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근대영문헌

서로박: (3) 오언의 연방주의 유토피아

필자 (匹子) 2023. 4. 4. 10:34

(앞에서 계속됩니다.)

 

12. 전통적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 남녀평등: 오언의 유토피아에서는 가족의 해체에 관한 사항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언은 전통적 가족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이는 일부일처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족 내에서의 가부장의 권위와 폭력을 비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언은 여기서 “가부장주의”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가족 구성원 사이의 불평등한 위계질서를 비판하려고 하였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오언이 추구한 것은 가족의 해체와 같은 극단적인 변화가 아니라, 다만 가족 내의 경제적 성적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려고 한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오언이 관심을 기울인 것은 가족과 성의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권익과 사회적 부의 창출과 분배에 관한 사항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오언은 무엇보다도 남녀평등을 강조하였습니다. 오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사회는 모든 남자와 모든 여자에게 직업의 삶에 있어서 동일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적어도 개별 인간이 지닌 원래의 소질과 관심사를 반영한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Owen 55: 257).

 

13. 공동체 내에서의 관리 내지 지도자: 공동체라고 해서 만인이 관리 내지 지도자로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에 있어서 오언의 생각은 플라톤의 견해와 유사합니다. 오언은 공동체에서 필요로 하는 관리 내지 지도자들을 발탁하는 사항을 다음과 같이 규정합니다. 공동체의 사람들은 나이 30이 될 때까지 교육자, 생산자 그리고 분배자 등으로 일하면서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관리의 직책을 맡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이 60이 넘어야 지도자로 일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동체의 주요 위원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마치 대가족의 모임을 방불케 합니다. 어떤 사안을 논할 때 많이 이야기 나누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실적 내용이며, 이 부분에 합당한 실질적인 지식입니다. 어떤 결정은 대체로 만장일치제로 해결되지만, 세부적 사항에 있어서 곤란한 문제가 발생하면, 논의는 상부의 위원회로 이전됩니다. 모든 결정은 마치 자식들이 부모의 결정을 따르듯이 그렇게 처리됩니다. 공동체에서는 의견이 수렴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최고 위원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의사 결정의 권한을 부여합니다. 그렇지만 의견들이 하나로 수렴되지 않을 경우 공동체는 이른바 보편적인 신의 법칙 내지 자연의 법칙을 추종합니다. 어떤 경우에 따라서 사회의 행복에 위배되는 개인적 혹은 공동적인 견해가 출현하여 공동체의 다름 사람들과 마찰을 빚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채택되는 것은 유일 신앙에 근거하는 이성의 개념입니다. 사회적 행복에 위배되는 자는 오랜 논의를 거쳐 처벌당하거나 정신 병원에 이송될 수 있습니다. 오언은 상기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예외적으로 어떤 정치 기관을 용인하고 있습니다.

 

14. 평행 사변형의 공동체 모델: 오언은 자신의 원칙이 뉴 라나르크 지역에서 어떻게 적용되는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이른바 “평행사변형의 모델 Parallelogram”을 완성하게 됩니다. 평행 사변형의 모델은 농업과 공업의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모델로서 사람들은 평행 사변형으로 설계된 공동체 모델인데, 이곳에서 약 1200명의 사람들은 농업과 공업을 제각기 추진해 나가고 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공동체는 500미터의 길이, 30미터에 해당하는 테라스를 지니고 있으며, 5층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금액은 9만 6천파운드가 아니라, 약 70만 파운드에 해당하는 거액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농업의 경제와 공업의 경제를 상호 보완적으로 추진해나가는 정책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공동체 내의 핵심적인 토대 내지는 전제조건이 정착되어야 합니다. 자고로 인간의 보편적 성격은 어떠한 예외 없이 오로지 개인에게서 비롯한다는 것입니다. 오언이 완강하게 쓸모없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다름 아니라 종교적 우상 숭배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과 벌리는 전쟁입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보편적 이성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종교적 가르침에 과도하게 침잠하지 말고, 일부러 적을 만들어 무력으로 그들과 싸울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인간이 스스로 교양을 쌓고 교육을 받음으로써 스스로를 더욱 훌륭한 존재로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로써 오언은 우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즉 모든 정부는 반드시 지배자와 피지배자들을 모조리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하나의 근본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정부는 인민의 우위에서 군림하지 말고, 인민의 아래에서 인민에게 도움을 주는 하나의 작은 체제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가장 훌륭한 정부는 가장 훌륭한 국가 교육 시스템을 실천하는 정부라고 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국가를 없애는 게 아니라, 그것을 다만 행정청으로 축소화시키려는 오언의 아나키즘 사상의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15. 아이들을 위한 학교, 오언의 교육론: 오언은 한창 자라고 배워야 할 아이들이 공장에서 장시간 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로써 만들어진 것이 바로 뉴 라나크 학교입니다. 오언은 아이들로 하여금 무조건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읽기와 쓰기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능력을 주어진 현실에 적용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언은 아이들이 사물과 주변의 특성을 올바르게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을 매우 종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오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만약 어떤 무엇을 올바르게 추론하여 진실과 거짓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면, 어떤 무엇의 본질을 스스로 추구하고 이를 스스로 깨닫는 힘을 기를 수 있다면, 아이들은 잘못 배워서 추론의 능력을 지니지 못한 아이들보다도 더 훌륭한 교양인이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언의 이러한 견해는 루소의 『에밀』 그리고 로저 에스컴 Roger Ascham의 『학교 교사론』에서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로버트 오언은 무엇보다도 다음의 특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선생은 결코 지식의 주입자로서 기능해야 할 게 아니라, 아이들의 개성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특정 아이가 자신의 고유한 소실과 개성을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파코: 39). 따라서 교육의 관건은 무엇보다도 행복의 학습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사의 임무는 오언에 의하면 배우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배움에 대해서 행복을 느끼도록 조처하는 데 있다고 합니다.

 

16. 오언의 공동체를 위한 제안들 (1) : 뒤이어 오언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해냅니다. 최대한으로 가능한 다수의 사람들은 반드시 최대한으로 가능한 행복을 만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오언은 다음의 사항을 요구합니다. 1. 정부의 기능은 축소되어야 하지만, 교육만큼은 보편적인, 중앙집권적인 체계를 필요로 한다. 보편적이고 중앙집권적으로 규범화된 교육의 체계는 반드시 정립되어야 한다. 또한 교사들 역시 지속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는 체제는 반드시 필요하고 합니다. 이로써 오언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모든 개별적 영역에서의 노동 조건, 실업자 수 그리고 임금 등을 삼 개월마다 통계를 낼 수 있는 관청이 필요하다. 정부는 노동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노동에 임하면서 살아가는지를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러한 발언 속에는 훗날 시회 복지의 차원에서 노동청이 행해야 하는 일감들이 미리 설정되어 있습니다. 3. 노동 시간의 경우 어른은 최대한 10시간 이상 노동하지 말아야 한다. 어린이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노동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현대의 근로기준법에 기술되어 있는 내용을 선취하고 있는 놀라운 규정입니다.

 

17. 오언의 공동체를 위한 제안들 (2): 4. 도로 확충과 같은 공적 사업을 위한 일자리 및 노동이 창출되어야 한다. 사회 간접자본이 사유재산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5.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 교회와 성당이 개혁되지 않으면 안 되며, 가난한 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일종의 빈민구제법이 제정되어야 한다. 법적 체제와 형법 역시 대폭 수정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노동자들의 권익이 보장 받을 수 있다. 6. 성직자들로 하여금 보다 높은 세금을 납부하게 해야 한다. 성직자들은 모든 조세 부담으로부터 면제되어 있는데, 이는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러한 주장은 오늘날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할 사항입니다.

 

7. 로또와 같은 국가 재정을 위한 흥행 게임을 철폐시켜야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사행심을 조장하는 한탕주의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8. 종교적 근엄함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종교적 권위를 보장해주는 것은 사제의 복장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이어야 한다. 믿음과 성찰 내지 자기반성으로서의 신앙은 용납될 수 있지만, 권위와 체제로서의 성당과 교회는 비판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의회, 교회 그리고 인민들은 모두 합심하여 국가 내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목표를 위해 정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차제에 인류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어떤 놀라운 결실을 낳게 되리라고 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