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브라쉬의 극작품 「사랑스러운 리타 Lovely Rita」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1975년에 발표되었습니다. 원래 이 제목은 비틀즈 Beatles의 노래에서 유래합니다. 이 작품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라는 LP에 수록되어 있는 곳입니다. 비틀즈의 멤버인 폴 메카트니는 철저할 정도로 질서를 준수하는 미국의 “여경찰 Meter Maids”을 비아냥거리고 싶었는데, 이로써 탄생한 곡이 “사랑스러운 리타”입니다. 이에 착안하여 브라쉬는 리타라는 인물을 아예 정반대의 인물로 다루었습니다.
주인공 리타는 17세의 리타 그라보 Rita Grabow는 처음부터 사회적 질서의 편에 서있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극작가는 여주인공으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합니다. “노동은 삶의 쾌락을 지니지 않는 자의 일감이지요.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는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할 뿐이지요. 예술가, 아니면 범법자가 바로 그들입니다.” 대부분의 노동은 극작가에 의하면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한 일감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는 쾌락과 흥미로움을 가져다는 노동은 극히 드문 법이지요.
사랑스러운 리타 공연 장면. 얀 사보트카가 사진을 찍었다.
극작가는 전후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여주인공을 묘사합니다. 사건의 배경은 제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시점의 베를린입니다. 주위 환경은 폐허의 아수라장을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필품을 구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리타는 감옥에서 탈옥한 다섯 명의 여자와 버려진 기차 안에서 생활합니다. 어느 날 그미는 점령군 장교와 우연히 마주칩니다. 장교는 그미보다 무려 10년 이상 나이든 남자입니다. 소련군 점령 지역의 장교인 것으로 미루어, 그는 소련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어느 날 장교는 리타에게 접근하여 강제로 섹스하려 합니다. 이때 리타는 거절하지 않고, 장교에게 몸을 허락합니다. 왜냐하면 장교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리타의 마음속에는 오래 전부터 한 가지 꿈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영화배우로 성공하려는 꿈이었습니다. 점령군 장교는 삶에 약간의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데 협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리타가 여성으로서 평범하게 살기를 바랄 뿐입니다. 장교의 관심사는 오로지 리타의 젊고 싱싱한 몸으로 향할 뿐입니다. 리타는 자신이 성노리개라는 사실에 대해 분개합니다. 어느 날 그미는 침대에서 총을 꺼내 장교를 쏴죽입니다.
리타는 아름다운 몸매를 지녔지만 결코 남성들이 침을 질질 흘리는 “사랑스러운 여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미는 마초들에게 복수를 선언하는 강인한 처녀로 거듭나려고 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제목은 그 자체 리타의 본심에 대한 패러디나 다를 바 없습니다. 브라쉬의 작품 주제는 클라이스트의 극작품 「펜테질리아 Penthesilia」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리타는 고대 그리스의 아마존 여 전사 펜테질리아를 연상시킵니다. 펜테질리아는 어느 결정적인 순간에 사랑하는 적장, 아킬레스에게 칼을 겨누지 않습니까? 리타 역시 사랑하는 마음과 증오하는 마음을 동시에 품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그미는 하이너 뮐러 Heiner Müller의 극작품 「메데아 Medea」 혹은 「햄릿 기계 Hamletmaschine」에 등장하는 참된 여주인공, 오필리아와 유형적으로 거의 동일합니다. 리타는 수많은 마초 권력자 그리고 남성중심으로 유지되는 사회 전체에 통렬한 비난을 가하는 여성입니다.
「사랑스러운 리타」는 다음과 같이 끝납니다. 주인공은 기차에서 생활하는 다섯 명의 여자에게 살인의 범죄를 덮어씌웁니다. 그 후에 그미는 자유를 찾게 됩니다. 불현듯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자신에게 더 이상의 찬란한 미래가 도래하지 않으리라는 절망감 때문이지요. 어느 날 자신이 출연한 영화가 대성공을 거둡니다. 그다지 성의를 보이지 않고 촬영에 임한, 낙태와 관련된 자신의 영화가 아이러니하게도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사랑스러운 리타는 김광선 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성대 출판부에서 간행되었습니다.
'45 동독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폴커 브라운: 힌체와 쿤체 (0) | 2023.07.26 |
---|---|
보브롭스키의 '리타우의 피아노' (0) | 2023.07.17 |
서로박: (2) 귄터 드 브륀의 '부리당의 당나귀' (0) | 2023.05.21 |
서로박: (1) 귄터 드 브륀의 '부리당의 당나귀' (0) | 2023.05.21 |
서로박: 유렉 베커의 '권투선수' (0) | 2023.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