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17

블로흐: (3) "굴종의 회개인가, 성령의 수용인가". 루터 비판

(앞에서 계속됩니다.) 인간 존재는 루터에 의하면 자신의 고유한 힘으로써 믿음이라는 찬란하고 순수한 빛을 확인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루터는 신앙인을 도우려고 하는 수사들의 노력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수사계급은 신앙인들에게 어떠한 가치 있는 믿음을 전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약 신의 과업이 진행되면, 피조물은 이에 대해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으며, 교회의 행위 역시 부질없을 뿐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간에 신의 과업 앞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하고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그냥 휴식을 취하는 일 외에는 행할 게 없다. 실제로 루터는 어떤 형태를 갖춘 인간적 자유를 헐뜯고 철저히 부정한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면서 그는 자신의 신앙을 성당 속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말하자면 루터는 보헤..

24 신학이론 2023.05.03

블로흐: (2) "굴종의 회개인가, 성령의 수용인가" 루터 비판

(앞에서 계속됩니다.) 물론 루터의 이러한 구원에 대한 기대감이 실행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일반 신앙인들이 구원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거나, 자신의 영혼이 순화되며, 현실적으로 완전한 구원을 받아들이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성서의 내용을 접하게 되면, 신자들은 신의 은총을 어느 정도 감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인간의 죄를 사해주는 복음을 통해서 신의 순수한 자비로운 마음을 소환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성서의 내용을 접하게 되면, 어떤 은총의 실체가 자신의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감지하게 된다. 완전히 객관적이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객관에 합당한 은총의 실체를 생각해 보라. 루터의 사상은 여기서 너무나 기이할 정도로 ..

24 신학이론 2023.05.03

서로박: (4)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앞에서 계속됩니다.) 17. 루터의 변절과 그의 언어적 폭력: 루터는 고위층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1521년 보름스 성당에서 고초를 겪은 뒤에, 성서 번역에 몰두하고, 세상사에 관여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루터가 보름스 성당에서 자신의 주장을 번복하고, 권력에 굴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체득한 죽음에 대한 위기의식은 이후 그의 정치적 행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이후에 보여준 루터의 정치적 입장은 수구반동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가령 루터가 독일 농민 혁명 당시에 그냥 가만히 있지 않고, 농부들의 폭동을 천민들과 강도떼의 폭력적인 난동이라고 규정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루터는 기득권 세력에 빌붙어서 체제 옹호적으로 처신한 셈입니다. 그의 짤막한..

26 유토피아 2023.04.02

서로박: (1) 토마스 뮌처의 천년왕국설

1. 위대한 종교 개혁자, 라스카사스와 토마스 뮌처: 서양의 종교 개혁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서 라스카사스LasCasas와 토마스 뮌처Thomas Müntzer가 손꼽힙니다. 그 이유는 라스카사스와 뮌처가 종교의 개혁과 정화 운동을 넘어서서, 주어진 현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고 민초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라스카사스는 가톨릭 사제로서 신대륙에서의 인디언 학살과 제국주의의 비리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수없이 대서양을 횡단하였습니다. 뮌처는 16세기에 독일 농민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상의 천국을 선물하려고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힘없고 가난한 인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시대의 가장 끔찍한 모순을 고발하며 이를 ..

26 유토피아 2023.04.02

서로박: 뒤러의 '멜랑콜리아 I'

뉘른베르크에 있는 알브레히트 뒤러 하우스 친애하는 J, 알브레히트 뒤러 (1471 - 1528)의 그림에 대해 커다란 애착을 느끼곤 합니다. 그의 그림들은 신에 대한 깊은 신앙심 그리고 변화하는 세계를 진지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나는 유학의 기간 동안 뉘른베르크에 있는 뒤러하우스를 몇 번 찾아 갔습니다. 뒤러는 평생 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는 가난과 폭정 그리고 종교개혁이 난무하던 시대에 살았습니다. 예컨대 그가 21세가 되던 해에 신대륙이 발견되었으며, 46세가 되던 해에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켰고, 54세의 나이에는 독일에서 뮌처에 의해서 농민 혁명이 발발하였습니다. 뒤러는 자신의 개혁적 지조 그리고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그림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하..

11 조형 예술 2022.12.19

(단상. 542) "희망의 원리"

"광기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모든 것을 옛날 식으로 내버려두면서, 무언가 변화되기를 희망하는 태도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람들은 몸에 해로운 당의정 알약을 구하려고 줄을 서 있다. 대부분 인간은 눈앞의 당면한 문제에 혈안이 되어 있을 뿐, 먼 곳을 바라보고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애쓰지 않는다. ................... 필자는 학생들을 생각하면서 다섯 권의 『희망의 원리』 (2004)를 번역 출판하였습니다. 그런데 필자의 제자도 이 책을 읽으려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등록금 내는 것도 버겁게 여깁니다. 졸업하는 어느 제자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희망의 원리가 어떤 책인가요? 문제는 나를 포함한 연구자들에게도 있습니다. 몇몇 분들은 번역서를 언급하며, 그 속..

3 내 단상 2022.10.28

(단상. 539) 루터의 "내일 세상이 몰락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한겨례 신문에는 격언이 스피노자에게서 유래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격언이 아닙니다. "내일 세상이 몰락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 “Wenn ich wusste, dass die Welt morgen untergeht, wurde ich dennoch heute einen Apfelbaum pflanzen” “Even if I should learn that the world would end tomorrow, I would still plant this apple tree today.” 많이 인용되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 말이 스피노자의 격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의 발언은 아닙니다. 서구 사람들은 마르틴 루터의 격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3 내 단상 2022.10.01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사회의 이슈 그리고 문제점을 예리하게 통찰하여 이를 언급하는 작가 - 그는 바로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1929 - )입니다. 그의 삶은 전형적인 지식인이자 비판적인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는 그의 시대적 감각을 높이 평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Er hat die Nase im Wind." (Habermas) 그렇지만 엔첸스베르거의 발언이 모조리 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의 작가 가운데에서 1929년 생은 참 많습니다. 철학자 하버마스, 엔첸스베르거, 하이너 뮐러, 크리스타 볼프, 밀란 쿤데라, 귄터 쿠네르트 등이 1929년생입니다.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는 1929년 남쪽 독일의 소..

9 문학 이야기 2022.09.01

라스카사스, 인종 그리고 국적 (4)

11. 남한의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종교 개혁자로서 루터Luther와 칼뱅 Calvin에 관한 사항들만이 적혀 있습니다. 토마스 뮌처와 바르톨로메 라스카사스는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습니다. 이승만의 반공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오랫동안 계급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도록 조작했던 것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루터와 칼뱅은 우리가 추종해야 할 바람직한 종교 개혁가는 못 됩니다. 칼뱅은 돈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면서, 자본주의의 이익 추구 행위를 종교적으로 용인하였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도덕적으로 방종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수사의 이중 결혼을 요구했을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유대인에 대해 커다란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어디 그뿐일까요? 루터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농민을 저버리고 권력과 결탁하지 않았던가요? 루터..

2 나의 글 2022.02.03

서로박: 뮌처의 천년왕국설 (1)

1. 토마스 뮌처와 천년왕국설: 친애하는 M, 서양의 종교 개혁가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은 루터와 칼뱅이 아니라, 라스카사스와 토마스 뮌처라고 생각됩니다. 오늘은 토마스 뮌처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천년왕국설의 혁명적 정신은 토마스 뮌처에 의해서 독일 농민 혁명으로 실천되었습니다. 토마스 뮌처 (Thomas Müntzer, 1489? - 1525)의 사상과 실질적인 운동은 먼 훗날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 Karl Mannheim의 영향력 넘치는 책,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Ideologie und Utopie』에서 다시금 상세하게 언급된 바 있는데, 이로 인하여 뮌처의 삶과 사상은 현대에 이르러 유토피아의 토론의 쟁점으로 점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현대의 정치경제학, 사회학 등을 전..

26 유토피아 202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