 어느 날 친구는 서울에 거주하는 묘령의 여대생으로부터 면도날 들어 있는 백지 편지 한통을 받았다고 했다. 추후 알게 된 소문이지만 부산의 많은 학생들이 면도날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수염 깎지 않는 남쪽 대학생의 외모를 질타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면도날은 “데모하지 않는 부산의 대학생들이여, 차라리 남근이나 잘라버려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북녀 (北女)들의 잔인한 독려 때문이었..

2 나의 잡글 2021.06.16

서로박: 부마항쟁과 라보에시 (1)

“자네 번역은 엉터리야.” 윤노빈 선생님은 1981년 초 부산에서 출국을 앞둔 제자에게 그렇게 일갈하였다. 1980년 5월에 부산의 어느 출판사는 나의 번역서, “보에시, 노예근성에 대하여”를 간행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그 소책자를 거의 잊고 살았다. 1989년 여름, 마치 오디세우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10년간의 방랑을 끝내고 귀국하여 낙향하였다.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까까머리 제자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때 그 소책자가 흩어진 서가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러나 반가움은 하나의 순간적 감정에 불과했다. 소책자를 다시 읽었을 때, 거기서 많은 오역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윤 선생님의 말씀은 엄연한 사실로 확인되고 있었다. 나의 얼굴은..

2 나의 잡글 2021.06.16

번역, 이중의 해석학 그리고 학문

1. 재미없는 통역 청취하기 서울 근처의 모 대학에서 학술 대회가 있었다. 우연히 거기에 참석한 나는 독일의 모 대학 교수의 엔지오 (NGO)에 관한 강연을 듣고 있었다. 교수의 강연 자체가 문어체 (文語體) 그리고 복합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통역을 맡은 여성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열심히 경청하는 데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체로 그미는 맥락을 전해주기 보다는, 단어와 단어를 짜 맞추는 데 급급한 것 같았다. 문장들은 정확하지 않았고, 생경한 단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통역한다고 해도, 그미보다 더 잘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내용이 나에게 낯선 것이었으니까. (...) 강연 도중에 곁에 앉은 동료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동료는 전..

2 나의 잡글 2021.06.09

핀란드와 한국의 국회의원

(1) 선거철 외에도 일반 사람들을 만나주었으면 좋겠다.: 핀란드에서는 정치가라고 해서 그들이 일반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국회 위원들은 대개의 경우 일반 사람들 위에 군림한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가장 큰 근본적 차이일 것이다. 왜 많은 수의 한국 국회위원들이 안하무인 (眼下無人)처럼 행세하는지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들은 일반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게 때문에 그들의 눈앞에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아래 것들을 향해 “깔”본다. (2)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위한 법을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핀란드 정치가들은 크든 작든 간에 법 자체를 몹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가들은 법 자체보다는 자신의 “힘”, 세력, 입지 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핀란드의..

2 나의 잡글 2021.05.26

마르크스, 뮌처, 혹은 악마의 궁둥이 서문

“사고는 한계를 뛰어넘는 일을 일컫는다.” (Ernst Bloch) “블로흐를 비판하지 않은 채, 그의 문장을 인용하는 것은 하나의 배반이다.” (편역자) "희망은 확신이 아니다. 희망은 위험에 둘러싸여 있다. 그것은 위험에 대한 의식이다.” (Ernst Bloch) 1. 친애하는 B, 블로흐 읽기를 연속으로 간행하겠다고 호언장담했으나, 이후의 진행은 그다지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유토피아의 역사를 역사적 비판적 관점에서 기술하려는 의도는 세부 사항에 있어서 여러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토피아의 연구에서 동양의 영역을 제외했음에도, 논의에 대한 고증 작업은 여간 만만치 않았습니다. 자고로 학자는 -소설가와는 달리- 자발적 착상만으로 펜이 굴러 가는대로 글을 쓸 수 없으며, 사고가 하나의 결론에..

2 나의 잡글 2021.05.08

서양 문학 속의 호모 아만스. 서문

“산문작품은 낯선 지역으로 들어서는 통로이며, 자신을 낯설게 반추할 수 있는 거울이다.” (필자) “’이 배는 오 분 후에 가라앉는다.‘ 신드바드의 이러한 외침은 먼 훗날 잠수함을 발명하게 했다.” (필자) 1. 친애하는 J, 본서는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울력, 2017)의 속편으로서 자료집 내지 사례집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통상적인 사례집과는 좀 다릅니다. 왜냐하면 필자는 인간 삶의 제반 사회심리적인 갈등, 개개인의 고뇌와 해원 등을 무엇보다도 서양의 문학작품 속에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서양문학에 나타난 사랑과 성에관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정리하였습니다. 이야기들은 당신을 감동시키거나, 당신으로 하여금 타자의 어떤 심리적 하자를 간파하게 할 것입니다. 이로써 새롭게..

2 나의 잡글 2021.04.27

처음 투표하게 된 J에게

1. 친애하는 J, 이제 당신은 선거권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위해서 선거에 관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주위에는 온갖 현수막이 나돌고, 아줌마들이 길가에 서서 90도 각도로 인사합니다. 이 무렵이면 행인들은 분에 넘치는 칙사 대접을 받습니다. 현수막에는 후보자의 이름만 뎅그렁 적혀 있습니다. 그가 어떠한 정책을 펴나가겠다는 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들러리 일회용품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입맛이 씁쓸해오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2. 선거는 항상 평일에 치러집니다. 그렇기에 일하는 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투표장에 가기가 어렵습니다. 일부 정치가들은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한 사실입니다. 어째서 우리는 수요일에 선거를 치러..

2 나의 잡글 2021.03.28

갇힌 사회의 통로 뚫기

1. 잘 지내시는지요? 드물게 당신에게 미안한 생각이 떠오르곤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글 속에는 간간이 오류가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탁월한 지성의 소유자도 잘못을 저지르는 데 비하면, 나 같은 무명의 지식인이 범하는 작은 실수는 용서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나는 솔직하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가요? 그래도 나는 아웃사이더와 인파이터의 정신에 가급적이면 충실하려 합니다. 내적으로는 끊임없이 자신의 잘잘못을 따져나가고, 외적으로는 세상의 숲과 나무를 바깥에서 바라보려고 합니다. 나의 시도가 성공을 거두는가, 아니면 쓰라린 실패를 맛보는가? 하는 문제는 여기서 별개입니다. 2. 언젠가 나는 감히 남한 사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 적이 있습니다. 남한 사회는 정치적으로는 유교주의, 경제적으로는 독..

2 나의 잡글 2021.03.23

인물 대신 사상을

1. 선생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기쁜 일은 무엇보다도 선하고 훌륭한 제자와의 재회일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그리고 대학에서 나보다 인격적으로 더 훌륭한 젊은이들을 많이 만났다. 몇몇 졸업생을 생각하면,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벌컥 솟아오르곤 한다. 이들에 대해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느낄 때도 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어느 대목이 생각난다. 사형 당하게 된 친구는 모친상을 당하여, 가장 절친한 친구를 볼모로 구금케 하고, 고향에서 장례를 치른 뒤 헐레벌떡 감옥으로 돌아온다. 이때는 갇혀 있던 친구가 처형당하기 위해 옥문 밖으로 끌려오던 참이었다. 두 젊은이는 옥문 앞에서 뜨겁게 포옹한다. 죽음조차 나눌 수 있는 친구 - 우리에게 이러한 친구가 있는가? 2. 대학에 근무하면서 나는 세 가지 사항을 항상 아쉽게..

2 나의 잡글 2021.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