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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발저의 일각수 (2)

필자 (匹子) 2021. 7. 24. 08:22

“일각수”는 지상에 없는 가상적 동물이다. 사람들은 인도에 뿔 하나 달린 기이한 동물이 살고 있다고 상상했다. 일각수는 기대감 그리고 열망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인지 모른다. 일각수는 주인공 안젤름 곁에서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그리하여 동물은 점점 커져가는 환멸 내지 실망의 과정을 주인공에게 무의식적으로 비춰준다.

 

일각수는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인간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표현 기능은 얼마나 제한된 것인가? 인간의 기억이란 비록 왜소한 기능을 지니지만, 과거를 완전히 뒤집을 정도로 기괴하게 작용하기도 하지 않는가? 따라서 마르틴 발저는 “잃어버린 시간은 인간의 탁월한 언어로써 재구성하여 구출될 수 있다”는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의 입장을 완전히 뒤집고 있다. 실제로 발저는 "경험 그리고 독서의 경험 (Erfahrung und Leseerfahrung)" (1965)에서 상기한 내용을 그대로 성찰하고 있다.

 

발저의 소설에서는 “기억해내는 서술” 자체가 테마이자 소설적 주제로 부각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발저는 소설 속에 많은 에피소드를 등장시켜, 전체적 줄거리를 산만할 정도로 차단시키게 했다. 게다가 현재와 과거의 시점은 이리저리 뒤엉켜 있다. 나아가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방언과 외래어가 마구잡이로 동원되는 것은 지극히 의도적이다. 소설적 화자의 기억과 소설 내용 사이의 간극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도 독자로 하여금 사실과 허구의 관계를 성찰하게 작용하기 위한 조처임에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마르틴 발저는 "일각수" 뿐 아니라, 다른 작품에서 기억해낸 사실을 과거의 역사와 구분시킨다. 인간이 기억해낸 사실은 발저에 의하면 주관적이고, 지나간 사실에 대한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는 발저의 경우에 망각에 의해 방해 당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하면 과거의 역사는 객관적이고 보편적 복합체이다. 그것은 개개인에 의해서 밝혀질 수는 없는 “지나간 모든 사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과거는 발저에 의하면 완전무결하게 재구성될 수는 없다. 여기에는 과거의 본질을 밝히려는 역사가 그리고 작가의 노력이 처음부터 무의미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발저에 의하면 인간의 기억 행위는 처음부터 과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재구성할 능력을 지니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것은 어떤 무리한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고유한 권한을 넘어서려고 한다. 즉 인간이 상상 그리고 추론 등을 통해서 역사의 어떤 알려지지 않는 암호를 억지로 풀려고 한다는 게 바로 그 방법이다. 이로써 역사의 은폐되어 있는 부분은 작위적으로 채워진다고 한다.

 

발저의 상기한 논리는 두 가지 위험성을 노출시킨다. 첫째로 발저는 인간의 상상력을 어떤 작위적 월권행위로 간주함으로써, 기억 행위를 통한 미래의 인지 작업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이를 고려할 때 블로흐가 추구한 “기억 속에서 미래를 찾으려는 작업”은 발저에게는 거짓일 뿐이다. 그것은 나아가 과거와 미래를 서로 차단시킨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의 기능을 거부하는 태도에 기여한다. 발저의 논리는 처음제기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논리를 작품 속에 반영한 작가로서 장 파울을 들 수 있다.

 

둘째로 발저는 역사를 보다 광범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 역사는 인간에 의해 완전무결하게 기술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역사의 범위는 인간의 인식 능력을 넘어서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발저의 역사 개념이 궁극적으로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그 속에 담긴 진리로써 현재의 문제를 인지하려는 자의 노력을 처음부터 차단시킨다는 데 있다.

 

예컨대 파시즘의 역사는 발저의 논리에 의하면 완전하게 추체험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추적 작업은 마치 장님 코끼리 더듬듯이 역사의 부분만을 어설프게 모아서 서로 짜 맞추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발저는 역사를 어떤 결코 완전히 밝혀질 수 없는 스핑크스라고 간주한다. 파시즘에 대한 발저의 반계몽주의적인 시각 역시 이러한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파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