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중세 문헌

서로박: (2) 조아키노의 제 3제국에 대한 갈망

필자 (匹子) 2023. 3. 15. 11:42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세 단계로서의 역사 (1): 조아키노는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의 세 가지 관점을 역사철학에 적용하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야 말로 조아키노의 공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의 방법으로부터 도출해 나오는 것은 "역사의 세 가지의 단계의 발전 과정입니다. 조아키노의 가르침에 의하면 역사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 세 단계는 모두 신의 나라를 이룩하려고 하며, 이에 접근하려는 노력과 관련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성부의 역사, 즉 야훼신의 역사를 지칭합니다. 이것은 메시아가 출현하기 이전의 시대에 해당하는, 구약성서에 자세히 서술되고 있는 공포의 시기 내지는 의식된 법칙의 시기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다시 말해서 성자의 역사를 지칭합니다. 이것은 신약성서에 표현되고 있는 사랑의 시기 내지는 기독교 교회가 다스리는 시기입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교회라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하여, 교황청을 만들었으며, 수사와 평신도를 계급적으로 구분시켜 왔습니다.

 

7. 마르키온: 여기서 우리는 조아키노에게 끼친 마르키온Marcion의 신학적 견해를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마르키온은 자신의 많은 재산을 쾌척하면서 그리스도에 관한 문헌 집필을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면서 살았습니다. 역사의 두 단계와 관련하여 그는 구약의 시대와 신약의 시대를 철저하고도 극단적으로 대립시켰습니다. 전자가 끔찍한 죄악과 사악한 범죄의 기간이라면, 후자는 마르키온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되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마르키온은 인간은 똥과 오줌 사이에서 태어났다.inter urinas et faeces homo nascitur.”라는 발언을 서슴없이 토로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시대가 불의와 추악함 그리고 더러움을 척결하려고 하던 시대라면, 신약의 시대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정의로움과 사랑 그리고 순결이 출현한 시대라고 합니다.

 

8. 세 단계로서의 역사 (2): 앞으로 도래할 세 번째 단계는 성신, 즉 성령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것은 조아키노에 의하면 성령을 통해서 신의 찬란한 불빛을 얻게 될 시기를 지칭합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군주나 교회 없는 신비로운 민주주의 체제 내에서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합니다. 새로운 시대는 조아키노에 의하면 만인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가 출현하게 되면, 사람들은 기독교의 제반 예식을 담당하는 사제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제들은 권위주의 체제로서의 교회,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가르침을 강요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이 조아키노의 지론이었습니다.

 

따라서 역사의 세 번째 단계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시기로서, 성령 내지 성신의 역사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시작되면, 더 이상 사제의 집단적 권위는 사라지게 되며,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든 간에 성스러운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직접 수용하게 되리라고 합니다. 여기에는 어느 누구의 중개도 필요 없으며, 어떠한 설교 문집도 필수적인 게 아니라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과 주님을 믿는 신앙인 사이의 직접적인 영적 교감이라고 합니다.

 

9. (부설) 세 가지 복음에 대한 에크하르트 선사의 비유: 조아키노의 세 가지의 복음은 당대와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세 가지 복음은 이를테면 신비주의 사상가, 에크하르트 선사Meiser Eckhart의 비유를 통해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가령 첫 번째 복음은 인간에게 , 두 번째 복음은 인간에게 이삭을 전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세 번째 복음은 차제에 인간이 일용할 양식으로서의 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첫 번째 복음은 고통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명 그 자체를 전했습니다. 그렇지만 풀은 그 자체 생명일 뿐, 인간에게 직접적인 영양이 되지는 못합니다.

 

두 번째 복음은 고통당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이삭을 전해줍니다. 이로써 우리는 믿음이라는 결실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삭 속에는 어떤 열매의 가능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복음은 고통당하는 가난한 민초들에게 생명의 영양인 밀을 전해주리라고 합니다. 밀은 그 자체 영양이고,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음식, 바로 그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성자는 성부의 정신을 구체화시키고, 성령은 다시금 성자의 정신을 더욱더 분명하게 표출하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종말의 시간이 다가오면, 지배자와 부패한 고위 수사들은 더 이상 특권을 누릴 수 없으며, 일반 사람들은 더 이상 권력자와 사제들로부터 피해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 세 번째 복음의 나라 (1): 상기한 놀라운 혁명적 발언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성부가 지배하는 두려움의 시대로서의 구약성서의 시대가 사라지고, 성자가 베푸는 은총의 시대에 해당하는 신약성서의 시대가 지나가면, 반드시 새로운 시대가 출현하게 된다고 합니다. 과거 (지배와 두려움의 시대) 그리고 현재 (완성된 정신과 사랑의 시대)가 자취를 감추게 되면, 미래에는 마지막 나라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라를 다스리는 존재는 이른바 성령 내지 성신이라고 합니다. 조아키노는 역사 발전의 이러한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를 자신이 처한 시대에 대입하였습니다. 예컨대 그는 다음과 같이 진단하였습니다. 즉 자신이 처한 시대에 종말이 다가오고, 지배자와 부패한 수사들은 더 이상 특권을 누릴 수 없으며, 평신도들은 더 이상 피해당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리라.”는 것입니다. (Jens J: 773). 조아키노의 발언은 중세에 수많은 이단 종파를 낳게 하였으며,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을 강화시키게 해주었습니다.

 

11. 미래에 설정된 구원사의 출발점: 요약하건대 조아키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지금까지 기독교인들은 아직 한 번도 마지막 계시의 시간 속에서 살아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성부의 시대 (아브라함에서 그리스도까지의 시대)이고, 두 번째는 성자의 시대 (그리스도부터 지금 현재까지)이며, 세 번째는 성령의 시대 (언젠가 도래할 미래의 시대)라고 합니다. 놀라운 것은 조아키노가 구원의 역사의 시작을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시점에 설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1세기부터 12세기까지 그리스도 속에서 구원사의 어떤 유일한 전환점을 애타게 투시하였습니다. 즉 역사의 종말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비로소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조아키노는 이와는 다르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전 시대의 삶과 이후 시대의 삶을 서로 구별해주는 하나의 전환점으로 이해된다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시작되는 것은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교회의 종말이라고 말입니다. 사람들은 조아키노의 사상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즉 사람들은 언젠가는 교회중심으로 이루어진 지금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토대의 세상에서 반드시 자유롭고도 평등하게 살아가게 되리라는 확신 말입니다.

 

12. 세 번째 복음의 나라 (2): 조아키노는 자신의 글 신구약성서의 조화에 관하여De concordia utrisque testamenti에서 다음과 같이 세 번째 복음의 사상을 분명하게 밝힌 바 있습니다. “세상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상황으로 분할될 수 있다. 첫째로 과거 사람들은 법의 지배 아래 있었으며, 둘째 현재 사람들은 은총의 지배 아래 머물고 있다. 그렇기에 셋째로 우리는 모든 게 극복된, 더욱더 증폭된 은총을 누리기를 기대한다. (...) 자아의 상태는 첫째, 지식 속에, 둘째, 참된 지혜 속에, 셋째, 지성의 충만함 속에 침잠해 있었노라.” (블로흐 2004: 1035). 세 가지 특성 가운데 두 가지 사항, 즉 지식과 지혜는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내었으나, 세 번째 사항, 즉 지성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식은 야훼 신에 의해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명확한 의미를 드러내었는데, 지성은 아직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지성을 대변하는 분은 오로지 성령인데, 그분은 오직 어떤 절대적인 강림의 축제를 통해서만이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나라가 개벽하면, 권위적 위계질서는 사라지고, 모든 사람들은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구가하게 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조아키노의 세 번째 복음의 의미를 어느 정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에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참회와 형벌을 강요하는 성부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을 하직한 역사적 예수에게 더 이상 수동적인 기대감을 느낄 게 아니라, 오히려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성령 내지 성신의 발언에 대해 더욱 열정적으로 귀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조아키노는 3의 제국에 관한 구체적 형상을 요한 계시록21장에 언급되어 있는 새로운 예루살렘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