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푸아니의 '미지의 지역 오스트레일리아' (1)

필자 (匹子) 2020. 10. 11. 10:26

1. 절대 왕정 체제의 시대에 출현한 유토피아: 17세기 프랑스에서는 절대 권력의 군주가 조세를 갈취하고 가난한 백성들로 하여금 강제 노동을 강요 하고 있었습니다. 1676년 제네바에서는 『자크 사뒤르의 모험 Les Avantures de Jacques Sadeur』이라는 제목의 소설 한 편이 작자 미상으로 발표되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졌지만, 소설을 집필한 사람은 가브리엘 드 푸아니 Gabriel de Foigny로 밝혀지게 됩니다. 소설의 제목 역시 나중에 『미지의 오스트레일리아 Terra Australe』로 수정됩니다. 이 작품은 남쪽 나라의 찬란한 나라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데니스 베라스 Denis Veiras의 『세바랑브의 역사 Histoire des Sevarambes』(1677)와 같은 유형의 유토피아 소설입니다.

 

2. 무정부주의에 바탕을 둔 사회 유토피아: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지금까지 대부분의 고전적인 유토피아는 그 유형에 있어서 강력한 국가 체제를 강조했습니다. 그렇지만 푸아니의 유토피아는 구체적 시스템으로서의 질서가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절대적 자유를 거리낌 없이 설계하고 있습니다. 안드레아스 보이크트 Andreas Voigt는 푸아니의 소설이야 말로 순수한 무정부주의의 사고를 처음으로 주제화한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Voigt: 89).

 

보이크트는 “지배 구조”와 “반 지배구조”라는 두 개의 방향을 설정하고, 전자를 “국가주의의 유토피아 모델”로, 후자를 “무정부주의의 모델”로 설정한 바 있습니다. 무정부주의 국가 모델은 18세기에 데니스 디드로 Denis Diderot의 『부갱빌 여행의 보유 Nachtrag zu Bougainvilles Reise』(1775)에서 다시 출현하였으며, 나중에는 윌리엄 모리스의 『유토피아 뉴스 News from Nowhere』(1890)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3. 자웅양성의 인간 사회: 푸아니의 소설은 국가의 제재나 간섭을 받지 않는 인간 사회를 묘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유토피아의 논의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두 가지 핵심적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인간이 과연 토마스 모어 이후로 나타난 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과연 유토피아의 설계가 실현 가능성에 있어서 적절한가? 하는 문제입니다. 특히 푸아니의 소설은 이성이 아니라, 성도덕과 윤리에 관한 내용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소설 속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도덕과 윤리의 이름으로 인간의 성을 제한하지 않고 자웅양성의 삶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원래 자웅양성에 해당하는 “헤르마프로디테 Hermaphrodite”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자인데, 신화에 의하면 때로는 남자로서 여성을, 때로는 여자로서 남성을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묘사로 인하여 초창기의 유토피아 연구자들은 푸아니의 문학 유토피아를 저열하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매도하였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가장 추악한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푸아니의 작품은 부분적으로 외설적이며, 사회적 윤리와는 거리가 먼 성적 향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아니의 작품은 미지에 관한 상상 문학이라기보다는, 고전적 유토피아의 반열에 올려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러 측면에서 17세기의 가부장적 이성을 중시하는 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 푸아니의 삶 (1): 작품의 내용은 가브리엘 드 푸아니의 삶과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1630년 라임에서 태어난 푸에니는 일찍이 문헌학의 재능을 드러내면서, 프란체스코 교단의 수련생의 신분이 됩니다. 이때 그는 라임에서 살던 몇몇 처녀들과의 문란한 관계로 인하여 교단을 떠나야 합니다. 교단으로부터 자초지종을 입수한 프랑스 당국은 그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립니다. 이로써 푸아니는 프랑스로부터 추방조처를 당합니다. 그래서 그는 스위스의 제네바로 건너가,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한 다음에 1666년에 칼뱅 교단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몇 개월 후에 푸아니는 다시 구설수에 오르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푸아니가 카드놀이 도중에 어느 동네 처녀를 유혹하여 그미의 순결을 빼앗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사실이었지만 과장된 감이 없지 않습니다. 사실 푸아니는 레아 라 마이송이라는 여성과 사랑에 빠져, 그만 레아를 임신시키고 말았습니다. 1666년 10월 1일 칼뱅 교단은 그에게 8일의 시간을 주면서 제네바를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이주일 후에 그는 레아와 함께 로잔으로 가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푸아니에 관한 나쁜 소문은 이미 로잔에서도 퍼져 있었습니다. 다행히 1669년 3월에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모르그 학교는 월급과 숙식을 제공할 테니 학생을 가르쳐달라고 그에게 제안했던 것입니다. 푸아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입니다.

 

다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만취 상태로 예배에 참가한 푸아니는 제단 앞에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던 것입니다. 다사 그는 아내와 두 자식을 데리고 제네바로 돌아가야 합니다. 싫든 좋든 간에 그는 제네바에서 뼈를 묻으려고 결심합니다. 칼뱅 교단으로부터 용서를 얻어내기 위하여 음으로 양으로 노력합니다. 칼뱅 교단을 위한 많은 가요와 시편이 탄생합니다. 그러나 교단은 푸아니의 가요와 시편들을 몰수하여 불태워버립니다.

 

5. 푸아니의 삶 (2): 그러나 푸아니는 집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676년 제네바에서 그의 오스트레일리아 유토피아 소설, 『자크 사뒤르의 모험』이 출판 허가 없이 간행됩니다. 책에는 저자의 이름이 “G. d. F”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저자의 이름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출판사 사장 한 명밖에 없습니다. 조만간 제네바의 신학자들은 이 책을 “수치스럽고 위험하며, 신을 모독하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이를테면 저자는 계시의 가르침을 부정하며, 영혼 불멸설을 장난 어린 필치로 야유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3개월 후에 당국에 의해서 체포되었으나, 푸아니는 자신이 책의 저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선처를 부탁합니다.

 

결국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게 됩니다. 푸아니에 관한 나쁜 소문은 그치지 않습니다. 푸아니는 50세 되던 해에 아내를 잃었는데, 1684년에 진 베얼리라는 하녀를 유혹했다는 혐의를 받고 다시 투옥됩니다. 이듬해 푸아니는 임신한 진 그리고 그의 자식, 네 명을 거느리고 프랑스로 돌아갑니다. 마지막 시기에 그는 다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어느 사원에서 살다가 1692년에 사망합니다.

 

6. 가상적인 섬을 배경으로 하는 문학 유토피아: 푸아니는 자신의 유토피아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일단 가상적인 구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독자는 작품의 첫 번째 세 단락을 통해서 주인공 자크 사뒤르가 어디에서 출생했으며, 젊은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그리고 어떠한 교육을 받았는지 파악하게 됩니다. 자크는 범선을 타고 통고까지 갔는데, 이에 만족하지 않고 오스트레일리아까지 항해합니다. 작가는 모든 것을 서술하는 데 있어서 언제나 리얼리티의 방식을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화자인 “나”는 범선이 난파된 다음에 여러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는데, 그때마다 거대한 새가 나타나서 주인공을 오스트레일리아의 땅으로 데리고 갑니다. 자크가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벌거벗은 몸으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 사이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성애와 동성애는 모두 통용됩니다. 결혼이라는 체제 역시 불필요합니다. 결혼이라는 일부일처제에서 나타난 규칙으로서 가정을 꾸리기 위한 조건으로 거행되는 예식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아이들을 공동으로 키우는 여성 집단이 있습니다. 주인공이 발을 디딘 그곳의 땅은 당시의 시점까지 다른 어떠한 외부인이 발을 들여놓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원래 원주민들은 기질, 출생지 그리고 고향 등을 알지 못하는 어떠한 외부인을 영접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준수하고 있었습니다.

 

 

 

 

 

7. 주인공과 노인과의 대화: 이어지는 장에서는 자크 사뒤르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과의 첫 만남 그리고 주위 환경을 서술합니다. 작품의 대부분은 주인공과 그곳의 나이 많은 노인과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노인은 주인공이 이곳에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를 보호해준 사람이었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주인공은 여러 가지 사항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오스트레일리아의 기후, 인민의 구조, 지정학, 원주민들의 교육 제도라든가, 정치와 경제의 시스템 그리고 이성 신에 대한 숭배 그리고 기술적인 개발 등이 바로 그 사항입니다. 이로써 작가 푸아니는 고전 유토피아에서 나타나는 바람직한 국가의 공간 구도를 세밀하게 그리고 폭넓게 축조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푸아니의 유토피아는 작가가 처했던 시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구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는 유럽의 비합리적인 현실적 상황을 간접적으로 비판하기 위함입니다.

 

8. 문제는 만인이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거친 맹수들이 살고 있지만, 유럽에는 동족을 급습하여 살육하는 등의 만행을 저지르는 인간 동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유럽 민족들에게는 모든 것을 공정하게 인식하는 이성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소설의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들은 부귀영화에 대한 갈망을 달랠 수가 없으며, 언제나 반대 의견을 내세우며, 음험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배신을 일삼으며, 피비린내 날 정도로 잔인하게 살상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유럽 사람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서로 싸우며 살아가지요. 이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성보다는 열정에 이끌려서 살아간다고 생각되지 않는가요?” (Foigny: 185).

 

결국 유럽인들은 궁핍함과 괴로운 삶을 계속 이어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억압적인 체제를 만들어야 했으며, 이로 인하여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끝없이 지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중들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파멸되지 않으려고 막강한 권력자와 그가 내세우는 강제적 질서 속에 몸을 내맡기면 살아가고 있습니다. 17세기 유럽에서는 비참한 정치적 상황과 병행하여 남자들이 여자들을 지배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는 폭력을 자행하는 위계적 질서로 이루어진 수직구도의 사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