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23. (부설) 체제 비판과 종교: 신앙의 깊이는 기존 권력의 박해를 통해서 정확하게 측정됩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신앙이 주어진 현실의 상태를 용인하지 않는 체제 비판적인 자세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주어진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하여 영성적 믿음이라는 공동의 의지를 표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영성 공동체는 당국의 권력에 의해서 무참하게 짓밟히고 맙니다. 이 경우 진리는 권력의 탄압에 의해서 은폐되고 맙니다.
논의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입니다만, 진리에 대한 권력자의 탄압은 이조시대에서도 발생하였습니다. 함석헌의 말을 인용하자면, “중축이 부러진” 이조시대에 그나마 고결한 지조의 처절한 불꽃을 보여준 것이 바로 사육신의 처형과 그들의 비장한 죽음이라고 합니다. 한국인이라면 셰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를 몰라도 이것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함석헌: 238, 264). 사육신은 살이 타들어가는 고문의 고통을 견뎌내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충절을 꺾지 않고, 자신의 기개를 지켜낸 사람들이 바로 사육신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폭정과 가난으로 점철되던 서양의 중세시대에 고결한 꽃으로 죽음을 맞이한 자들은 이단자들이었습니다. 화형대에서 몸이 타들어가고 연기에 질식하면서도,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믿음과 지조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단자Ketzer”는 “카타르모스καθάρμός”, 다시 말해 “순화” 내지 “순결함”에서 파생된 종파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이단의 종파는 종교적 진실을 찾으려는 순결한 종파와 동일합니다.
24. 기독교의 혁명성과 정의의 구현: 조아키노의 종말 개념은 “시간 유토피아 이전에 출현한 사고 형태”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조아키노의 천년왕국의 종말론은 먼 훗날 프롤레타리아들에게 혁명적 폭발력으로 계승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계급 없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적 신념을 생각해 보세요.
실제로 조아키노가 추구한 종말론의 유토피아는 “어째서 모든 인간은 마지막 시간에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양심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중세 때 기독교를 이해하던 신화적인 신앙의 표현과는 전적으로 무관합니다. 오히려 조아키노는 기독교 혁명 정신을 내세가 아니라, 현세에 구현시키려고 한 사상가로서, 그러한 생각을 가르치고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신의 나라, 즉 공산주의의 사회를 위하여 우선 어떤 시간을 규정하였으며, 이곳으로 함께 나아가자고 외쳤습니다.
조아키노는 “아버지의 신학”을 두려움과 노예의 시대로 되돌려 보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하나의 코뮌으로 해체시켰습니다. 실제로 조아키노만큼 보다 나은 현실 사회에 대한 기대감을 진지하게 생각한 신학자는 예전에는 없었습니다. 예수를 새로운 이 세상의 “시간” 속으로 받아들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교회에서 허사로서 사용되던 “종말에 대한 기대감”에다가 참된 뜻을 불어넣어준 분이 바로 조아키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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