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작가의 의향: 런던은 작품 『철제 발굽』에서 어떻게 해서든 다가올 미래의 끔찍함을 진단하고 이를 독자에게 경고하려고 했습니다. 그는 1900년에 윌리엄 제임스 젠트 W. J. Ghent의 국민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품을 집필했는데, 1905년에 재크 런던은 이에 관한 칼럼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는 1902년에 간행된 『우리의 호의적인 봉건주의 Our benevolent Feudalism』에서 자본가들이 거짓된 이데올로기를 동원하여 대중들을 속이고 노동조합 사람들에게 돈으로 매수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자본가들은 권력자와 결탁하여 온갖 흑색선전을 동원하여 사회를 다시금 봉건적 구조로 환원시키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작품 『철제 발굽』에서는 권력자가 어떠한 방법으로 교회의 대표자, 언론사의 중추적인 인물들, 법조계와 대학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을 매수하거나 억압하는가? 하는 문제를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노동자 계급과 대중들은 이러한 경제 권력의 횡포에 저항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그야말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11. 미래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견해: 작품 속의 가상적 편집자는 사람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것은 금물이라고 조언합니다. 개개인은 역사의 도도한 물결을 하루아침에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이 재크 런던의 사고가 어떻게 벨러미의 유토피아와 다른가? 하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벨러미가 사회주의로 이행되고 발전되는 평화로운 과정 내지 구조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면, 재크 런던은 주어진 현재의 갈등 구조가 너무나 해결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본가들의 권력 집단과의 커넥션은 너무나 공고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대중과 연대하여 이를 해결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런던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20세기 초에 미국에서 활동했던 온건한 급진주의 견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작품에서 주인공 어니스트는 이데올로기를 활용하는 자들에 비해 훨씬 월등한 사고를 지니고 있는데, 맨 처음 선거라는 수단을 통해서 자신의 입지와 권력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즉시 자신의 의도가 실패로 돌아갈 것 같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사회주의를 설파할 때 주위의 돈 많은 자본가들은 어느새 권력과 결탁하여 모든 특권을 지닌 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대중들의 깨우침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어니스트는 자신의 당원들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당원들은 역사의 필연적 전개 과정을 있는 그대로 맹신하고 있으며, 어리석게도 노동조합을 신뢰하면서 과두 정부와 대항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2. 물질적 삶의 조건 뿐 아니라, 행정기관과 언론기관의 교묘한 조작이라든가 사상적 조종이 결국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어니스트는 처음에는 중산층의 대표자를 만나 모든 통계 자료를 동원하여 자본주의의 체제가 필연적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그들을 설득시킵니다. 그러나 나중에 이르러서 자신의 한계를 깨닫습니다. 소설의 두 번째 단락은 거대한 스트라이크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 어떤 위험성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적을 잘못 판단하여, 경직된 과두 체제에 대항하는 저항 행위가 실패로 돌아가는 그러한 위험성을 가리킵니다. 이는 특히 제 22장 「시카고 코뮌」의 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과두 체제의 권력자들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노동자와 대중들의 저항 의식을 말살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론적 분석과 사회적 실천 사이의 모순에 있습니다. 이론에 의하면 역사적 과정은 반드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전환하게 되어 있으며, 사회적 실천은 언제나 당면한 양자택일만을 강요하여 새롭고 유연한 사고를 차단시키도록 작용합니다. 재크 런던은 다음과 같이 경고합니다. 물질적 삶의 조건 뿐 아니라, 행정기관과 언론기관의 교묘한 조작이라든가 사상적 조종이 결국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고 말입니다. 작가는 이러한 관련성을 분명하게 전하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등장인물로 하여금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앤서니 메레디스라는 이름을 지닌 가상적 편집자릉 등장시켜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논평하게 합니다. 이로써 독자들은 주인공의 입장에서 세상을 고찰하면서, 동시에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 과정을 추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3. 역사는 대중에 의해 변화되지만, 20세기 초 미국의 대중은 세뇌당해 있었다.: 작가는 애비스의 서술을 통해서 다음의 사실 또한 전해줍니다. 무산계급은 마치 깊은 심연에 갇힌 채 으르렁거리는 동물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역사는 대중에 의해서 좌지우지되지만, 미국의 노동자들과 대중은 스스로 정의를 위해서 저항하려는 판단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크 런던은 대중들의 혁명적 에너지에 더 이상 커다란 기대감을 지니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무산계급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재크 런던은 혁명을 위한 사회 구도의 근본적 조건을 지적합니다. 어쩌면 런던이 오로지 지식인들만이 역사에 영향을 끼칠 뿐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처사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경고입니다. 즉 런던은 신속하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식으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선동가들을 경고하려고 했습니다. 20세기 초에는 분명히 여러 유형의 이데올로기가 은밀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프랑스의 작가 아나톨 프랑스는 1924년의 프랑스판에서 『철제 발굽』이 파시즘을 예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단편적이며 재크 런던의 집필 의향과는 거리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J,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역사는 대중에 의해 변화되지만, 21세기 초 남한의 대중은 어떻게 세뇌당해 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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