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7. 오언의 문헌들: 오언은 방대한 문헌을 남겼습니다. 그의 글은 책으로, 팸플릿으로, 연설문집으로 그리고 논쟁서로 간행되었는데, 그 수는 140권이나 됩니다. 오언에 관한 연구서들은 19세기 말까지 지속적으로 간행된 것을 고려하면, 오언이 당시의 사회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지 과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의 다양한 글들은 주로 산업 혁명이 발발한 이래로 파생되어 나타난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귀결됩니다. 이 가운데 두 가지 문헌을 예로 들까 합니다. 오언의 『사회에 관한 새 견해 The new view of society』는 자신의 작은 공동체의 이념을 최소한 영국에서라도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 집필된 것입니다.
사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영국에 있는 오언의 작은 공동체를 방문하여, 사회주의적으로 모범이 되는 코뮌의 시스템과 실상을 직접 체험하면서 코뮌 사회에 대해 찬탄을 터뜨린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언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의 이론적인 문헌을 통해서 영국 내에 있는 정치적 종교적 그리고 문학적 서클들이 비상한 관심을 가지도록 조처했습니다. 모든 글은 1813년에서 1816년 사이에 집필된 것이었는데, 하나의 에세이 모음집으로 간행되었습니다.
1837년에는 오언은 『인간적 특성의 토대에 관한 에세이들 Essays on the Formation of the Human Character』이라는 일련의 에세이들을 차례로 발표하였습니다. 첫 번째 에세이에서 오언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지적합니다. 영국에는 천오백만의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들의 성격은 지극히 맹목적인 우연에 의해 내동댕이쳐져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업가, 노동자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거의 파멸 직전에 처해 있으며,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기, 투쟁, 불의, 악덕, 범죄 궁핍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집필 계기와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8. 범죄는 사회적 질병이다: 오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당시 영국 그리고 아일랜드의 천오백만의 인간, 다시 말해서 영국과 아일랜드의 인구의 사분의 삼이 끔찍할 정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잔인한 악덕이라고 합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실업자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그룹은 무지하고 무력하며, 어떠한 일도 제대로 행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그룹은 일할 능력과 열정을 지니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냉대당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고통 속에 갇히게 하는 모든 법령들에 대해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고 합니다. 문제는 후자들을 어떻게 밝은 마음으로 노동에 임하도록 조처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에서 나타난 공동체들이 제각기 표면적으로 이질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것은 사람들이 주어진 환경을 제각기 다르게 성찰했기 때문입니다. 오언에 의하면 우리는 모든 인간에 대한 이해심과 이웃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일반 사람들, 특히 가난한 자들이라든가,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범죄인조차도 경멸하거나 하찮게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을 어떤 올바른 환경에서 생활하게 했더라면, 사람들은 그렇게 끔찍한 죄를 짓지 않았으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개개인들에게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을 적용시키기 전에 무엇보다도 주어진 환경을 개선하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 오언은 자신이 세워서 운영하는 뉴 라나르크 지역의 코뮌의 모델을 하나의 좋은 범례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오언은 세상 사람들이 이러한 예를 따라야 한다고 권합니다. 범죄는 오언의 견해에 의하면 개인의 잘못으로 출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질병에 기인합니다.
9. 개개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세 가지 체제, 가정, 교회 그리고 국가: 오언에 의하면 이 세상에는 개개인들을 불행하게 하는 세 가지 집단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가정, 교회 그리고 국가라고 합니다. 이러한 체제들은 개개인의 행복에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개개인들을 제각기 노동 기계로 부려먹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단체라고 합니다. 의회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민의를 반영하고 일반 사람들의 삶을 증진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입법자는 일부 고위층의 이익만 반영하는 우스꽝스러운 견해라든가 신하들의 품위 없는 언쟁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일 게 아니라, 직접 세상 사람들의 삶을 직접 살피고, 직접적으로 관여하며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중세가 사라졌지만, 교회의 세력 역시 막강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사제들은 절대로 가난하게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회의 상류층 사람들과 결탁하여 여전히 일반 사람들로부터 부를 간접적으로 착취하고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가장은 가족 구성원들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고, 아내와 자식들을 가장의 권위로써 무조건 억압합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미성년자들의 노동입니다. 그들은 학교에 다니며 자신의 삶을 위한 수업을 계속하기는커녕 돈을 벌기 위하여 공장에서 일합니다. 이를 부추기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가장이라고 합니다. 물론 가난이 자식들을 일터로 보내게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가정의 수직구도의 체제가 이에 간접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10. 사유 재산의 철폐와 화폐 사용의 금지: 오언의 공동체는 소규모의 인원으로 구성됩니다. 다시 말해서 500명에서 2000명가량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는 탈-중앙집권적인 생산조합의 특성을 처음부터 표방합니다. 그것은 서서히 퍼져 나가서 인접 지역 뿐 아니라, 영국 전체로 확장될 수 있다고 합니다. 공동체 사람들은 처음부터 사유 재산제도의 철폐를 지향합니다. 사유재산은 특히 자본가 그룹에게 사악한 마음을 강화시키게 작용하였습니다. 자만심, 허영, 불공정, 억압의 욕구를 부추기는 것이 바로 사유재산제도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사유재산을 비축하고 축적하는 행위는 비난받아야 마땅합니다. 모든 재산은 1200명의 공동체 사람들이 함께 나눕니다.
나아가 오언 공동체는 화폐 사용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푸리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가까운 영역에 공동체들이 많이 형성되면, 사람들은 바자회와 같은 단체를 통해서 생산한 물품과 수확한 농산물 등을 서로 교환합니다. 따라서 오언의 공동체에서는 시장이 필요 없습니다.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는 개개인의 인간관계를 망칠 뿐 아니라, 개별적 조합 사이의 좋은 관계를 깨트립니다. 재화의 생산력이 증강되면, 공동체 사람들은 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오언은 생산을 위한 노동자의 잠재적 능력을 인정하였습니다. 만약 이들에게 노동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난이 척결될 뿐 아니라, 오래된 경제 체제 역시 새롭게 뒤바뀔 것이라고 오언은 확신했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그의 노동자 공동체 유토피아의 설계는 주어진 사회의 비합리적 상태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대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1. 이윤 추구의 욕구 그리고 경쟁 등은 자연스럽게 철폐될 수 있다: 오언의 공동체에서는 자발적인 생산과 공정한 분배를 위해서 화폐, 금, 시장 그리고 개인적 이윤추구의 욕구 그리고 경쟁 등을 철폐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오언은 인간 존재를 하나의 복잡하고 묘한 (심리적) 구조를 기계에 비유합니다. 인간이라는 기계는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 속에서는 자발적으로 이웃과 조화롭게 노동에 임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효과적으로 일하지 않고, 낮은 노동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만약 분업이 철폐되고,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이 마련되면, 인간이라는 기계는 자발적으로 그리고 즐겁게 노동에 임하게 된다고 합니다. 특히 학문과 기술은 인간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감을 스스로 담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노동자는 즐겁고 자발적으로 일터로 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입니다. 자연과학과 기술은 역사적으로 고찰할 때 인간에게 자연력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이를 능률적으로 사회에 적용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로써 인류의 욕망의 충족은 가능하게 되었으며, 개개인이 부를 축적하고 경쟁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필요한 사항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셋째로 오언은 끝없이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 존재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새로운 공동체는 무조건 소비를 금지하는 도덕적 태도를 지양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삶을 즐기고 이성적으로 향유하도록 조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동체는 일부러 소비를 금지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성적인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건강과 최상의 도덕적 욕구에 상응하는 만큼 향유할 정도로 스스로를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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