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행' (1)

필자 (匹子) 2022. 12. 2. 10:43

1.

 

친애하는 C, 오늘은 세르반테스의 유작 『페르실레스시히스문다 Los trabajos de Persiles y Sigismunda』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흔히 세르반테스 하면, 돈키호테를 연상하는데, 문학연구가들은 진정한 명작으로서 세르반테스의 유작을 거론하곤 합니다. 작품은 헬레니즘의 연애 소설 내지는 모험 소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세르반테스 (1547 - 1616)가 죽기 나흘 전에 완성된 것입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세르반테스는 1599년에 이 작품의 집필을 착수하였는데, 죽기 직전에 마지막 힘을 쏟으면서 탈고했다고 합니다. 그는 탈고 후에 다음과 같은 시구를 남겼습니다. “나의 발은 이미 죽음의 바람을/ 맞으며 저세상 난간에 섰는데/ 주여 나는 이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1616년 4월 23일에 죽었는데, 바로 이날에 대문호 셰익스피어 역시 유명을 달리하였습니다. 작품은 그렇게 방대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의 집필을 위해서 참고한 문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알론소 누네즈 Alonso Núñez의 소설 『탐색 그리고 플로리세아』 (1552), 그리고 로페 드 베가 Lope de Vega 의 『집의 순례』(1605) 외에도 세계사에 관한 문헌 그리고 문화사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였습니다. 작품에는 항해, 강도의 습격, 납치, 난파, 감금, 가장 (仮装) 등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이는 대부분의 경우 세르반테스의 삶의 직접적인 체험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세르반테스는 1571년 터키에 대항하는 전쟁에 참가하여 싸우다가 가슴과 팔에 총을 맞아서 평생 외팔이 불구로 살아가야 했습니다.

 

친애하는 C, “환갑에 이르러 사람 되고 진갑에 이르러 죽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그만큼 인간은 살아오면서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추구하는 크고 작은 갈망이 피할 수 있는 실수를 지르도록 추동하기 때문이지요. 죽음을 목전에 둔 세르반테스 역시 그러했습니다. 일부러 힘든 삶을 자청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간 과거를 기억하면 미련과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자신의 가죽부대는 늙고 병들어 있지만, 그의 두뇌와 마음만은 여전히 젊은 청년처럼 갈망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모든 소유욕과 권력을 위한 싸움 등을 북구 사람들의 사리사욕으로 규정하였으며, 순수하고 고결한 영혼을 닦을 수 있는 유일한 종교를 가톨릭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소설은 주인공이 북구에서의 암투와 갈등을 떨치고 남쪽의 로마로 향하는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계의 수도 Caput mundi”, 로마는 인간이 가장 올바르고 순수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고향의 땅으로서 “영원한 목표”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2.

 

작품은 여러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주인공은 북구 출신의 고결한 청년, 페리안드로입니다. 그는 용맹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손에는 장검 하나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오로지 타인의 마음을 사로잡게 하는 황금의 가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주인공은 주어진 정황과 인간관계를 예리하게 포착하여서 타인을 설득하는 놀라운 재주를 지니고 있습니다. 소설이 영웅 이야기로 분류될 수 없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인공은 어느 바이킹, 야만족에 체포되어 지하 토굴에 갇혀 있었는데, 야밤을 틈타 토굴을 빠져나옵니다. 알고 보니, 자신이 갇힌 곳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작은 섬이었습니다. 수평선에 보이는 육지로 향해 헤엄쳐 건너가기로 결심하고 바다에 뛰어들었으나, 육지는 생각보다 멀리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기진맥진하여 나무토막을 붙잡은 채 정신을 잃습니다. 익사의 위험에 처한 주인공을 구해준 사람은 바로 덴마크의 왕자, 아르날도였습니다. 아르날도는 납치된 연인을 찾기 위해서 북해 근처로 항해하던 터였는데, 바다에서 정신을 잃은 남자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왕자가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은 아우리스텔라라고 했습니다. 이때 페리안드로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자신이 그미의 오빠라고 말합니다. 그는 반드시 여동생을 찾아 왕자의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페리안드로는 여자의 옷을 걸친 채 처녀로 가장하여, 아우리스텔라가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섬에서 혼자 배에서 내립니다.

 

페리안드로가 야만인들의 거처로 향해서 서서히 잠입했을 때, 넓은 마당에서 그들의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춤이 끝났을 때, 그곳의 대장은 나무에 묶여 있는 낯선 남자를 처형하라고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유심히 쳐다보니, 낯선 남자는 남장 차림의 아우리스텔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처형 직전에 페리안드로는 그곳에 뛰어들어서 난장판을 만듭니다. 야만인들은 갑자기 뛰어든 낯선 외부의 여자로 인하여 혼란스러워합니다. 대장은 처형을 다음날로 연기한 다음에, 아우리스텔라를 남자 감옥에, 여장 차림의 페리안드로를 여자 감옥에 각각 집어넣습니다. 감옥에는 여러 명의 여성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클로엘라가 있었습니다. 그미는 지금까지 트란실라라고 하는 폴란드 출신의 귀족 부인의 통역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잠시 아우리스텔라의 하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미는 어떻게 자신과 아우리스텔라가 이곳에 끌려왔는지를 이야기해줍니다.

 

 

 

 

 

감옥에 갇힌 주인공과 여자들은 처형의 두려움을 되새기면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감옥 밖에는 몇몇 야만인들은 술이 거나하게 취한 채 새로 붙잡힌 여자를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치고 박고 싸우고 있습니다. 야밤을 틈타 안토니오는 탈옥하여, 남장 차림의 아우리스텔라, 여장 차림의 페리안드로, 클로엘라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킵니다. 안토니오는 에스파냐 출신의 준수한 사내였는데, 원주민 여자와 결혼하여 두 딸을 거느리고 생활하였습니다. 그는 두 딸을 가톨릭 신앙으로 세례를 받게 하려 했는데, 바이킹 족들이 이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지하 동굴에 거주하면서 섬을 떠나려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안토니오는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안토니오와 함께 동굴에 피신합니다. 바로 이때 주인공 페리안드로는 꿈에 그리던 아우리스텔라와 재회하게 됩니다. 아우리스텔라는 눈물을 글썽인 채 주인공과 포옹합니다. 눈물방울이 뺨을 적실 때의 그미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두 사람의 재회하는 모습에서, 독자는 그들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순식간에 감지할 수 있습니다.

 

 

(2, 3, 4로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