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서로박: 재크 런던의 '철제 발굽' (1)

필자 (匹子) 2020. 9. 22. 10:03

1. 다시 읽어야 할 작가 재크 런던: 친애하는 J, 재크 런던처럼 20세기 초의 미국 자본주의 구조를 예리하게 꿰뚫어본 작가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사회주의라는 진보적 사고를 지낸 채 인민을 계도하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의 노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즉시 절감하였습니다. 자본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허울뿐인 장치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인지한 작가가 바로 재크 런던이었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자본가들은 대체로 이윤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금과 회사 그리고 공장을 지니고 있지만,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시키려고 애를 씁니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반발을 막아야 하고 권력 집단과 서로의 이권을 나누려고 애를 씁니다. 20세기 미국 사회가 그러했습니다.

 

권력자들이 진보적 사고를 지닌 자들을 체제 비판이라는 이유로 탄압하는 동안에,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의 대표를 매수하여 노동자들로 하여금 더 이상 회사와 사회에 대항하여 데모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처했습니다. 언론사와 방송사는 권력자에 의해 매수되어 있었으며, 진보적 대학은 탄압을 당했습니다. 또한 자본가와 권력자들은 교회의 대표자들을 만나 어떻게 해서든 대중들의 비판적 의식을 마비시켜야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모든 제도와 규칙은 일반 대중 그리고 노동자들이 아무런 직접적인 저항을 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21세기 남한 사회를 생각하면 당신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크 런던의 작품은 21세기 초의 한국 사회를 염두에 둘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2. 찬란한 장관을 안겨주는 작가, 재크 런던: 재크 런던 (1876 1916)은 캘리포니아에서 주로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미국 작가로서, 모험 소설 황야의 외침 The Call of the Wild그리고 늑대의 아들 The Son of the Wolf등으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특히 바다 늑대 The See-Wolf리고 자전적인 소설 마틴 에든 Martin Eden은 영화로 제작되어 세인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것은 작가가 북아메리카 클론다이크, 찬란하게 빛나는 캘리포니아 지역, 붉게 혹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태평양 바다를 휘황찬란하게 묘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눈을 감으면, 우리는 마치 재크 런던과 함께 찬란한 태평양 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런던의 정치적 에세이를 잊을 수 없습니다. 유년 시절의 경험, 가난한 하층민에 대한 동정심, 비록 주관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체험 등은 우리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제크 런던은 여행을 좋아하여,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금을 발견하기 위해 알라스카 북극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한계를 뛰어넘는 고행의 길을 통해서 그는 에스키모와 수많은 동물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요트를 타고 하와이, 남태평양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항해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러일전쟁 당시에 종군기자로서 활약하며 한반도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크 런던은 불과 40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혹자는 그가 우울증으로 인하여 자살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혹자는 알콜 중독과 모르핀 과다복용으로 인한 콩팥 기능의 저하로 사망했다고 하는데, 이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3. 벨러미의 작품에 필적하는 유토피아 소설을 쓰자.: 작품 철제 발굽 The Iron Heel는 재크 런던의 유토피아 소설로서 1908년에 발표되었습니다. 1902년에 그는 에드워드 벨러미의 뒤를 돌아보면서 Looking Backward(1888)에 필적하는 대단한 작품을 집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벨러미는 어떻게 하면 미국 사회에서 빈부 격차를 없애고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한 끝에 찬란한 유토피아 소설을 완성했던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의 국가가 만인의 행복을 이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제도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모든 제도와 시스템은 만인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 처음부터 확정되어 있습니다.

 

재크 런던 역시 벨러미의 작품보다 더 나은 체제와 시스템을 설계한 작품을 탄생시키리라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대단한 문학적 명성을 차지한 런던은 무작정 집필에 몰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여러 대학교에서 계급투쟁에 관한 연설을 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1906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작품 집필에 전력투구할 수 있었습니다. 집필은 19068월부터 1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그는 실패한 사회주의의 혁명 그리고 이후의 억압에 관해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4. 급진적 좌파로서의 재크 런던: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런던은 1896, 그의 나이 20세에 미국 사회당에 가입하였습니다. 이후에 미국인들의 평등한 삶을 이룩하기 위해서 힘든 정치 행동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놀라운 언변이 있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연설문과 에세이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붕괴 그리고 의회주의의 방식으로 사회당의 승리를 추구해 나갔습니다. 이를테면 내가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었는가, 계급투쟁1905년에 발표되었으며, 그의 연설문과 글들은 1905년에 발표된 계급의 전쟁 War of the Class에 고스란히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런던은 나중에는 자신의 목청을 어느 정도 낮추었습니다.

 

황야의 외침 The Call of the Wild(1903) 그리고 바다 늑대 The See-Wolf(1905)에는 자신의 집요한 사회주의의 신념이 어느 정도 완화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니체의 영향이 컸습니다. 러일 전쟁 당시에 런던은 한반도에 머물면서 자신이 얼마나 인종적인 편견을 지니고 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다음에 그는 사회당 내의 급진적 좌파에 속해 있었는데, 다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더욱 첨예하게 드러냅니다. 가령 1905년에서 1906년에 걸쳐 런던은 미국의 여러 대학교의 수천 명의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혁명적 자세, 계급투쟁을 위한 무기로서 폭력이 용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