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현대영문헌

자본주의의 틈새를 공략하는 생태 공동체, 스키너 (5)

필자 (匹子) 2020. 9. 9. 10:04

24. 질투와 시기의 극복, 인위적인 자녀 출산: 월든 투 사람들은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떨친 지 오래이다. 사랑과 기쁨에 관한 한 그들은 감정 표현에 능숙하지만,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분노, 근심 등은 공동체 사람들에게서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스키너는 두 가지 관점에서 새로운 인간 유형을 참신하고도 독창적으로 설계한다. 그 하나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언급되는 내용과 관련된다.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유용하지 못한 감정, 분노, 두려움 그리고 근심 등과 같은 감정을 약화시키거나 근절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종족 번식에 있어서 자연과학의 인위적인 기술의 활용을 가리킨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동종교배를 피하기 위해서 근친혼을 금지시켜 왔다. 이로 인하여 서로 사랑하지만, 혈연관계로 인하여 부부가 될 수 없는 수많은 연인들이 고통을 당해 왔다. 월든 투 공동체에서 남녀 간의 사랑은 이러한 근친혼 금지에 관한 관습 내지 법에 저촉된 채 살아갈 필요는 없다. 개개인의 사랑과 결혼에 방해되는 여러 가지 규정 내지 계율 등은 얼마든지 철폐될 수 있다. 만약 특정한 계율이 결코 파기될 수 없는 경우 (이를테면 친남매의 결혼 여부), 부모와 자식들은 공동체 내에서 가족 관계를 과감하게 포기할 수도 있다. 그 대신에 월든 투 공동체는 자녀 출산의 경우 인공 수정을 통하여 인위적으로 출산을 장려하거나 금지시키고 있다. 그렇게 하면 근친혼으로 인한 의학적인 폐해를 사전에 차단시킬 수 있으며, 인위적인 인구 조절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된다. 이를테면 공동체 사람들은 열연에 관계 없이 얼마든지 결혼할 수 있는 반면에, 자녀 출산을 염두에 둔 부부 내지 연인들은 공동체 전체의 우생학적 계획에 승복해야 한다.

 

25. 교육의 실험, 학문 기술의 유토피아: 월든 투 공동체는 아이들을 공동으로 키운다. 이로써 자식 없는 부부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 육아의 경우 실험을 통해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주입시킨다. 흔히 사람들은 교육 방법으로서 당근과 채찍을 예로 든다. “가능하면 사랑으로, 필요한 만큼의 엄격함으로”라는 규칙은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스키너의 대안 공동체에서는 어떠한 벌칙도 주어지지 않는다. 공동체의 교사들은 아이들의 작은 행동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아이들로 하여금 미움, 경쟁, 질투심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다.

 

스키너의 대안 공동체에서는 어떠한 체벌도 없으며, 그저 칭찬과 사랑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실 교육자가 벌칙과 엄격함을 내세우는 것은 교육자의 교육 목표 때문이다. 교육자는 교육의 목표를 자신의 뜻대로 설정한 다음에, 피교육자가 이를 준수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만약 피교육자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게 하고, 교육자가 이를 뒤에서 도와준다면, 학교는 굳이 체벌과 벌칙을 가할 필요가 없다.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로 하여금 공격성향을 줄여나갈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있다.

 

26. 어떻게 하면 인간은 공격 성향을 떨칠 수 있는가? 공동체에서 중요한 덕목은 협동과 배려이지, 경쟁과 이기심이 아니다. 스키너는 경쟁 원칙을 거부함으로써 이전의 유토피아 사상과의 일치성을 보여준다. 물론 경쟁하는 능력이 인간을 피조물 가운데 최상의 존재로 만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원자 폭탄을 발명하게 하였다. 경쟁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웃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숙고하지 않고, 무조건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경쟁의식은 인류의 안녕과 결코 동일한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없다.

 

상대방을 꺾어서 승리를 구가하려는 생각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종을 보존하기 위함 때문이었다. 이는 필연적으로 인간 사이의 투쟁을 불러일으켰다. 인류는 생존을 위해서 무언가를 파괴해야 했다. 흔히 군인들은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고 말한다. 성공은 스키너에 의하면 언제나 공격적인 성향을 견지하라고 요구한다. 생존을 위한 투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경쟁의식을 포기하라고 권고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승리, 경쟁, 이기적 팽창 욕구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7. “월든 투 Walden Two”의 의미: “월든”은 이미 언급했듯이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가리킨다. 문제는 “투”의 의미가 애매하다는 사실이다. 박호강 교수는 스키너의 유토피아 공동체의 제목을 “제 2 월든”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그러나 스키너의 작품을 막연히 소로의 『월든』과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작품의 제목인 “월든 투”는 작품 내에서 “미래 2 (Futurum 2)”와 동의어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임을 인지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고독과 고립을 가리키는 반면에 “둘”은 조화 그리고 아우르는 생활을 지칭하지 않는가? 공동체 사람들은 고유한 로고를 만들었는데, “투 Two”의 “O”에다 노란 색깔을 입히고 있다. 이것은 “태양의 밝은 빛”을 가리킨다.

 

월든 투 공동체 사람들은 “태양은 오로지 한 개의 아침별에 불과하다.”라는 말을 자주 언급한다. 이로써 강조되는 것은 만인의 평등이다. 그렇지만 태양이 지니는 의미는 월든 투 공동체와 캄파넬라의 공동체의 경우에는 서로 다르다.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의 사람들이 하나의 절대적 존재로서의 “태양 Sol”의 질서를 우러러보면서 경배하는 반면, 월든 투 공동체 사람들에게 하나의 질서는 존재하지 않고, 다양한 개별적 질서가 공존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공동체가 전체주의의 일원성을 배격하고, 개별주의의 다양성을 애호한다는 사실 그리고 태양이 계층 구조가 아니라, 평등한 구조 속에서 수용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28. 작품의 문제점 (1): 스키너의 월든 투 공동체는 하나의 대안의 삶을 추구하는, 새로운 삶을 위한 긍정적 모델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부분적으로 몇 가지 의문 사항들이 도사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이러한 것들은 어쩌면 지엽적인 사항일지 모른다. 첫째로 스키너의 1인칭 소설은 공동체 참가자와 프레이저와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행동주의 심리학의 적대자인 철학 교수, 어거스틴 캐슬을 등장시켜, 논의의 쟁점을 부추기고 있다.

 

이로써 대화는 논쟁으로 치닫는 등 작품내의 긴장감은 나타나지만,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월든 투』는 사건 내지 줄거리가 두드러지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미건조한 논문을 연상시킨다. 비근한 예로 스키너의 작품은 공동체의 초창기의 시점에서 현재의 공동체로의 역동적인 변화 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하지 않고 있다. 초창기에 공동체가 어떠한 난관을 거듭했는지, 지금까지 어떠한 갈등과 변화 과정을 겪었는지 하는 물음에 관해서는 세밀하게 해명하지 못하고, 그저 공동체의 모델과 주어진 현재의 생활 방식만을 딱딱한 설명문으로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월든 투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더 나은 공동체의 모습으로 변모될지 우리는 예측하기 어렵다.

 

29. 작품의 문제점 (2): 둘째로 스키너는 공동체의 모든 노력의 효과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을 “사회적 엔지니어링”의 방법으로 명명하지만, 작품은 무엇보다도 노동의 분배에서 취약점을 드러낸다. 노동의 일감, 노동 시간 그리고 노동의 제반 조건이 정해지지 않을 경우 1000명의 공동체 사람들의 최소한의 절약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토대는 확정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1000명의 사람들이 최소한의 경제적 수준을 누리면서 살아가려면, 노동의 종류와 일감에 관한 더욱 구체적이고 확실한 서술, 이를테면 생산과 분배에 있어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데, 스키너의 작품은 이를 간략하게 처리하고 있다. 만약 공동체의 인원이 계속 유동적이며, 공동체를 존립시키는 경제적 부의 창출 작업 역시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는다면, 스키너의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키지 못할 것이다.

 

30. 작품의 문제점 (3): 셋째로 스키너의 공동체는 행동주의 심리학에 근거하여 어떤 교육적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이곳의 교사들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가급적이면 반사회적인 태도를 함양시키지 않기 위하여 행동주의의 실험을 전개한다. 가령 질투, 사악한 마음과 경쟁심 그리고 시기 등의 감정이 솟구칠 경우 교사들은 어떤 자극을 가한다. 아이들은 자신의 반사회적인 감정이 솟아오를 경우에 이에 대한 자극을 받고 무의식중에 이러한 감정을 떨치게 된다. 이는 한마디로 미국의 심리학자, 존 B. 왓슨John B. Watson이 내세운 행동주의의 실험과 무관하지 않다.

 

스키너는 이러한 실험을 통해서 공동체 사람들에게서 경쟁심, 질투와 시기 그리고 이윤추구를 위한 사행심 그리고 공격 성향 등을 사라지도록 조처하고 있다. 물론 스키너 공동체는 실험의 전문가로 하여금 모든 실험을 전권을 휘둘러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는 아마도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나타나는 사회 구성원들의 전체주의적 통제를 사전에 차단시키려는 의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그럼에도 전문가의 행동주의에 입각한 사회적 엔지니어링의 실험은 자칫 잘못하면 어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지 모른다. 이를테면 공동체의 개개인들은 엘리트 과학자의 전체적 실험적 내지 독선적이고 잘못된 정책 시행 등으로 인하여 부분적으로 그들의 고유한 자유를 상실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