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반테스 12

서로박: (4)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앞에서 계속됩니다.) 친애하는 C, 튼실하고 멋진 여왕벌에는 언제나 수많은 수벌들이 모이듯이, 탁월한 명작을 집필한 작가 주변에는 요상한, 혹은 훌륭한 모방 작가들이 들끓기 마련입니다. 가령 괴테가 파우스트 제 1부를 일차적으로 완성한 시점은 1797년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괴테는 작품을 끊임없이 개작하였습니다. 그후 35년 후에 파우스트 제 2부가 완성되었으니 필생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19세기 초에 어느 젊은이가 자신이 파우스트 제 2부를 집필했다고 말하면서, 원고를 들고 괴테를 찾아왔습니다. 이때 괴테는 몹시 분개하면서, 이 세상에 파우스트를 완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자가 있다면, 그는 오로지 자신이라고 일갈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괴테는 훌륭한 작가임에는 분명하지만, 인간으로서..

34 이탈스파냐 2024.06.27

서로박: (2)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앞에서 계속됩니다.) 친애하는 C, 여기서 소설의 화자에 관해서 잠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키호테의 일행은 톨레도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시드 하메테 베넨겔리 Cid Hamete Benengeli라는 이름을 지닌 아라비아 역사가의 원고 뭉치가 발견됩니다. 바로 이때부터 소설의 화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화자는 “베넨겔리 Benengeli”라는 이름을 지니는데, 이 이름은 아라비아어로서 “사슴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뜻은 에스파냐어로 “세르반테뇨 cervanteño”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작가의 이름과 동일합니다. 원고뭉치 속에는 대부분의 아라비아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거짓말하는 버릇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세르반테스의 편견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여담이..

34 이탈스파냐 2024.06.24

박설호: (18) 희망의 원리. 제 4차 강의

(17에서 계속됩니다.) 8 햄릿, 갇힌 의지: 고뇌하는 인간은 행동하지 않는 한 죽은 영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는 내심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는 의지를 품고 있지만, 모든 격정은 자신의 내면에서 반대 상으로 떠오를 뿐입니다. 남성적 욕망과 실천적 의지는 폐쇄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의 숙고 행위는 자신의 행동을 방해합니다. 햄릿은 자신의 마음속에 갇힌 수인(囚人)입니다. 전체적으로 고찰할 때 햄릿 역시 블로흐에 의하면 거대한 유형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몽상가입니다. 그러나 햄릿은 너무 과도한 목표를 선취함으로써, 그것을 점화시키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중요한 행동에 대한 대리 행위를 너무 많이 떠올림으로써 스스로 마비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냉정하고 무미건조한 햄릿의 사고는 밤의 분위..

27 Bloch 저술 2024.04.01

서로박: (1) 프리스의 "알렉산더의 새로운 세계"

논문 제목: 유토피아의 상으로서의 처녀지, 성, 혹은 실현의 아포리아 - 프리츠 루돌프 프리스의 『알렉산더의 새로운 세계들』 연구 출전: 독일언어문학, 제 59집, 2013, 67 – 85쪽. I. 들어가는 말 본고는 프리츠 루돌프 프리스의 작품, 『알렉산더의 새로운 세계들』(1982)의 분석을 통하여 특히 성의 측면에서 인간이 갈구하는 사랑의 삶 그리고 이와 결부되는 사회정치적 관련성 등을 추적하려고 한다. 여기서 “유토피아의 상으로서의 처녀지”란 프리스 문학의 경우 여성, 특히 인간의 성욕이 충족되는 비너스 산 등에 관한 비유로 이해될 수 있다. 실제로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주로 돈 후안 그리고 헬레나와 같은, 자유분방한 남녀들로 설정되어 있다. 그들이 추구하는 삶은 작품 속에서 마치 엘레우시스의 축제..

30 논문 자료 2023.04.15

서로박: 프리스의 문학세계 (3)

(앞에서 계속됩니다.) 4. 『비행선』(1) 두 번째 작품, 『비행선 Das Luftschiff』은 『오블라두로 향하는 길 Der Weg nach Oobladooh』과는 달리 동서독에서 공히 197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비행선을 소재로 한 작품은 주로 20세기 이후의 유럽 문학에서는 생텍쥐페리의 일련의 소설 외에는 거의 출현하지 않았는데, 프리스가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텍쥐페리의 소설과 프리스의 『비행선』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리라고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전자가 모성과 이에 대한 일탈이라는 심층 심리적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다면, 후자는 시민주의 사회의 부자유와 이에 대한 일탈 욕구라는 어떤 사회학적이자 정치적인 모티프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소재가 ..

45 동독문학 2023.03.14

서로박: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행' (4)

7. 소설은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순례자들은 야영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때 세르반테스는 스스로 잘못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냉소적인 비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자신의 삶의 방황에 대한 참회록이라는 느낌을 드러내는데, 이는 작가의 자기비판에 바탕을 둔 냉소적 풍자에 기인합니다. 페리안드로와 아우리스텔라는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손목을 잡은 채 밤을 지새웁니다. 다음날 아침에 또 다른 순례자들이 합류하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르날도와 데무르 공작이 순례자의 복장 차림으로 끼여 있었습니다. 아르날도 왕자는 여전히 아우리스텔라와의 결혼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으며, 데무르 공작 역시 첫눈에 그미에게 반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지..

34 이탈스파냐 2022.12.02

서로박: '페르실레스와 사히스문다의 고행' (2)

3. 안토니오는 자신의 가족과 세 사람의 이방인들과 함께 인접한 섬으로 도주합니다. 인접한 섬에는 이탈리아 춤꾼인 루틸리오가 살고 있었습니다. 루틸리오는 자신이 어째서 북구의 추운 섬으로 이주하여 살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줍니다.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춤추면서 살았는데, 북구 출신의 어느 여자에게 반하여 부모와 고향을 저버리고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루틸리오는 자신의 고향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것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섬에 모인 사람들은 합심하여 로마로 순례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안토니오는 인접한 다른 섬으로 가서 포르투갈 출신의 가수를 데리고 옵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남유럽으로 떠나기를 애타게 고대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은 소사 코틴호였는데, 오랫동안 사랑의 열병을 ..

34 이탈스파냐 2022.12.02

서로박: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행' (1)

1. 친애하는 C, 오늘은 세르반테스의 유작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 Los trabajos de Persiles y Sigismunda』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흔히 세르반테스 하면, 돈키호테를 연상하는데, 문학연구가들은 진정한 명작으로서 세르반테스의 유작을 거론하곤 합니다. 작품은 헬레니즘의 연애 소설 내지는 모험 소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세르반테스 (1547 - 1616)가 죽기 나흘 전에 완성된 것입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세르반테스는 1599년에 이 작품의 집필을 착수하였는데, 죽기 직전에 마지막 힘을 쏟으면서 탈고했다고 합니다. 그는 탈고 후에 다음과 같은 시구를 남겼습니다. “나의 발은 이미 죽음의 바람을/ 맞으며 저세상 난간에 섰는데/ 주여 나는 이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34 이탈스파냐 2022.12.02

서로박: 소네트 패러디 (1)

다음의 글은 나의 논문 "고상한 소네트에서 조야한 소네트로"의 일부이다. 나: 소네트는 현대인의 사랑과 성을 담기에는 진부한 형식, 다시 말해 헌 부대에 불과하지요. 현대인들이 목숨 건 사랑을 체험하는 경우는 이제 드뭅니다. 사랑을 가로막던 장애물들이 오늘날 거의 철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비극을 처절하게 노래할 필요성이 사라졌어요. 이에 반해 과거에는 구태의연한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 온존하였으므로, 죽음을 각오하는 사랑의 열정은 실제로 출현했고, 이는 소네트를 통해 묘사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피에르 아벨라르 (1079 - 1142)는 엘로이즈라는 아리따운 처녀의 가정교사로 일했는데, 그들은 활활 타오르는 연정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끝내 살을 섞었습..

22 외국시 2021.09.05

서로박: 프리츠 루돌프 프리스의 '오블라두로 향하는 길'

친애하는 F, 오늘은 프리츠 루돌프 프리스 (Fritz Rudolf Fries, 1936 - )의 문학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프리스는 1936년에 에스파냐의 빌바오에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일 군인으로 참전했다가, 에스파냐의 파르티잔에 체포되어 총살당했습니다. 1942년 가족들은 라이프치히로 이주하여 그곳에 정착하였습니다. 그의 이력은 “에스파냐라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동독이라는 전체주의 국가로 이주한 삶”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프리스의 뇌리에는 유년의 참혹한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즉 40년대 초 연합군에 의해서 처참하게 폭격당한 라이프치히가 바로 그 상흔이었습니다. 프리스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영문학 그리고 에스파냐 문학을 전공하였..

45 동독문학 2020.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