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중세 문헌

서로박: (1) 조아키노의 제 3제국에 대한 갈망

필자 (匹子) 2023. 3. 15. 11:37

1. 조아키노의 천년왕국설: 중세의 이단적 사상가, 조아키노 디 피오레 (Joachim di Fiore, 1130 - 1202)는 오리기네스의 성서 독해의 세 가지 방법을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여, 이를 역사철학에 대입하였습니다. 종말론에 입각한 천년왕국설의 이념은 조아키노에 의해서 처음으로 확립되었습니다. 그의 천년왕국설은 중세의 수많은 작은 기독교 종파에게 빛과 희망을 불어넣어주었으며, 중세 말기에 평신도 운동 그리고 기독교 신비주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천년왕국의 사상에 입각하여 또 다른 세상을 갈망했다는 이유로 이단자로 몰려 처형당한 기독교인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이들의 순교는 오늘날에도 기독교 정신의 꽃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아키노의 사상을 파악하려면 우리는 12세기부터 서서히 출현하는 인구 이동에 관한 역사적 지리학적 전제 조건을 우선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 도시의 형성 등으로 인한 장원제도의 붕괴 내지는 인구의 이동 등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세의 천년왕국설은 이렇듯 부자유의 라티푼디움을 떠난 민초들에 의해서 구전되었습니다. 특히 유럽 지역 가운데 벨기에, 네덜란드, 라인 강변의 지역 중남부 독일, 런던 그리고 보헤미아 지역에서는 많은 인구 이동이 발생하였는데, 이 지역에서 퍼진 것이 바로 천년왕국설이었습니다. (Servier 74).

 

2. 조아키노의 삶: 조아키노의 삶과 사상을 접하게 되면, 우리는 천년왕국설의 배경 그리고 그 목표를 감지할 수 있습니다. 조아키노는 1130년 이탈리아의 칼라브리아 지방의 칼리코에서 국가의 공무원인 법률서기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그는 처음에는 공무원으로 일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직책은 코젠차에서의 법률 서기관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아키노는 천성적으로 신앙심이 깊었으며,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깊은 사고에 침잠할 줄 알았습니다. 장래 문제로 인해 아버지와 여러 번에 걸쳐 의견 충돌이 발생하였고, 결국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게 됩니다.

 

조아키노는 1166년부터 1167년 사이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어떤 심리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삶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조아키노가 받은 충격은 그의 미래의 삶을 결정할 만큼 강렬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탈리아로 돌아온 다음에 조아키노는 수년 동안 은둔자로서 고행자로서의 삶을 살아갑니다. 뒤이어 그는 이탈리아의 코라초 지역의 루치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이탈리아 곳곳에서 수사로 활동하던 조아키노는 1171년 코라초에 있는 수도원에서 성직자로 생활하였으며, 1188년 교황으로부터 신에 관한 해석의 연구를 부탁을 받아, 은둔하면서 명상과 집필에 전념합니다. 1192년 수도원으로 복귀한 조아키노는 이탈리아 남부 지방인 칼라브리아에 수도원을 창립하였고, 수도원장으로서의 직분을 다하다가 1202년에 사망하였습니다.

 

 

3.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의 세 가지 방법 (1): 우리는 일단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의 세 가지 방법을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조아키노는 자신의 고유한 역사철학적 모티프를 오리게네스에서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오리게네스는 기원 후 3세기에 교회가 종교법을 통해 인정받기 전에 살았던 교부입니다. 그는 성서의 독해 방법을 세 가지로 나누어 가르쳤습니다. 성서 독해의 방법은 오리게네스에 의하면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육체적인 방법이고, 둘째는 심리적인 방법이며, 셋째는 영혼적인 방법입니다. 첫째로 육체적인 방법은 소재의 인간Hyliker이 글을 읽는 방식입니다. 소재의 인간은 낱말의 자구적인 의미를 충실하게 추종합니다. 이는 글의 피상적 의미에 집착하는 태도로서 그 자체 단순하고 짧은 생각을 떠올리게 합니다. 따라서 소재의 인간은 성서의 자구적인 의미 그 이상을 간파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심리적인 방법은 심리적 인간Psychiker이 성서를 읽는 방식입니다. 심리적 인간은 윤리적 암유의 방식으로 기독교 사상을 이해하며, 성서의 배후에 도사린, 어떤 심층적 차원에서의 도덕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로써 우리는 문장을 자구적으로 읽는 방식을 지양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감추어진 문맥을 파악하는 두 번째의 경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로써 그는 성서의 내용을 일차적으로 이해할 뿐 아니라, 인물들에 대한 심리적 공감 뿐 아니라, 심지어는 문맥 속에 나타난 역사적 맥락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4.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의 세 가지 방법 (2): 셋째로 정신적인 방법은 영혼의 인간Pneumatiker이 글을 읽는 방식입니다. 영혼의 인간은 독서를 통하여 성령의 내면을 터득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는 글이나 문맥을 중시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저자의 근본 의도를 영성적으로 추적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러한 노력은 문장과 문맥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영혼의 인간은 책 속에 감추어진 영원한 삶에 관한 복음의 의미를 총괄적으로 간파합니다. 영원한 삶에 관한 기쁨의 말씀의 의미를 심정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야 말로 영혼적인 방법에 해당하는 게 아닐 수 없습니다. 영혼의 인간은 오리게네스의 견해에 의하면 성서를 놀랍게도 영성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성령과 함께 살아가는 영혼의 인간은 성서의 자구적 의미를 포착하고, 성서 속에 내재한 교훈을 자신의 마음속 깊이 담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성서의 내용을 자신의 삶과 일치시킬 수 있을 정도의 깊고도 심원한 감화를 받습니다. 비록 성령의 실현 행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지금 살고 있는 세상에서 성서를 읽으면서, “성령의 기운을 미리 포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의 세 가지 방법: 따라서 성서의 세 번째 독해 방법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습니다. “(성서를) 읽으면서 내면의 성령을 깨닫도록 하라.Legens spiritu intus docente.” 진정한 기독교인은 성서의 말씀을 체화시켜서 자신의 몸과 마음속에 영성적으로 터득하는 분을 가리킵니다. 14세기에 조아키노 사상가로 활약한 콘스탄츠 출신인 텔레스포루스는 다음과 같은 말로 오리게네스의 성서 독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습니다. “오로지 언어의 구절만 듣는 자는 내면에 담긴 영혼의 말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Nemo audit verbum nisi spiritu intus docente.(Otto: 188). 이 발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에 기록되어 있는 문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만약 누군가 겉으로 판단되는 진리의 언어만을 듣는 자는 그리스도의 내면의 말씀을 듣지 못할 것이다.” (Augustin 1990: X, 6). 따라서 문제는 자구적으로 표현된 글이 아니라, 성서를 읽는 영혼들이 느끼는 영성적 교감이라는 것입니다.

 

6. (부설) 오리게네스의 켈수스 비판: 그밖에 우리는 오리게네스와 관련하여 한 가지 사항을 덧붙일 수 있습니다. 즉 오리게네스는 켈수스를 논박함에서 켈수스의 정치적 측면에서의 체념을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세계 국가에 관한 자신의 갈망을 피력하였습니다. 켈수스는 세계 평화를 위한 종말론적 믿음 내지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민족이 하나의 법, 이를테면 만민법 ius gentium”에 의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은 무척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는 켈수스에 의하면 정치적으로 도저히 실현될 수 없다고 합니다. (코젤렉: 261). 그러나 오리게네스는 이러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합니다. 분열된 현실적 상황 속에서 세계의 통일은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과업이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오리게네스: 229). 여기서 우리는 세계 평화와 단일 곡가에 관한 오리게네스의 갈망을 읽을 수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