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패스트푸드 유감

필자 (匹子) 2021. 2. 23. 10:48

1. 패스트푸드, 젊은이들의 환상

 

“이리 오세요. 당신은 맛있고도 우람한 ‘빅맥’을 단 돈 2002원에 음미할 수 있어요. 300원만 주면, 당신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어요. 당신의 꿈과 사랑은 오로지 이곳에 있어요. 이곳으로 오세요.”

 

젊은이들은 패스트푸드 점으로 향한다. 무엇이 그들을 흥분하게 하는가? 맥도날드 앞에 놓여진 글자 M은 마치 마릴린 몬로의 풍만한 젖가슴처럼 불룩하다. 버거 킹은 마치 궁전을 방불케 한다.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개 젊은이들이다.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에게는 줄 서서 기다리는 습관이 없지만, 이곳에서는 예외이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그들이 고대하는 것은 햄버거만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그곳에서 혹시 연인을 만날지 모른다. 그들은 은근히 꿈을 꾼다. 언젠가는 늠름한 백마의 기사가 신발을 건네줄지 모른다고. 로테리아에서 아름다운 롯데가 나타나 사랑을 고백할지 모른다고. 그렇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젊은이들은 신데렐라, 아니면 베르테르가 된다.

 

 

   2. 음식 문화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

 

맥도날드의 M 글자, 버거 킹의 K 글자 - 그것은 큰 것을 상징한다. 우람하고 풍만한 것은 작은 고추 콤플렉스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M, 그것은 무제한적으로 황금을 주무르는 미다스 (Midas)의 이니셜이다. 젊은 사람들은 크고 무제한 적인 것을 좋아한다. 절약하는 기성세대는 그들 눈에는 그저 쫀쫀한 자들로 보일 뿐이다.

 

M. M.은 마릴린 몬로의 이니셜인가, 아니면 마크 맥과이어의 그것인가? 맥과이어가 우람한 팔을 휘둘러, 50개 이상의 홈런을 치면, 멀리서 남한 사람들도 열광한다. 현실의 당신은 작지만, 꿈만은 우람하지 않는가? 당신은 작은 의자에 엉덩이를 비집고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꿈을 꾼다, 언젠가는 자신도 그처럼 돈을 많이 벌고, 멋진 여자를, 혹은 멋진 남자를 차지하리라고.

 

그렇지만 우리는 패스트푸드 점이 하나의 위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폭력으로서, 은밀히 한국 문화를 잠식해 나간다. 문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게 음식 문화 아닌가? 음식 문화를 통해서 미국 자본주의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은 은밀하게 뻗어나가는 법이다.

 

   3. 식사 - 빨리 집어삼키는 일

 

패스트푸드 점은 단순 노동자에게 적격이다. 일을 열심히 하려면, 밥을 빨리 먹어야 한다. 그래, 일하는 개미들은 음식을 집어삼켜야 한다. 성욕 역시 외면되고 있다. 무릇 서두르는 자는 만족을 누리지 못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노동자들에게는 이를 숙고할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다.

 

사실 패스트푸드 점은 주로 독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에서 매상을 올리고 있다. 요즈음에는 동구에서도 패스트푸드 점의 사업이 번창 일로에 있다고 한다. 이에 비하면 라틴어 권 나라에서는 패스트푸드 점이 거의 죽을 쑨다고 한다. 가령 프랑스 사람들은 아무리 바빠도 포도주 쫄쫄 빠는 일과 달팽이들을 찍찍 찢어먹는 일 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 라틴 계열의 사람들의 평균 점심시간은 한 시간 반 이상이라고 한다.

 

“여가”란 라틴어로 “Otium”이며, “일”은 “Necotium”으로 명명된다. 일이란 고대 로마 사람들에게 “비 여가 (Nec-Otium)”로 간주되었다. 이에 반해 세계 공용어 “아르바이트”는 독일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반해 “여가”는 독일어로 “Freizeit”라고 한다. 여가란 독일인에게 일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왜 남산에 있는 독일 문화원에는 식당 코너가 아예 없는 것일까?

 

 

   4. 가득 찬 쓰레기통, 우리가 닭인가?

 

패스트푸드 점의 쓰레기통은 언제나 차 있다. 그곳에서는 그릇, 수저, 컵 등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재활용 물건이 있다면 쟁반밖에 없다. 혹자는 패스트푸드 점의 쓰레기는 종이, 플라스틱뿐이며, 전통 음식점의 음식물 쓰레기와는 다르다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사료용 음식물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남기는 게 오히려 인간적이 아닌가? 그래, 생태계의 파괴를 고려할 때 썩는 물질이 오히려 무해하지 않는가?

 

패스트푸드 점에서 잘 팔리는 제품 가운데 치킨 너겟이 있다. 대량으로 사육되는 닭의 목살... 수년 전 미국인들은 더 많은 너겟을 생산하기 위해 닭의 종자를 개량하였다고 한다. 이로써 지금까지 목살이 굵은 닭이 대량으로 생산되어 왔다. 지금까지 우리가 유전자가 조작된 닭고기를 뜯어먹어 왔을까?

 

언젠가 패스트푸드 점에서 너겟을 먹다가, 일순간 나 자신도 치킨 한 마리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닭살이 돋은 적이 있다. 장자 (莊子)의 시각을 빌면, 나는 거대 자본의 집단 사회에서 이리저리 조종당하는 짐승 한 마리에 불과한지 모른다.

 

   5. 햄버거, 아니면 느리게, 적게 먹기

 

우리는 잘 사는 데 익숙해 있다. 빠른 죽음에 익숙해 있다. 큰 물건에 익숙해 있다. 외국 제품에 익숙해 있다. 물량주의에 익숙해 있다. 서양 얼굴에 익숙해 있다. 일류에 익숙해 있고, 부유함에 익숙해 있다. 진보에 익숙해 있고, 제1 세계에 익숙해 있다. 승리에 익숙해 있다. 죽음을 망각하는 삶에 익숙해 있다. 우리는 그냥 익숙해 있다.

 

“이리 오세요. 당신은 맛있고도 우람한 ‘빅맥’을 단 돈 2002원에 음미할 수 있어요. 300원만 주면, 당신은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어요. 당신의 꿈과 사랑은 오로지 이곳에 있어요. 이곳으로 오세요.”

 

햄버거는 거지에게 맞지 않는다. 햄버거는 노인에게 맞지 않는다. 햄버거는 즐기며 살아가는 라틴 사람에게 맞지 않는다. 햄버거는 숏다리에게 맞지 않는다. 햄버거는 수사에게 맞지 않는다. 햄버거는 게으른 자에게 맞지 않는다. 햄버거는 적게 먹는 농부에게 맞지 않는다. 햄버거는 광우병 환자에게 맞지 않는다. 햄버거는 채식하는 음악가, 폴 매카트니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다. 햄버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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