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부터 끝까지: 블로흐의 사상적 궤적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서서히 발전 변모한 게 아니라, 20대에 이미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출현한 블로흐의 사상적 특징은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도 별반 차이를 보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생에 걸친 피눈물 나는 노력이 그를 위대한 사상가의 반열에 들어서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블로흐의 사상적 정수는 –마치 여성들이 처음부터 400 여 개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는 것처럼- 젊은 시절 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블로흐는 1918년에 뮌헨/라이프치히에서 제 1편을 발표하였습니다. 유토피아의 정신에서 유토피아는 한마디로 이상 사회 내지는 이상 국가에 대한 설계를 고려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개인 그리고 모든 존재의 근원 속에는 유토피아의 정신적 그리고 형이상학적 면모가 도사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우리는 블로흐가 국가 소설이라는 유토피아의 모델을 넘어서서 가능성과 갈망의 사고 영역 속에서 유토피아의 특징을 찾으려고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2. 블로흐, 폐쇄적으로 차단된 철의 자본주의 체제에 이의를 제기하다.: 블로흐는 20세기 초의 시민 사회를 하나의 철제 건물로 비유하였습니다. 눈먼 자본의 횡포로 인하여 어떤 암담할 정도로 닫혀 있는 철제 건축물을 연상해 보십시오, 이러한 건물의 안과 밖에는 어떠한 자연스러운 움직임도, 일말의 생명력도 자리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유대인 출신의 젊은 지식인, 에른스트 블로흐는 당시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회의 굳건한 폐쇄성으로 인하여 거의 질식할 것 같은 숨 막힘을 느끼곤 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당시에 횡행하던 유럽의 정신과학 내지는 사회과학의 학문풍토 역시 이러한 끔찍한 현재 상태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기껏해야 문학의 영역에서 당시의 숨막힌 상황을 표현주의적으로 드러내었을 뿐입니다.
그래, 당시의 대부분 학자는 후기 자본주의의 삶의 양식을 온건하고도 체제 옹호적인 프로테스탄트주의의 시각으로 미화하고 있었습니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버는 스스로 엄정중립성을 표방하면서, 사회를 공정하게 분석한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젊은 에른스트 블로흐의 눈에는 권력에 완강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온건한 백면서생으로 비쳤습니다. 블로흐가 『유토피아의 정신』에서 무엇보다도 막스 베버의 사회학적 논거에 대해서 예리한 비판의 칼날을 겨누게 된 것도 상기한 사회 정치적인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3. 질풍과 노도의 문체: 블로흐는 청춘의 열정과 진보의 분위기로 생동하던 표현주의의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당시 프로이센은 늦게 배운 도둑 밤샐 줄 모른다고, 뒤늦게 제국주의 정책에 동참하여, 열강들과 경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전쟁 이데올로기에 혈안이 되어, 참전을 부르짖었으며, 로자 룩셈부르크, 카를 리프크네히트 등은 반전 평화를 외치다가, 백주 대로에서 암살당했습니다. 블로흐의 책은 바로 이러한 어수선한 전환기인 표현주의의 시대에 집필되었으므로, “질풍과 노도”의 문체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유토피아의 철학을 개진하였으며, 이는 나중에 (40년대 미국에서 집필되어 1959년에서 라이프치히에서 완결된) 희망의 원리에서 완전한 사상적 형태를 갖추게 됩니다. 그는 동시에 “미적 체험”에 어떤 유토피아의 기능을 부여함으로써 30년대 중엽에 불붙었던 모더니즘 논쟁에 상당하게 기여하였습니다.
4. 미적 체험과 자신과의 만남: 미적 체험이란 에른스트 블로흐에 의하면 회화, 문학, 음악 등의 예술 작품을 접하는 인간의 “자기와의 만남Selbstbegegnung”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블로흐는 자기 만남의 진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장식의 생산”이라는 제목을 지닌-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으로 설명합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자는 그림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자신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갑자기 그림 속에 있었고, 바로 이 모습이 순식간에 그려졌습니다.” 이로써 예술 감상자와 예술적 대상 사이에는 어떠한 차이 내지 간극이 자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미적 체험은 예술 작품을 마치 하나의 거울로 만들고, 그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미래를 발견하게 됩니다.
5. 예측된 상 속에 담겨 있는 주관적 예견: 미적 체험은 (인간이 맞이할지 모르는) 현실적 상을 통해서 예술 작품 속에 미래상을 전달하게 기능합니다. 이로써 예술적 (가)상은 어떤 멀리 떨어진, 그러나 도달될 수 있는 미래로 향해 있습니다. 유토피아의 주관적 예견은 예술 작품에서 객관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모습으로 재현됩니다. 여기서 유토피아란 하나의 문학적 장르도, 그렇다고 해서 사회학적 개념도 아닙니다. 그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오히려 현실의 단순한 반영으로 뛰어 넘으려는 인간의 의지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주관적 의지로 인하여 미적 체험은 결국 유토피아의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것은 또한 어떤 가능한 미래에 스스로 영향을 끼치려는 하나의 창조적 동기를 지니게 됩니다. 미적 체험은 나중에 블로흐의 예술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예측된 상 내지는 “선현Vorschein”을 형성시키는 모티브가 됩니다.
6. 갈망과 꿈 그리고 비극: 일단 "유토피아의 정신"의 내용을 약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로 문학에 관한 장, 「우스꽝스러운 영웅」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심도 넘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블로흐는 사적인 유토피아, 다시 말해 단순한 꿈들, 주어진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추하려는 노력을 담지 않은 사고를 예리하게 비판합니다. 그 밖의 내용은 게오르크 루카치와의 의견 대립 그리고 비극에 관한 루카치의 내적 입장에 대한 반론 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비극이란 블로흐에 의하면 관객들에게 거역과 저항의 정서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러한 정서는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친절함의 선험 철학 그리고 현존재의 신적 충만함”을 지향한다고 합니다.
7. 고통당하거나 갈구하는 인간에게 가장 절실하고 직접적인 예술 양식은 무엇보디도 음악이다: 블로흐는 바흐로부터 구스타프 말러와 슈트라우스에 이르는 음악 이론 및 음악사를 토대로 하여, 자신의 고유한 「음악의 철학」을 발전시킵니다. 음악이란 블로흐에 의하면 미학의 영역 속에 있는 유토피아적 요소를 가장 이상적으로 전해주는 매개체입니다. 음악 속에 “들리는 음성”은 인간의 “역사적 내적 방향”을 보여주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그림 (미술)과 글 (문학)에 비할 바 아니라고 합니다.
8. 거역과 저항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그럼에도 블로흐는 자신의 미적 개념이 오로지 미학의 영역에 국한되어 이해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미적 체험과 미의 개념은 -「카를 마르크스, 죽음 그리고 묵시록」에서 기술되어 있듯이- 역사적 정치적 사회 과정에 원용되는 무엇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아름다움의 개념은 블로흐에 의하면 참다움과 선함과 결부될 때 비로소 제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예술적 혁명이 진선미의 결합으로 설명될 수 있다면, 정치적 혁명은 평등사상 (마르크스주의)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블로흐의 이러한 미학 이론은 표현주의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러시아 혁명의 철학과 결부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끝없는 도전 정신 내지 프로메테우스의 격노함의 감정은 1918년 전선에서 돌아온 무산계급의 항거로 표출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9. 부설, 문헌학적 특징: 블로흐의 "유토피아의 정신"은 1923년에 그리고 1964년에 다른 판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작품의 기본적 골격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아닙니다. 1923년도 판은 비교적 긴장감을 지닌 조직적 구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의 사상적 분위기에 대하여 Über die Gedankenatmosphäre dieser Zeit」라는 장은 1923년도 판에서 과감히 생략되어 있습니다. 1964년 판은 1923년도 판을 약간 개작한 것입니다. 작품은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비약적으로 때로는 예언자적 어조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의 정신은 이후의 저작물에 비해서 일관된 내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64년 판의 후기에서 블로흐는 본서가 자신의 사상을 예견하는 의향을 지니고 있었다고 술회한 바 있습니다. 『유토피아의 정신』은 표현주의의 출현 당시 열광적으로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음악 비평가들의 반론에 부딪치기도 했습니다. 본서는 나중에 신비로우며 비약적인 언어 구사 때문에 독자들에게 거부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예술의 유토피아적 입장은 나중에 아도르노의 "미학 이론"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비록 그의 이론이 아도르노에게서 비판적으로 수용되긴 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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