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13. 천년왕국과 최후의 심판: 세 번째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의 파시스트에 의해서 어처구니없는 제 3 제국이라는 용어로 사용된 바 있습니다. 조아키노는 단 한 번도 “제 3의 제국”을 명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1190년 강림절을 기점으로 세 번째 성령의 시대가 출현하리라고 암시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선한 기독교인들이 다스리는 평등한 시대가 반드시 출현하리라는 것입니다. 그 시점은 아마 1260이 되리라고 조아키노는 예견하였습니다. 이는 바로 천년 후의 그리스도의 재탄생, 다시 말해서 재림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 경천동지할 개벽이며, 놀라운 휴거의 사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의 대리인인 성신 내지는 성령이 재림하는 마지막 심판의 날이 도래하게 되면, 모든 것이 정의롭게 판결되리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선택될 수 있는 사람들은 조아키노에 의하면 오로지 정의롭고 가난한 기독교인들이라고 합니다. 오로지 이들만이 훗날에 진정한 의미의 천국에서 살아가리라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정신이 지배하는 시대는 특권이나 죄악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14. 천년왕국의 의미 (1): 천년왕국설은 엄밀히 고찰하면 유대주의에서 언급되던 메시아사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구약의 예언서를 읽어보면, 예언자들이 세상의 부정을 척결하기 위해서 얼마나 강렬하게 구세주를 부르짖었는가? 하는 사항을 접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메시아사상 역시 유대주의의 전통 속에서 이어진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기원 후 70년에 티투스에 의해서 완전히 허물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천국의 예루살렘을 갈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천년왕국이라고 해서 무조건 천년의 시점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령 기원 후 2세기에 시리아어로 집필된 『바르나바 복음서Barnabasevangelium”를 우리는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바르나바 복음서는 바르나바의 편지와는 다른 것입니다. 바르나바 복음서는 예수가 죽은 뒤 그와 근친했던 바르나바에 의해서 기술된 것으로서 기원 후 478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문헌은 323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위경으로 규정된 것인데, 수많은 가필 정정으로 인하여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담겨 있습니다. (Schirrmacher: 210f).
이에 비하면 바르나바의 편지는 기원후 70년에서 바르 코크바Bar Kochba의 폭동이 발발한 시점인 132년 사이에 발표된 것으로서 기독교가 유대교와 구분되어야 하는 이유, 기독교인들이 어째서 일요일을 안식일로 맞이해야 하는가? 하는 점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세계는 육천년 지속되리라고 합니다. 7000년이 되면 신의 아들이 출현하여 신을 경시하는 자들을 파멸시키고, 죄인들을 법정에 세우게 되리라고 합니다. 신의 아들은 태양, 달 그리고 별들을 새롭게 창조하고, 약 천년동안 정의로운 자들과 함께 살아가리라는 것입니다. 이를 고려하면 천이라는 숫자는 수학적 의미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5. 천년왕국의 의미 (2): 천년왕국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언젠가 때가 되면 바로 여기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생겨나는 국가입니다. 찬란한 신앙의 나라는 지상에서 발견되는 게 아니라, 예언적인 기대감 속에서 돌출하는 무엇입니다. (Freyer: 82f). 따라서 그것은 물질적 의미를 지니는 게 아니라, 일차적으로 인간의 의식을 가득 채우는 사고로서 출현합니다. 따라서 천년왕국설은 근대에 출현하는 시간 유토피아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천년왕국설Chiliasmus”은 그리스어의 “천년χιλία”이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인데, 신약성서의 「요한 계시록」제 20장으로 귀결됩니다. 천년이 지나면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고, 모든 사물의 종말이 출현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다림과 계시 그리고 휴거의 내용을 접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의 현실에서 권력과 결탁한 교회 세력과의 근본적인 갈등을 의미합니다.
16. 계급이 사라진 세 번째 복음의 나라: 세 번째 복음의 사회에서는 더 이상 계급적 차이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계층도 없고, 수사 계급도 없으며, 권위를 내세우는 교회 체제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유로운 정신이 지배하는 시대에는 특권이나 죄악이 없는 세계를 갈구하는 영적인 불빛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새롭게 변화된 세상은 오로지 “하나의 구유, 하나의 목자Unum ovile et unus pastor”의 영향하에 있습니다.
계급 차이가 없는 시대가 열리면, 인간의 육신도 마치 천국의 원래 상태처럼 순수하게 즐거움을 누리게 되리라고 합니다. 시적으로 표현하면 마치 “영원한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도 오월이 찾아들어서” 종교적 부활의 열기로 가득 차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블레이크: 88). 이러한 종교적인 열기는 영국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구에 문학적으로 반영되어 프랑스 혁명의 정신으로 이어졌으며, 먼 훗날 계몽주의의 시기에 이르러서는 어떤 독특한 휴머니즘 사상을 낳게 했습니다. (블로흐 2009: 236).
가령 고트프리트 켈러Gottfried Keller의 소설 『초록의 하인리히Der grüne Heinrich』(1855/ 1879)의 두 명의 등장인물 포이어바흐 그리고 안겔루스 실레지우스Angelius Silesius를 생각해 보세요. (고규진 2: 491, 495). 켈러의 소설에서는 종교를 넘어서는 체제비판의 정신 내지는 무신론의 사고가 대담하게 출현하고 있습니다. “피어나라, 얼어붙은 기독교여./ 5월이 가까이 와 있거늘/ 그대는 영원히 죽은 채로/ 지금 여기서 피어나지 않네.” (Silesius: III, 90). 시인, 안겔루스 실레지우스는 상부의 우상이라든가 외부적 자연에 대한 경배 등을 전적으로 타파하고, 오히려 인간의 아들로서의 어떤 새로운 신적 개념을 예리하게 투시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작가, 고트프리트 켈러는 인민 사이에 떠도는 메시아를 갈구하는 신비주의 신앙을 작품 속에 분명하게 반영하였으며, 루드비히 포이어바흐의 무신론의 사고를 과감하게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17. 조아키노가 파악한 성령의 본질 (1): 조아키노의 천년왕국설은 기독교 사상의 뿌리에서 비롯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유대교의 메시아사상을 거쳐서,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 종교 그리고 마니 종교가 추구하던 성령의 가르침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조아키노의 천년왕국설은 「바르나바 복음서」에서 나타난 이슬람 사상의 흔적 역시 은근히 배여 있습니다. (이렇듯 유럽의 종교 사상의 흐름을 하나의 별개로 이해하여, 그것을 폐쇄적으로 천착하는 작업은 상당한 오류를 도출할 위험성을 지닙니다.)
원래 “성령”이란 고대 아테네 사람들의 그리스어 표현에 의하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파라클레토스는 법정과 관련되는 단어인데, "재판저에서 일하는 소송 보조인 Goel"으로서 불의를 척결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영혼을 가리킵니다. 성령 내지는 성신은 어쩌면 불교에서 언급되는 “보살”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보살은 자신만의 해탈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이로움 (自利)과 타인의 이로움 (利他)을 동시에 추구하는 자로서, 성령과 접목될 수 있습니다. 도올 김용옥은 성령을 보혜사 (保恵師)로 번역했습니다. (김용옥: 108).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협조자”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루터 성서에서 차용된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 단어를 독일어로 “위로하는 자Tröster”로 번역했습니다. 이로써 성령의 존재는 어처구니없게도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목사로 곡해되어 알려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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