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달나라 제국" (2)

필자 (匹子) 2021. 1. 5. 19:38

 

8. 달나라 사람들의 오만과 엘리트 의식: 기독교에 의하면 인간은 우주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존재이며, 인간의 역사는 인간이 추구하는 가장 훌륭한 목표라고 합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기독교의 세계관 자체를 절대적인 게 아니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주에는 지상에 사는 인간의 삶보다도 더 발전된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달나라 사람들은 작품에서 자기 자신을 우주에서 가장 탁월한 이성적 존재라고 간주하며, 시라노와 곤찰레스를 우스꽝스러운 동물 두 마리라고 치부하고 있습니다. 달나라 궁궐 사람들은 이들 두 사람이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 그리고 점프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박장대소를 터뜨립니다.

 

달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반응은 17세기 유럽인의 그것을 방불케 합니다. 17세기 유럽 사람들은 인디언 인종에 비해서 자기 자신이 가장 도덕적이며, 확실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다고 지레짐작하였습니다. 달나라 사람들은 지구에서 온 주인공 “나”를 처음에는 타조의 유형으로 이해하다가, 나중에는 달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앵무새 한 마리로 취급합니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달나라 사람들의 언어를 아름다운 목소리로 모방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라노는 정통 기독교인의 사고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 사상에 의하면 세계는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 마련되어 있으며, 동식물 역시 오로지 인간의 행복을 충족시키기 위한 부수물일 뿐입니다.

 

9. 소크라테스의 악령의 연설, “피조물로서의 인간과 배추”: 달나라의 늙은 철학자는 동물과 식물에게도 영혼이 자리하고 있으며, 배추 한 덩어리도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시라노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듯 멋쩍게 미소만 짓습니다. 뒤이어 “소크라테스의 악령”은 농담을 섞어가면서 길게 연설합니다. 그의 연설은 이단자의 주장을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신의 자식인지, 그게 아니라면 신과 동일하게 생긴 피조물인지에 관한 문제를 끄집어냅니다.

 

예컨대 인간은 배추와 마찬가지로 신의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이 인간을 만들 때 자신의 기분에 따라 그냥 수수방관한 반면, 배추 덩어리를 만들 때 -스스로 원하던 원치 않던 간에- 인간에 비해 더 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도록 조처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악령은 의도적으로 달나라 사람들의 복장을 걸치고 있습니다. 이는 지구 출신의 주인공에게 배추 덩어리의 정신적 세계를 가급적이면 명징하게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전통적 기독교 사상에 의해 축조된 시라노의 엘리트 의식에 충격을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마치 인간이 스스로 천사의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상상하듯이, 인간 역시 배추의 사고 속에서 얼마든지 하나의 더 나은 상상적 존재로 투영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배추는 자신의 세계를 초월할 수 있는 감각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과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달나라를 여행하는 주인공의 가치 기준을 흔들어놓기 위해서 인간과 천사의 관계를 배추와 인간의 관계로 역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0. 성도덕의 문제점: 일부 달나라 여인들은 마치 남자의 생식기와 같이 생긴 청동 모형을 몹시 애지중지합니다. 지구에서 온 주인공은 여성들과 함께 있을 때 부끄러워서 감히 이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지 않습니다. 달나라 사람들은 자유로운 성생활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말하자면 청동 페니스는 고결한 남자의 상징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달나라에는 기독교 계율에 근거하는 일부일처제의 성도덕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마치 고대의 레스보스 여인들이 가죽 페니스, “딜도”를 소지하며, 이를 활용하듯이, 달나라 여인들 역시 청동 페니스를 보물처럼 아낍니다. 귀족의 상징에 관해서 프랑스 출신의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구에서는 장검을 차고 다니는 게 귀족 신분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달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물건을 고결한 애장품으로 간주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한편으로는 달나라의 성도덕을 이질적이며 낯선 무엇으로 묘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대 프랑스의 규범을 은근히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즉 17세기 프랑스 사람들은 속으로는 성욕을 탐하면서도, 겉으로는 도덕과 예절을 내세우면서 성을 부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1. 유럽인의 오만에 대한 작가의 비판: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가상적 현실 묘사를 통해서 주어진 현실에 나타나는 문제의 정곡을 예리하게 찌르고 있습니다. 이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통적 도덕과 익숙한 사고를 낯설게 만들고, 이를 비판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가령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배추 덩어리에 관한 이야기를 생각해 보세요. 배추 덩어리는 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인간보다도 더 많이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여기서 작가는 배추 덩어리의 영혼을 추적하여 이를 희화화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막강한 자의식을 역으로 풍자하기 위해서 배추의 영혼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작가의 비판은 다른 인종, 이질적 국가에 대한 유럽인들의 오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즉 17세기 프랑스 사람들은 작가에 의하면 스스로 가장 우월하다고 믿으면서 인디언 그리고 아메리카 인디언의 문화를 업신여기고 노골적으로 경멸한다는 것입니다.

 

12. 신에 대한 맹목적 신앙 그리고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에 대한 작가의 비판: 또 한 가지 지적할 내용은 작품 내에서 젊은이들이 나이든 사람들을 무시한다는 점입니다. 작품의 한 장에서 젊은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엄하게 대하고 마치 하인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아들은 공개석상에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아버지에 대한 멸시의 발언을 서슴지 않습니다. 여기서 작가의 비판은 장유유서 (長幼有序)의 문제점으로 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라노는 진정한 권위가 어디서 생겨날 수 있는지를 역으로 묻고 있습니다. 실제로 달나라의 철학자는 지구에서 온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합니다.

 

젊은 아들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신속하고 유연함을 자랑하는데, 이 점이야 말로 아버지 세대에 대해 아들 세대가 내세울 수 있는 권위의 토대라는 것입니다. 시라노는 이러한 발언을 통해서 가부장적 권위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들의 견해가 무조건 옳고, 젊은 사람들의 그것은 언제나 묵살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가부장적인 신은 17세기 프랑스에서 가족과 공개 기관을 축조하는 데 있어서 일반 사람들에게 오로지 맹목적 신앙과 복종만을 강권합니다. 그렇지만 달나라에서는 기독교 중심적인 가부장적인 질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13. 천사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인간에 대한 벼룩의 관계와 동일하다.: 요약하건대 작가는 달나라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이 처한 시대적 현실의 문제점을 역으로 비판하려고 하였습니다. 다른 나라, 다른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주어진 현실을 다만 상대적으로 고찰할 수 있게 됩니다. 프랑스와 라블레François Rabelais가 작품 『팡타그뤼엘』에서 도시, 마을, 풍경 그리고 선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폐쇄적 시각에서 서술했다면, 시라노는 『달나라 제국』에서 어떤 무한한 세계 속에는 무한한 세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달의 학자 한 사람은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즉 우주를 한 마리의 거대한 동물로 고찰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주인공 나에게 “한 마리 벼룩이 인간의 몸을 하나의 세계로 간주하는 것을 쉽사리 생각할 수 있나요?”하고 묻습니다. 벼룩 한 마리가 귀 속에서 다른 곳으로 향하면서 세계의 극으로부터 다른 극으로 향하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벼룩에게 들려준다고 상상해 보세요. 결론적으로 말해 시라노는 배추 덩어리와 벼룩을 예로 들면서, 인간의 위대한 자의식이 얼마나 초라하고 볼품없는지를 은밀하게 독자에게 전해줍니다.

 

14. 바로크 시대의 유토피아 문학: 요약하건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의 『달나라 제국』은 바로크 시대의 유토피아 문학의 정점에 위치한 작품입니다. 첫째로 작가는 절대 왕정 시대의 정치적 문제 그리고 종교적 갈등 등을 시대의 문제점으로 파악했습니다. 그렇기에 시라노는 먼 곳을 우회적으로 다룸으로써, 주어진 현실 비판을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우크로니아Uchronia”, 즉 미래의 가능한 유토피아의 특성은 18세기에 서서히 태동하게 됩니다. 둘째로 시라노의 작품 속에는 자연과학의 발명품, 비행선 그리고 축음기 등이 등장하는데, 이것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로 지속적으로 활용된 도구들입니다. 17세기에 이러한 기술적 도구가 활용되었다는 점은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셋째로 작품은 전위주의 철학자 피에르 가상디의 철학적 자연과학적 연구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가상디는 스콜라 철학과 데카르트주의 그리고 자연과학 연구와 새로운 경험론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 했는데, 자연과학의 비밀을 해결하지 못해서 신중한 태도로 회의주의적 자세를 견지했습니다. 그는 크리스토프 샤이너 Christoph Scheiner, 1573 - 1650)와 마찬가지로 자연과학이 우주의 비밀을 해결하는 근본적 열쇠임을 인정하면서도, 17세기 초의 과학 연구가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답보 상태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까워했습니다. 한마디로 시라노의 작품은 달나라의 가상적 현실을 서술함으로써 작가가 처한 17세기 프랑스의 현실적 문제를 우회적으로, 그러나 성공리에 비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