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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프리쉬의 만리장성

필자 (匹子) 2021. 9. 9. 10:21

프리쉬의 「그들은 다시 노래 부른다. 어느 레퀴엠의 시도」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악몽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시도”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세계대전에 대한 스위스 작가의 어떤 거리감을 읽을 수 있다.

 

이에 비하면 세 번째 드라마 「만리장성」에서 프리쉬는 원자 폭탄 및 수소 폭탄의 발전 및 (비참한) 결과를 추적한다. (B.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 제 2원고 그리고 뒤렌마트의 「물리 학자들」에서와 마찬가지로) 프리쉬는 과학자들의 자기 파괴 행위를 지적한다. 그렇지만 프리쉬의 극은 브레히트처럼 역사적 소재에 몰입하지도, 뒤렌마트처럼 우스꽝스러운 현재에서 그것을 실험하지도 않는다. 프리쉬는 「산타크루즈」처럼 시공을 뛰어넘는 창작 원칙을 작품에 그대로 도입한다. 현재는 “오늘날 사람”으로써, 과거는 황티 내지는 나폴레옹, 필라투스, 브루투스, 에스파냐의 필립 왕 등의 마스크로 중첩된 채 묘사되고 있다. 프리쉬는 4번에 걸쳐 이 작품을 개작했는데 (1945/46, 1955, 1965, 1977), 특히 제 7장, 제 10장, 제 20장을 많이 고쳤다.

 

네 개의 텍스트는 복잡하지 않으나, 유동적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권력에의 의지에 이끌려) 원자 폭탄으로 죽어 가는 세계에 지식인 내지 작가 등의 역할은 어떻게 규정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프리쉬는 어떻게 하면 지배와 고통, 권력과 진리, 개별적 폭력과 민중의 권리 사이의 모순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가? 로 고민하였다.

 

(1) 1946년의 판에서 프리쉬는 민중의 소리를 지성인의 그것으로 구상했다. 그러니까 신시대의 위험을 잘 알고 있으며 동시에 진실을 말하는 지성인 말이다. (첫 작품은 1946년 쮜리히에서 초연되었다.) (2) 1955년 작품에서 극작가는 “민중의 소리”를 “오늘날 사람”과 구분시킨다. (1955년 작품은 오스카 프리츠 슈에 의해서 베를린에서 공연되었다.) (3) 1965년 함부르크에서 초연된 세 번째 판은 첫 번째와 두 번째와 크게 차이를 띄지 않는다. (4) 네 번째 판은 프랑스 연출가 미겔과 번역자 베르제로를 위해 씌어졌는데, 1972년 오데온 국립 국장에서 초연되었다. 그것은 파리를 위한 작품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며, 그 이후로 마지막 완성 본으로 알려지고 있다.

 

1955년 개작 시 “어떤 의미에서 「만리장성」이 “하나의 소극인가?”하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이때 프리쉬는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 의식에 대한 하나의 패러디 내지 비교 불가능한 것의 어떤 패러디”라고 대답했다. 지배 계급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권력 욕 그리고 (현재의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자연과학 및 기술의 조건 등이 함께 자리하는 것은 소극의 내용이다. “오늘날 사람”은 청중에 향해서 말한다. “행위 시간: 오늘 저녁. (만리장성이 건립되는 시기가 오늘 저녁이라는 점에서 몹시 우스꽝스럽다.)” 이는 우리의 현재 사회 역시 지배 체제를 민주화하고 인간화함으로써 자기 본존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아직도 성숙하지 못하다는 점을 암시한다.

 

로미오의 마스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엔트로피는 무엇인가? 아톰이 무엇인가?/ 모두 그걸 말하지만, 아무도 이를 알지 못하네./ 세상의 온난 죽음은 무엇인가 등등/ 나는 느끼고 있네, 시대가 시간이 멈춰 있다고.” 여기서 우스운 작용은 과거 시대와 드라마의 시대 그리고 기술적 단어 사이의 대비로부터 나타난다. 나폴레옹과 “오늘날 사람”을 만날 때 소극의 특성은 두드러진다.

 

“나폴레옹: 유럽은 세계야 -

오늘날 인간: 아닙니다, 폐하. 더 이상 아니에요.

나폴레옹: 누가 유럽의 주인인가?

오늘날 인간: 그야 폐하입죠.

나폴레옹: 그럼 넌 아니니, 시민?

오늘날 인간: 아톰은 나누어집니다. (아톰의 원뜻: “나누어지지 않는 것” -역주)

나폴레옹: 그게 무슨 뜻인가?

오늘날 인간: 대 홍수가 생길 겁니다. 명령만 내리시지요, 폐하. 그러니까 우리는 인류가 존재해야 하는가, 없어져야 하는가? 에 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누가 선택해야 할까요? 인류인가요, 아니면 폐하인가요?

나폴레옹: 그대는 민주주의자인가?

오늘날 인간: 걱정스럽습니다. 우리는 단일 지배 체제라는 모험을 더 이상 행할 수 없습니다. 폐하. 이 세상 어디서도 말입니다. 위험이 너무 크거든요.”

 

전쟁의 기술은 오늘날 모든 것을 앗아갈 정도로 발전되었다. 지식인은 비겁하고, 여성들은 기회주의적으로 거짓말하며, 지배하는 세계관은 절대성을 요구하고 있고, 권력은 대중을 착취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관심사에 몰두하고 있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공동적인 슬로건에 의해서 행동하지 않으면, 위기는 극복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등장인물마다 다른 시대의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시각을 지니고 다른 견해를 표방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달리 말하고, 행동한다. 이는 오늘날 자기 지배적으로 분산된 권력 형태가 얼마나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패러디나 다름이 없다.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의 동시적 등장은 인류 역사의 시작과 종말을 결합시키켜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극적 장소 역시 미국, 유럽, 중국, 이집트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