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1) 귄터 드 브륀의 '부리당의 당나귀'

필자 (匹子) 2023. 5. 21. 10:25

친애하는 B, 흔히 사람들은 부리당의 당나귀에 대한 비유를 언급하곤 합니다. 당나귀 한 마리는 동일한 양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초 더미 사이에서 서성거립니다. 놈은 어느 건초 더미를 선택하지 못하고 망설이다 결국 굶어 죽습니다. 이러한 비유는 중세의 철학자, 부리당에 의해서 언급된 바 있는데, 나중에 프로이트에 의해서 “사랑과 미움이라는 심리적 양립 감정 Ambivalenz”으로 설명되었습니다. 이로써 프로이트는 자신이 오랫동안 숙고해오던 정서적 모순 관계를 해명하고, 이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적용하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가설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즉 부리당의 당나귀의 비유는 머릿속에서 추상적으로 상정해낸 우화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현실적 상황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 공간에서는 배고픈 당나귀는 갈등을 느끼기는커녕 즉시 한 방향으로 달려가 하나의 건초더미를 먹어치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리당의 당나귀의 비유가 인간의 열정 (affectus)에 그대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이를 달리 표현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가 -시간적 간격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할 때- 두 여자 (혹은 두 남자)에 대해 사랑의 (혹은 미움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귄터 드 브륀은 소설적 소재로서 부리당의 당나귀를 택해, 어느 구 동독인의 사랑의 삶 내지는 간통의 문제를 묘파하였습니다. 40대의 남자 카를 에르프는 아내 엘리자베트 그리고 직장에서 알게 된 브로더 양 사이에서 애정적 갈등을 느낍니다. 부리당의 우화에서 당나귀는 한쪽을 선택하지 못해서 결국 굶어 죽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두 사람 사이에서 방황합니다. 이로써 드 브륀은 60년대에 세계에서 가장 이혼율이 높았던 구동독에서의 성생활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일차적으로 규명하려 하였습니다. 주인공, 40대 남자인 카를 에르프 (Karl Erp)는 구동독 사회에 살고 있는 중산층 인물입니다. 동베를린의 도서관의 사서 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이름난 학자는 아니지만, 특정 영역에서 학문적으로 전문가적 수준을 이룩했으며, 직장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카를 에르프는 정치적으로 국가 정책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의 양식은 철저히 시민주의의 특징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히틀러 치하의 시민주의 사회에서 자라난 사람이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에서 성년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가 전통 관습과 변화된 삶의 양식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게다가 카를 에르프는 후천적으로 우유부단하고, 이기적입니다. 심지어는 브로더 양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기 기만성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을 찾아온 브로더 양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칼 에르프는 직장 동료들이 눈치를 채든 않든 아랑곳하지 않고 브로더 양에게 접근합니다. 그렇지만 브로더 양의 관심은 처음부터 학문적인 면에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미는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카를과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누었지만, 의도적으로 오로지 동료로서 칼을 대합니다.

 

 

 

 

 

 

카를의 부인, 엘리자베트는 수동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미에게서 뚜렷한 특성이 발견되지 않는데, 이는 그미가 항상 자기 견해를 감추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타인에게 친절하고 조용한 엘리자베트는 “요정과 같은, 합당한 일에 충실한 여자” 이며, 항상 “형체 없이 선을 행”합니다 (S. 64). 카를이 “자만심, 허영 그리고 소유욕 때문”에 그리고 “우연, 고독 그리고 약간의 동정심” 때문에 그미와 결혼했다고 말했을 때, 엘리자베트는 화내지 않는, 그러한 심성의 소유자입니다. 십여 년 전에 가난했던 카를 에르프는 약간의 배경을 지닌 가문 딸, 엘리자베트와 결혼하였습니다. 만약 자신의 결혼 생활이 위험에 처하게 될 경우 자신의 경제적 수준이 하락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엘리자베트 때문에 소유물에 집착하게 되었고, 자유와 젊은 시절의 꿈을 희생”하였다고 생각합니다. (S. 16) 카를 에르프가 가출을 결심하고 물건을 챙길 때, 엘리자베트는 카를과 브로더 양과의 관계를 지인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카를이 가출한 뒤 그미는 자신이 정상적 궤도를 돌고 있는 혹성에 붙어 있는 위성에 불과하다고 뒤늦게야 깨닫습니다. 그 후 그미는 카를의 친구 테오 하슬러의 도움으로 스스로 현대 회화 및 조각과 관계되는 직장에서 일하려고 합니다.

 

카를 에르프가 사귀게 된 브로더 양 (孃)은 노동자 계급의 출신으로서 매력적인 젊은 여성입니다. 그미는 영리하고, 단호하며, 강인한 개성 및 확고한 견해 등을 지니고 있습니다. 브로더 양은 “강하고, 접근하기 어려우며, 저항적”입니다. 도서관내에서 일하기를 원하는 수습사원인 그미는 사회 심리학에 관한 책들을 읽다가, 카를 에르프가 쓴 논문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에게 접근합니다. 그미는 카를을 알기 전부터 일찍이 사랑의 고통을 경험한 바 있었습니다. 그미의 옛 애인은 시를 쓰는 “자유 독일 청년 (FDJ)”에서 관리로 일했는데, 서방으로 도주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후 우연한 오해로 질투 사건에 연루되어 브로더 양은 애인과 헤어진 바 있습니다. 이 경험 때문에 그미는 대부분의 남성에 대해 그다지 커다란 기대감을 지니지 않으며, 이러한 비판적 거리감은 카를에게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S. 48). 그렇지만 브로더 양은 카를 에르프와는 달리 표리부동 (表裏不同)하게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앞으로의 거취에 대해 확고하고, 매사에 스스로를 개방시키며 살아갑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칼은 친절한 남자이지만, “자신의 자유를 구가하지 못하는 겁쟁이”에 불과하며, 그가 원하는 것은 그저 한 번의 육체적 놀음에 불과하다고 지레 짐작합니다.

 

 

 

 

 

 

카를 에르프는 브로더 양의 냉담한 마음을 간파하고 그미와의 애정 관계를 단념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성탄절 그의 발걸음은 우연히 그미에게로 향합니다. 이때 브로더 양은 칼에게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미가 카를 에르프를 애인으로 받아들이는 이유는 다음의 사실에 있었습니다. 즉 적어도 카를만큼은 뭇 남자들과는 달리 자신을 “객체”로, “동침의 대상”으로 그리고 “하녀”로 대하지 않고, 진지하게 생각하고 자신을 “존중”하는 것 같았습니다 (S. 113). 이러한 태도로 미루어 브로더 양은 이미 해방된 여성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육체적 사랑을 나눕니다. 결국 카를 에르프는 자신의 물건들을 챙겨 아내와 자식을 떠나게 되고, 브로더 양과 동거 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로써 카를은 지금까지 누리던 편안함을 포기하고, 브로더 양의 좁은 집에서 살아갑니다. 연인과 함께 일하는 게 거추장스러워서 카를은 사표를 제출하기도 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