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의 소설가, 헤르만 브로흐 (Hermann Broch, 1886 - 1951)의 삼부작 장편 소설 "몽유병자들"은 1931년 그리고 32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브로흐 후기 문학에 속하는 것으로서 브로흐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작품 내용을 고려할 때 우리는 1888년, 1903년 그리고 1918년이라는 세 개의 시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러한 시대 구분은 이른바 오스트리아 문예 풍토를 고려할 때 “낭만주의의 경향”으로부터, “무정부주의의 성향”을 거쳐, “즉물주의의 경향”으로 전개되는 과정과 거의 일치한다. 이러한 구분을 통해서 브로흐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던 역사의 파괴 과정을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의무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면, 어떠한 비판적 의식도 지닐 수 없는 그러한 가치를 생각해 보라.
제 1부는 “파제노 혹은 낭만주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제 1부의 주인공은 파제노라는 남자이다. 그는 귀족 출신의 장교로서 처음부터 비합리적인 전통에 집착한다. 섬세한 파제노는 전해지는 가상적 이야기에 억매여 있는데, 흐릿하나마 자신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과제에 관심을 기울인다. 파제노는 두 명의 술집 여성과 교우하며 방탕한 시간을 보낸다. 두 명 가운데 루체나라는 여성은 주인공의 마음에 꼭 든다. 그미는 착하고 이해심이 많은데다가, 탁월한 감각으로 그를 흥분시키곤 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그미와 교우하면, 자신이 도저히 그미와의 육체적 놀음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주인공의 마음속에 엄습한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루체나와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작심하고, 주로 귀족의 서클 사람들과 교우한다.
파제노는 다른 사람의 소개로 엘리자베트 바덴젠이라는 젊은 여성과 결혼한다. 엘리자베트는 좋은 가문 출신의 아름답고 순결한 여성이었다. 기독교 가정의 집안에서 자라난 그미는 주인공의 눈에는 순결한 우상으로 비쳤던 것이다. 주인공은 엘리자베트에게서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갈구한다. 이는 권태롭고 혼란스러운 삶을 떨치고, 일견 조화로운 세계로 도피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시민주의의 전통은 그 자체 공허한 것이었다. 이는 마치 유령의 상처럼 경직된 예식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사람들과 만날 때 행하는 예의, 종교 행사에 참여하기, 사회적 신분을 돈독히 하는 일, 신부감 고르기 등의 일들은 모두 전통적 허례허식에 속하는 것이었다.
가령 파제노가 걸치고 있는 군복은 그 자체 하나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위협적 무정부 상태의 건물로서의 삶 앞에 도사린 어떤 경직된 정면과 다를 바 없다. 주어진 구체적 세상은 병들어 있다. 이는 주인공의 의식 속에 자기 현혹을 묘하게 강요하게 한다. 폐허의 위험에 처한 현실 앞에서 주인공은 그칠 줄 모르고 어떤 구제된 세계의 찬란한 상을 뇌리에 떠올린다. (브로흐는 이러한 세계상을 작품 속에서 “낭만주의”라고 명명하고 있다.) 독자들은 아마도 파제노의 가족 삶에서 토마스 만을 연상하고, 브란덴부르크 그리고 대도시 베를린의 영지에서 아마도 폰타네를 연상할지 모른다. 이러한 유사성은 어쩌면 브로흐의 문체에 기인하는 것이다. 실제로 브로흐는 모든 사건을 세밀하고도 세련된 문체로 다루고 있다.
제 2부는 “에쉬 혹은 무정부 상태”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에쉬라는 남자는 어느 회사의 부기 계원이다. 그는 자신의 예기치 못한 충동으로 인하여 행여나 장부를 잘못 기술할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래서 에쉬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아무런 손상 없는, 바람직한 세계를 창조하고 싶어 한다. 어느 버라이어티 쇼에서 주인공은 공연하는 여성 그리고 어느 사회주의 작가를 만난다. 에쉬는 사회적 불평등을 뼈저리게 감지한다. 이때 현대 산업 사회의 모든 죄악을 낳게 한 장본인은 에쉬의 의식 속에 베르트란트라는 인물로 투영된다. 주인공은 베르트란트를 한 번 만나보려고 한다. 베르트란트는 이미 앞 장에서 즐거운 체념가로서 등장한 바 있는데, 마치 햄릿과 같은 존재이다. 그는 계급적 대립의 외부에 존재하고 있다. (가령 파제노의 친구들은 베르트란트를 초상화 속의 인물과 다름이 없다고 비아냥거린다.)
베르트란트는 원래 브로흐가 소설 집필 당시에 상상했던 가상적 인물에 해당한다. 그는 “새로운 시대의 선구자이다. 새로운 삶의 방식에 도달하려는 그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이미 그는 조만간 도래하게 되는 무엇이 무 (無)에 불과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 2부에서 브로흐는 초라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그리고 직장인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작가의 묘사는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대변하는 대도시, 쾰른 그리고 만하임을 주로 묘사한다. 에쉬는 시간을 내어서 마침내 베르트란트가 거주하는 별장을 찾아간다. 그 별장은 신비적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데, 그곳은 마치 에쉬 자신의 미래의 삶을 투영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말해서 베르트란트에게 향하는 에쉬의 여행은 소설의 클라이맥스나 다름이 없는데, 마력적으로 전해지는 꿈속의 행적, 바로 그것이다.
에쉬와 베르트란트는 단둘이서 대화를 나눈다. 놀랍게도 베르트란트는 대화를 나눈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의 자살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에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극도의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베르트란트를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자살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에쉬는 어느 선술집에서 술에 취에 정신을 잃는데, 나이든 선술집 여자, 헨체가 그를 간호한다. 에쉬는 나중에 헨체와 결혼한다. 그럼에도 헨체와의 결혼 생활은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 에쉬와 헨체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고 하나, 이는 그들의 소원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특히 에쉬가 헨체와의 결혼에 대해 처음부터 많은 것을 기대한 게 화근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놀랍게도 사이비 종교의 이야기로 연결되고 있다. 제 1부에서 파제노가 (자신이 설정해 놓은) 아직 없는 세계 속에서 무의미하게 몽유하고 있듯이, 제 2부의 주인공 에쉬 역시 (자신이 설정해 놓은) 더 이상 없는 세계 속에서 비몽사몽 방황하고 있다. 두 사람이 의식 속에서 갈구하는 세계는 제각기 가상적으로 설정된 가치로서, 제각기 주인공들의 감정을 마구잡이로 갉아먹고 있다. 이렇듯 가상적 가치로 설정된 가상 세계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이고 지극히 에로틱한 유희와 접목되어 있다. 특히 에쉬는 집요한 자신의 성격에 걸맞게 종교와 섹스에 극단적으로 집착한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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