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5)

필자 (匹子) 2022. 3. 30. 09:59

(앞에서 계속됩니다.)

 

27. 처녀지, 자연을 정복하려는 남성 연구자의 의향에 대한 비판: 상기한 사항을 바탕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셸리는 프랜시스 베이컨이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내세운 자연과학 중심주의에 반기를 들면서, 과학 기술 내지 기계주의적인 자연관이 인간의 보편적인 삶을 장악해서는 곤란하다고 주장합니다. 자연과학은 인간 삶을 보다 간편하게 해주는 수단일 뿐이지, 인간의 모든 학문적 예술적 영역을 지배하거나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연이 인간의 기술적 발명을 위한 원자재 내지는 처녀지로 작용해야 한다는 사고는 비판당해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메리 셸리는 과학 기술에 대한 우려감과 비판적 입장을 문학적으로 제기한 셈입니다. 아마도 과학 기술의 연구에는 과학자의 학문적 의지만이 분명하게 드러날 뿐, 연구 윤리 내지 인간 삶의 미래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으로 이해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셸리가 창안해낸 프랑켄스타인이라는 인물은 베이컨 식의 이른바 기술적 인간 Homo Faber의 정신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처녀지로서의 자연 속을 꿰뚫고 파헤쳐 들어가려는 자연과학자의 정신은 그 자체 병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28. 작품의 주제는 궁극적으로 안티 유토피아의 사고를 정당화시키는가?: 작품의 주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한 가지 물음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메리 셸리의 작품은 궁극적으로 낙관적 미래를 추구하는 모든 유토피아의 사고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말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은 주어진 현실에서 끊임없이 사회적으로 동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기를 원하지만, 이러한 그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결국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 상황 속에서 패방하게 되는데, 이는 결국 로빈슨 크루소의 고립 모티프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에게 근본적으로 사회적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다면, 이는 그에게는 더 나은 삶을 위해서 타인과 공동으로 노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그렇기에 프랑켄슈타인의 좌절은 궁극적으로 반유토피아의 사고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로 채택될 수 있다고 합니다. (Winter: 104).

 

그밖에 미하엘 빈터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타난 주인공의 시대 착오성 역시 프랑켄슈타인의 고립 모티프와 연결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돈키호테의 시대 착오성은 프랑켄슈타인의 사회적 동화를 위한 처절한 노력과 함께 유토피아를 꿈꾸는 모든 인간들이 결국 조우해야 할, 어떤 몰이해 내지는 경고의 시나리오를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Winter: 110). 『프랑켄슈타인』의 주제가 안티 유토피아에 대한 논거로 활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관한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29. 남성 중심사회 내에서 활동하던 여성 작가: 셸리는 프랑켄스타인의 과학 연구를 “여성을 배제하고 남성적 관점에서 자생적으로 무조건 종을 확장시키려는 병적 집착”으로 단정하고 있습니다. (Gnüg: 174). 물론 이 작품에서 여성 해방은 전혀 중요한 사항으로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작가가 상기한 거만한 남성적 시각을 비판적으로 고찰한 내용을 작품 속에서 담았으며, 19세기 초에 이미 일부의 여성들이 전업 작가로서 살아갔다는 사실은 그 자체 놀랍기만 합니다.

 

여기서 전업 작가라는 표현은 약간의 설명을 요합니다. 특히 낭만주의 시대에 여성 작가들은 창작 행위를 통해서 원고료를 받으며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원고료는 너무나 박했으며, 발표 지면 역시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남성 작가들이 생계를 위해서 주로 개인교사의 직업을 선택하여 생활비를 번 반면에, 여성 작가들에게는 이러한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소수의 여성들이 살롱을 경영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남편에게 의존하면서 육아와 가사에 몰두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남성 과학자들의 맹목적인 기술 탐구는 여성 작가들에게는 인간의 전인적 삶과는 무관한 낯설고, 편협한 일감으로 비칠 수밖에 없었는지 모릅니다.

 

30. 과학 연구와 페미니즘: 자연과학에 대한 남성적 집착에 대한 셸리의 비판은 20세기의 구동독 작가, 크리스타 볼프까지 이어집니다. 볼프는 「자기 실험 Selbstversuch」이라는 단편을 통하여 실험에 대한 자연과학자의 집착이 얼마나 편협하고, 전인적 삶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는지를 예리하게 지적합니다.

 

나아가 볼프의 유토피아 소설,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는 곳 Kein Ort. Nirgends』의 등장인물,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실험실에 박혀 오로지 한 가지 실험에 골몰하면서 비인간적으로 살아가는 자연과학자들의 태도를 “외눈박이 거인의 일방적 태도”라고 폄훼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자연과학자들의 비인간적인 연구 환경 내지 전문백치로서의 편협한 삶에 대한 적절한 비유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가령 클라이스트는 자연과학자의 실험 작업을 다음과 같이 논평합니다. “다만 곤충류를 파악하거나 어떤 식물을 자신의 계열 속에 편입시키는 그따위 실험을 위해서 내 모든 힘과 능력을 쏟아야 합니까? 과연 인류가 이러한 황량한 작업을 통해서 찬란한 약속의 땅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아, 이러한 외눈박이 거인의 일방성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Wolf 79: 105). 물론 곤충을 연구하고 새로운 종의 식물을 발견하여 이를 학문적으로 배열하는 작업은 나름대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클라이스트의 견해에 의하면 수많은 다양한 전인적 삶의 방식을 망각하게 하고, 무시하게 하는 단선적인 사고라는 것입니다.

 

31. 자연과학 연구의 한계: 19세기 이후부터 사람들은 과학 기술을 중시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모든 삶보다도 과학 기술의 연구를 맹신했다는 사실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자연이 순응을 통해서 정복될 수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Natura enim non nisi parendo vincitur.”고 단언한 바 있습니다. 그는 이로써 다음의 사실을 분명히 하려고 하였습니다.

 

자연과 우주는 맹목적인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주어진 환경과의 조화를 꾀하면서, 자연 주체를 밝혀내려고 노력할 때, 세계는 스스로 개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은 도를 넘어서 오랜 기간 동안 자연과 우주를 장악하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요약하건대 작품 『프랑켄슈타인』에서 드러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작가의 여성으로서의 비판적 시각입니다. 셸리는 남성의 자연과학자들이 처녀지로서의 자연을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마치 동물 조련사처럼 오만하게 행동하는 것을 정확하게 투시하고 있습니다.

 

자고로 동물 조련사는 때로는 성난 짐승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자연을 정복하고, 과학 기술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지상의 행복을 달성하려고 하는 욕구 역시 부작용 내지 비극을 초래하곤 합니다. 메리 셸리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교훈을 명백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과학 기술이 기술적 매개물로 기능하지만, 궁극적으로 판도라의 상자의 악영향을 끼칠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참고문헌

 

- 괴테, 요한 볼프강 폰: 파우스트, 2권, 정서웅 역 민음사 1999.

- 김상욱: 언어와 감정 –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루소의 『언어 기원론』, 실린 곳: 영어영문학, 한국 영어영문학회 2008 가을, 483 – 510.

- 블로흐, 에른스트: 희망의 원리 5권, 박설호 역, 열린책들 2004.

- 빌리에 드 릴라당, 오귀스트: 미래의 이브, 고혜선 역, 시공사 2012.

- 셸리, 메리: 프랑켄슈타인, 김선형 역, 문학동네 2012.

- 위고, 빅토르: 노트르담의 꼽추, 원혜영 역, 반석 2011.

- 호프만, 에른스트 T. A.: 모래 사나이, 권혁준 역, 지만지 2011.

 

- Fischer, Ernst: Ursprung und Wesen der Romantik, Frankfurt a. M. 1989.

- Gnüg, Hiltrud: Utopie und utopischer Roman, Stuttgart 1999.

- Gouges, Olympe de: (독어판) Mutter der Menschenrechte für weibliche Menschen, Herausgegeben und kommentiert von Hannelore Schröder, Aachen 2000.

 

- Jones, Jonathan: Hidden Voices: Language ans Ideology in Philosophy of Language of the Long Eighteenth Century and Mary Shelly’s Frankenstein, in: Textual Practice 19 (2005), 265 – 287.

- Shelly, Mary: Frankenstein, Köln 2009.

- Shelly, Mary: Rousseau. Lives of the Most Eminent Literary and Scientific Men of France, London 1839, (111 – 174)

 

- Winter, Michael: Don Quijote und Frankenstein, in: Utopieforschung, (hrsg.) Wilhelm Vosskamp, Bd. 3, Frankfurt a. M. 1985, S. 86 – 112.

- Wolf, Christa: Kein Ort. Nirgends, Darmstadt 1979.

- Wollstonecraft, Mary: 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 New York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