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작가의 시대 비판 (4): 다섯째로 칼렌바크는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낭비의 풍조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마트와 대형 백화점에서는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을 구매하려고 모인 고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능률중심주의 내지 이행능력 중심주의의 사고는 미국 서부 개척의 역사에서 맨 처음 출발하였고, 무한대의 재화를 차지하려는 열망은 카우보이의 생활관으로 정착되었다. 이는 특히 미국 사회에서 결국 자연을 무한대로 착취하려는 “미국식 삶의 방식”으로 정당화되기도 하였다. 칼렌바크는 이러한 낭비의 풍조야 말로 현대인들 개개인이 떨쳐야 하는 끔찍한 악덕이라고 규정한다.
이와 관련하여 생존자 당은 환경에 미치는 폐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물건의 재순환과 재활용을 열렬히 지지한다. 특히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세계의 경찰국가로 자처하는 미국의 군수품 생산이다. 미국은 유용한 자본과 최고의 두뇌를 오로지 “적국” 그리고 “적국의 인민”을 살상하는, 불필요한 짓거리에 활용한다고 한다. 예컨대 미국 정부는 고성능 탄도탄을 마음대로 개발하면서도, 대도시의 교통 체제를 훌륭하게 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발뺌하고 있다.
7. 주인공의 태양전지 개발: 작품의 주인공은 18세의 루 스위프트이다. 그미는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처녀이다. 그럼에도 루는 섬세한 심성과 진지한 학구열을 지니고 있다. 그미의 학문적 열정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를테면 루 스위프트는 주어진 자연 현상에 대해 언제나 의문을 제기하는 등 대단한 탐구욕을 드러낸다. 작품은 루 스위프트가 어떻게 재생 가능 에너지를 실제 현실에 도입할 수 있는가를 자세하게 서술한다. 루의 노트에는 태양의 에너지의 흡수를 통한 광전자 효과에 관한 실험 과정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놀라운 것은 대기업 내지 중소기업에 고용된 과학자들도 성공해내지 못한 태양전지를 일개 18세의 처녀가 혼자의 노력으로 발명해낸다는 사실이다. 더욱더 가관인 것은 이러한 실험이 대기업의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루가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는 사실이다. 대기업은 어떻게 해서든 간에 루 스위프트의 자연과학 실험을 막으려고, 흥신소 사람을 고용하여, 그미의 작업 노트마저 훔치려고 한다. 어쨌든 주인공의 태양 전지 개발은 생태를 고려한 자연과학의 활용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태양 전지의 개발은 몇 년 후에 건설되는 생태 국가, 에코토피아의 에너지 공급원이라는 중요한 자산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8. 메리사 다마토: 등장인물 가운데 몇몇은 『에코토피아』에 이미 등장한 바 있다. 가령 메리사 다마토 그리고 베라 올웬이 그들이다. 이전의 작품에서 메리사는 목재 및 수목 보호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회원으로 일하다가, 윌리엄 웨스턴에게 에코토피아의 목재 산업과 자연보호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러다가 그미는 윌리엄 웨스턴과 하룻밤의 정을 나눈다. 이에 비하면 『에코토피아 출현』에서 메리사는 처음에는 젊은 여대생으로 등장한다. 작품은 그미가 어떻게 오염과 남획으로 파괴된 자연을 복원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는가를 차례대로 서술하고 있다.
메리사는 야영을 통해서 체력을 단련하며, 특히 나무와 목재에 관한 지식을 하나씩 터득해 나간다. 나무들은 그미에게는 가만히 머물면서 조용히 호흡하는 친구와 같다. 이로써 메리사는 중세의 드루이드교 사제처럼 나무의 생명체를 자신의 존재의 일부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와 병행하여 그미는 나무의 수종, 나무의 보호 정책, 병충해 방지를 위한 실험 그리고 묘목 관리 방법 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면서, 미국 당국의 삼림관리 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메리사가 생존자 정당에 가입하여 생태 보존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9. 베라 올웬과 생명의 물: 베라 올웬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는데, 어느 날 주정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뉴올리언스에 체류하고 있었다. 이때 그미는 시카고,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신시내티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에서 살고 있는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오염된 물을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식수는 농약, 화학 비료, 제초제와 산업폐기물 등으로 인하여 심하게 오염되어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곳 사람들이 식수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해달라고 단 한 번도 당국에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정치가들은 식수의 정화를 위해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러한 조처를 통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1970년대에 환경보호국은 하수처리 시설에 관한 방대한 프로그램을 개발해내어 시내와 강의 오염을 완화시켰다. 환경보호국은 EPA 규제를 통하여 위험물질의 제조 단계에서 폐기과정까지 단속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기업들은 법규를 위반하고 벌금을 내는 게 화학제품을 제조하여 환경을 더럽히는 것보다도 싸게 먹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EPA 규제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법규로 판명되었다. 70년대 말에 이르러 캘리포니아의 환경 보호국은 경제적 채산성을 이유로 해체되고 만다. 베라 올웬은 미국 정부의 어떠한 당도 미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실질적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10. 하지 말라 십계명 (1): 대부분의 미국 사람들은 정치적 사안으로부터 배제되어 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국가의 경영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간접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국가의 규모가 너무나 방대해졌기 때문에, 사람들은 국가의 경영 정책을 위한 엘리트 전문가를 국회로 보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국회의원들은 국민의 의사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벼슬아치들이 아니라, 자신의 이득에 혈안이 되어 있다. 베라 올웬은 이것이 간접 민주주의의 폐단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된다. 그미는 주민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생존자당이 창립되어야 하는 필연성에 관해 토론을 벌인다.
토론의 과정을 거쳐서 “더 이상 하지 말라.”라는 십계명을 창안한다. 이로써 “하지 말라 십계명”은 생존자당의 기본 원칙으로 확정된다. 첫 번째 강령은 “다른 생명을 멸종시키지 말라.”이다. 산업혁명과 인구 성장의 결과로 수많은 동식물들이 지구상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힘없는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지 말라.”가 아니라, “다른 생명을 멸종시키지 말라.”라는 전언이 당의 첫 번째 강령으로 채택된 것은 그 자체 의미심장하다. 이는 생존자당의 기본적 입장이 인간본위주의라는 일방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생명체 중심주의라는 전체적 시각으로 이전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11. 하지 말라 십계명 (2): 두 번째 강령은 “핵무기와 원자력 발전소를 건립하지 말라.”이다. 사람들은 경제성장 그리고 에너지의 부족을 이유로 원자력 발전소 건립이 필연적이고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베라 올웬의 생존자당은 핵에너지를 현대인들을 불행으로 몰아가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가작 끔찍한 “신의 선물”로 간주하고 있다. 그것은 언젠가 헤시오도스가 표현한 대로 “하나의 아름다운 악덕 καλὸν κακόν”과 같다. 왜냐하면 핵발전소가 정상적으로 작동된다고 하더라도 핵폐기물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이를테면 시애틀에 있는 핵발전소의 퓨젠 1호기의 냉각수의 공급이 차단되어 우라늄 노심이 녹아내리는 심각한 경우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원자력 에너지는 인류에게 엄청난 재앙과 손해를 가져다줄 것이다. 이를 감당할 사람은 후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핵에너지의 활용은 중단되어야 마땅하다고 한다. 작품 내에서 생존자 정당은 개별적으로 세력을 확장시켜서 미국 서부지역은 물론이고, 동부지역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정책을 실천한다. 그들의 정치적 결실은 워싱턴 주지사의 해임 그리고 워싱턴 주에서의 원자력 발전소의 건립 금지로 나타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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