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브롭스키의 또 하나의 장편소설 『리타우의 피아노』는 (그가 죽은 뒤 일 년 후인) 1966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작품의 테마는 -『레빈의 방앗간』과 마찬가지로- 동유럽 지역에서의 여러 민족들의 공존에 관한 문제입니다.
소설의 틀을 구성하는 배경은 『레빈의 방앗간』과 마찬가지로 다차원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틸시트 출신의 두 남자, 김나지움 교사, 보이크트 (Prof. Voigt)와 관현악 단장인 가벤 (Gawehn)은 함께 작업하여, 하나의 오페라를 쓰려고 합니다. 그들은 오페라의 등장인물로서 리타우 지방의 민족시인, 크리스트요나스 도넬라이티스 (Kristijonas Donelaitis)를 택합니다. [도넬라이티스는 1743년부터 1780년 사망하기까지 톨밍케멘의 목사이자 시인이었습니다. 기압계, 체온계 그리고 세 개의 피아노 생산자이기도 했던 그는 리타우 지방의 민족적 삶을 노래한 전원시에 해당하는 「사계」를 썼는데, 이 작품은 리타우 문학의 효시로 평가되곤 합니다.]
보이크트와 가벤은 도넬라이티스의 행적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1936년 요한 축제일 (6월 24일)에 메멜, 빌키슈켄 등지로 여행을 떠납니다. 이때 그들은 리타우의 빌키슈켄에서 리타우의 한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민요 수집가이자 언어 연구가로 그 지방 시골 마을 선생, 포츠카 (Potschka)였습니다.
세 사람은 요한 축제일에 독일과 리타우의 국가 동맹을 축하하는 분위기에 휩쓸리게 됩니다. 독일은 어느새 이곳까지 국가 사회주의적 정책 및 유대인 탄압 정책을 실행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리타우 지방에서는 두 나라의 동맹을 찬양하는 그룹과 그렇지 않는 그룹 사이에 갈등이 온존하고 있었지요. 가령 민족주의의 지조를 지닌 사회주의자들이 문화 동맹이라는 미명으로 어디론가 끌려가서 고문당하거나 살해당하곤 했습니다. 보이크트는 오페라를 만들어 평화로운 공동의 삶에 기여하려고 했는데, 이 작업은 완성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
리타우 출신의 사람인 포츠카는 독일 여인, 투타 겐드롤리스와 뜨겁게 사랑을 나누었는데, 이 때문에 주위로부터 몰매를 맞았다고 합니다. 그가 어떠한 계기로 화를 입었는지에 관해서 소설 속의 화자는 그저 추측할 뿐입니다. 화자는 마지막 장에서 실제 현실과 환상적인 현실을 구별하지 않은 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게 바로 보브롭스키 산문의 중요한 특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포츠카는 “존재하지 않는 탑 ein Turm, der es nicht gibt”위에 올라가, 그곳에서 도넬라이티스의 삶 속에 자신을 완전히 몰입시킵니다. 평소에 포츠카는 시인 도넬라이티스를 무척 존경했는데, 이따금 자신도 민족 시인처럼 좋은 작품을 창조하리라고 꿈꾸곤 했습니다. 화자는 이 점을 중시하며 결말을 실제 현실 반, 꿈의 현실 반으로 묘사합니다.) 포츠카는 다음과 같은 두 개의 가상 속에서 몽환적으로 묘사됩니다. 즉 그는 한편으로는 나치의 끄나풀에 의해 발목 잡힌 채 불려 내려와 취조를 당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 포츠카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이고도 정확한 감각을 한 번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이는 오로지 그의 애인 투타의 도움 때문입니다.
독자는 감춰진 몽환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과제와 마주치게 됩니다. 이는 소설적 의미를 스스로 찾게 하려는 작가의 배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나는 소설의 결말을 작가 특유의 도전적 몽환의 기법이라고 명명하고 싶습니다. 얼핏 불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에피소드, 그림에 대한 설명, 역사에 대한 개괄적 언급, 간간이 삽입되어 있는 시 구절 등은 보브롭스키의 상기한 배려와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소설은 일견 일상적 삶과 전원 목가적인 현실 그리고 리타우 사람들의 관습과 태도 등을 평온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소설의 겉모습일 뿐입니다. 소설 속에서 묵시적으로 드러나는 작가의 신랄한 비판은 권력과 금력지향적인 인간 동물로 향하고 있습니다. 지적 야수인 인간 동물은 때로는 (혹은 더러는?) 인종 갈등을 부추기고, 나아가서는 갈등과 투쟁을 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밖에 보브롭스키는 소설 창작을 통해 (도넬라이티스의 삶에서 보여주듯) 이타주의 사랑의 실천 행위를 강조하였습니다. 도넬라이티스의 자기 책임 의식, 기독교적 박애에 바탕을 둔 이웃 사랑 그리고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 등은 결코 사장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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