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것은 신비주의의 사상으로서 현세의 사항과는 거리가 멉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는 아시다시피 사람들 사이에 필연적으로 어떤 기이한 동맹을 맺게 해주었습니다. 신비주의는 자연의 진리를 밝히려는 사고와 마찬가지로 교회 세력 그리고 독단론의 문헌에 대한 투쟁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초월을 지향하는 순수한 신비주의가 무작정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거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신비주의자들은 오히려 일반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서 열광적 신앙을 견지하지 않는다고 항변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지만 범신론적으로 사고하는 신비주의자들은 무엇보다도 일반 사람들의 각성을 촉구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고도의 집중을 통한 명상을 제외한다면, 종교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종교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수피즘 사상도 그렇습니다. 수피즘을 추구하는 자는 하나이자 모든 것을 내면으로 고찰함으로써 어떤 무지몽매한 믿음을 해체시킵니다. 그는 실재하는 모든 종교의 무의미함을 인식하고, 종교의 우위에 위치한 자기 자신을 느낍니다. 영성적으로 고양된 수피즘을 신봉하는 자는 교단의 제식에 허리 굽히며 절하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게 됩니다.
바스라에 있던 순결한 수사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대중화된 신플라톤주의의 사상의 영향을 받았지만, 실재하는 종교기관들을 어떤 영성적인 진리를 발견하기 위한 과도기의 단계 내지 거쳐야 할 교육 수단으로만 간주하였습니다. 실재하는 종교단체들은 “순결한 수사들”의 견해에 의하면 찬란한 빛을 어둡게 만들고 사람들을 현혹하게 하는 집단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아비켄나의 친구인 신비주의자, 아부 사이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적어도 회교사원이 파괴되지 않는다면, 이슬람 수도사는 평생 추구하는 자신의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신앙과 비-신앙이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인간도 진정한 무슬림이 되지 못할 것이다.” 이슬람 연구자, 골드치어는 수피즘 사상이 자유로운 정신을 추구하는 이슬람 사람들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들이 추구하는 바는 달랐지만, 결국에는 사고의 동일한 결과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어느 신비주의자는 신성과의 합일을 극한으로 추구하다가, 결국 망나니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잃곤 하였습니다. 신의 내부로 들어가 신과 합일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결국 종교를 파기하도록 작용했던 것입니다. 신의 내부에서의 인간의 몰락은 결국 인간의 내부에서의 신의 몰락으로 귀결되기에 이릅니다. 독일의 극작가 레싱Lessing의 극작품 『현인 나탄』에는 세 개의 반지에 관한 우화가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 우화는 보카치오에 의해서 인용된 것인데, 사라센 제국의 영향을 받은 스타우퍼 왕조의 프리드리히 2세에게 유래하는 것입니다. 또한 사라센 제국에서 유래하는 “세 명의 사기꾼에 관하여de tribus impostoribus”라는 익명의 문헌은 모세, 예수 그리고 무함마드를 비아냥거리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종교 비판적인 서적은 자연을 추구하는 학자들의 주요 관심사였을 뿐 아니라, 역설적 특성으로 이해되지만 체제로서의 교회를 비판하는 신비주의자에 의해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범신론의 입장이 아니라, 인간적 종말론적인 형체 속에서 다시 출현하였습니다. 가령 조아키노 다 피오레는 도래할 세 번째 복음에서 오래된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출현하리라고 설파한 바 있습니다. 교회에 대한 열광적 적개심은 마지막으로 14세기에 독일 신비주의에 의해서 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사고는 수피즘을 추구하던 “순결한 수사들”의 자유로운 정신에서, 에크하르트 선사가 추구하던 인간의 신격화 내지 인간신의 사상 속에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신비주의와 수피즘 사상은 부분적으로 철학적 진리 추구를 위한 목표를 넘어서고 말았습니다. 가령 신비주의는 교회에 대해 적대적이었을 뿐 아니라, 학문에 대해서도 적대적이었습니다. 특히 문헌에 대한 적대감은 특히 시대의 분위기가 반동적일 경우에 항상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아비켄나의 작품 자체에서 이러한 특성을 은근히 간파할 수 있습니다. 가령 신비주의는 어떤 종교적 독단론이라는 확고함을 지닌 채, 철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거리감을 취하고 말았습니다. 학문에 대한 불신은 (주로 이성에 대한 회의감과 결부된 것인데, 알-가잘리al-Ghazali에 의해서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바그다드의 철학 교수로 봉직하면서 신비주의의 자세를 취하면서 철학 행위 자체를 비난했습니다. 이로써 간행된 것이 『철학의 파괴에 관하여Destructio philosophorum』인데, 알-가잘리는 수피즘에 깊이 심취한 알-가잘리는 자신의 제단에 바쳤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범신론적인 시각이라든가, 진리를 추구하는 지적인 시각을 수피즘에서 떼 내어 추방시켰습니다. 이로써 옹호된 것은 오로지 독단적 초월이라는 종교 관점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철학의 변절자, 알-가잘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태양이 떠오르면, 토성을 얼마든지 배제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토성이란 바로 밤에 깨어 있으면서 골똘히 생각하는 존재, 학문의 존재를 뜻하고 있습니다. 꾸란은 알-가잘리에 의해서 태양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아비켄나의 주요 가르침은 토성과 흡사하며, 저주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아비켄나는 물질의 영원성 그리고 결코 해체될 수 없는 인과율의 법칙을 주장했으며, 죽은 자의 부활의 불가능성 피력한 바 있습니다. 알-가잘리는 이러한 입장을 자신의 저작물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거부했던 것입니다. 신비주의는 이러한 방식으로 합리적 사고를 방해하는 무지몽매함과 부분적으로 결착되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주의 곁에는 -비록 아비켄나가 문헌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않는 경향을 유형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에도- 진리를 인식하려는 행위를 지지하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분명히 인지하게 된 사실이지만, 모든 종교적 가르침은 그 자체 감추어진 알레고리로 표현되어 왔는데, 그것은 순수한 계몽사상에서 유래하는 게 아니라,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신비주의에서 비롯한 무엇입니다. 사실 신플라톤주의는 스토아사상의 범신론적인 세계관 이후에 다시 발전했는데, -고대 그리스든 오리엔트든 간에- 고려의 대상이 되는 세계에 관한 모든 종교적 상상들 속에서 어떤 알레고리의 의미를 도출해내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 신플라톤주의는 수많은 종교적 알레고리 속에서 어떤 철학적 개념을 도출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기독교의 교부인 오리게네스는 성서의 말씀의 이해에 관한 세 가지 의미를 제시했습니다. 첫 번째는 육체적이고 자구적인 이해 방법을, 두 번째는 심리적이고 암유적인 이해 방법을, 세 번째는 영적이고 암호 해석의 이해 방법을 가리킵니다.
신 플라톤주의자들 그리고 오리게네스는 이러한 암유의 방식으로 “진리”를 발견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생각하는 “진리”란 아비켄나가 계몽적 사고를 통해서 합리적인 핵심 사항으로서 도출해낼 수 있는 무엇은 아니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여러 가지 알레고리 속에 도사린 근본 의미를 도출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때로는 알레고리의 무작위적인 선택과 해석을 양산시킨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신비주의자들의 이러한 노력은 종교를 비판하거나 축소화시키고, 지혜롭게 그것을 파기하는 데 기여한 게 아니라, 오히려 종교를 구출하도록 작용했습니다. 세계의 알레고리를 해석하는 과정 속에서 사람들은 다음의 사항을 항상 유념하고 있었습니다. 즉 종교에 대한 근본적 이해와 이성에 대한 인식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이는 하나의 추론으로 오랫동안 제기된 사항이지, 결코 아비켄나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확실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신앙과 지식 사이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신플라톤주의의 알레고리의 해석 행위에서 유래했다는 점 말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아비켄나로 하여금 세계의 비밀을 하나의 형체로서 합리적으로 도출해내도록 자극했으며, 나아가 유럽 전체의 계몽사상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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