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친애하는 C, 여기서 소설의 화자에 관해서 잠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돈키호테의 일행은 톨레도로 떠납니다. 그곳에서 시드 하메테 베넨겔리 Cid Hamete Benengeli라는 이름을 지닌 아라비아 역사가의 원고 뭉치가 발견됩니다. 바로 이때부터 소설의 화자가 등장하게 됩니다. 화자는 “베넨겔리 Benengeli”라는 이름을 지니는데, 이 이름은 아라비아어로서 “사슴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 뜻은 에스파냐어로 “세르반테뇨 cervanteño”에 해당하는데, 이것은 작가의 이름과 동일합니다. 원고뭉치 속에는 대부분의 아라비아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거짓말하는 버릇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세르반테스의 편견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유럽 국가 가운데 유독 에스파냐가 강력한 인종 차별을 드러내는 까닭은 두 가지 사항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에스파냐 사람들의 심성이 너무나 솔직하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에스파냐가 북 아프리카의 사람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으므로 이민족 혐오증이 남달리 크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17세기에 에스파냐에 머물던 유대인들이 자국인들에 의해서 추방당해서 유럽 전역을 떠돌다가 동유럽에 정착한 사건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소설의 화자는 아라비아 역사가의 책을 인용하면서,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나갑니다. 이를테면 그는 돈키호테가 어떻게 통쾌하게 비스케 귀족을 물리치는가를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만약 귀족이 비스케 지역의 공주의 청원을 받아오지 않을 경우, 어떠한 용서도 불허하겠다는 게 돈키호테의 생각입니다. (제 1권 9장)
돈키호테는 계속 방랑합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현금 지불의 요구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편력 기사는 언제나 봉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현금 지불의 원칙은 맞지 않는다는 게 주인공의 항변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굶주리기도 합니다. 산초 판사는 양치기 목자에게서 먹을 것을 얻어오기도 합니다. 먹을 것은 치즈 몇 조각 그리고 떡갈나무 열매가 전부입니다. 세르반테스는 이로써 가난을 즐기는 전원에서의 삶을 은근하게 찬양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인용되는 문헌은 16세기 목자 문학, 특히 「황금의 시대」라는 전원시입니다. (제 1권 10장) 산초 판사와 목자는 돈키호테의 자연 예찬에 대해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주어진 경제적 상황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소시민이기 때문에 설령 굶주리더라도 고결함을 잃지 않으려는 돈키호테의 속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연히 조우하게 된 목자, 안토니오는 사랑하는 처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사랑에 관한 노래를 구슬피 부릅니다. (제 1권 12장)
또 다른 목자 한 사람은 소설의 맨 처음에 언급되는 이야기를 주인공에게 들려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리조스토모라는 이름을 지닌 청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조스토모는 양떼를 모는 어느 처녀, 마르셀라에 대한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서 괴로워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게 됩니다. (제 1권 13장) 돈키호테는 그리조스토모의 무덤 근처에서 기사가 견지해야 하는 품격에 관해서 열정적으로 연설합니다.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 마르셀라가 죽은 청년의 무덤가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미는 두 사람의 관계에 관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합니다. 자신의 존재 때문에 전도 창창한 젊은이가 유명을 달리 했다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명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합니다. 돈키호테의 이야기와 마르셀라의 이야기는 서로 중첩되고 있는데, 특히 돈키호테는 마르셀라의 입장에서 그미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제 1권 14장)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돈키호테, 산초 판사 그리고 로시난테가 벌이는 재미있는 일화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야기들은 일관성이 없지만, 모두 돈키호테의 시대착오적인 망상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것들입니다. 이를테면 주인공은 양구아 지역의 소몰이꾼들을 적으로 착각하여 공격하다가, 오히려 그들로부터 끔찍할 정도로 몰매를 당합니다. 어느 목자가 척추 장애를 지니고 있는 못생긴 처녀, 마리토르네스를 유혹하려고 했을 때, 돈키호테는 이를 사전에 알아차립니다. 그리하여 그는 목자의 성적 폭력을 제지하기 위하여 랑데부 장소에 뛰어들어 방해합니다. (제 1권 15, 16장).
돈키호테는 자신의 일을 언제나 정의로운 기사의 일감으로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는 민간 군대 조직인 산타 헤르만다드에 속하는 사람들과 만나게 됩니다. 주인공은 조직에 가담한 한 사람과 심각한 언쟁을 벌입니다. 왜냐하는 산타 헤르만다드라는 조직은 의리와 정의로움에 입각해서 싸우는 단체가 아니라, 돈만 건네주면, 모든 일을 처리하는 사실 용병 단체와 다름없다는 것이 돈키호테의 견해였던 것입니다. 주인공의 철저한 믿음을 꺾을 수 없었던 조직의 한 사람들은 기름램프를 휘둘러 돈키호테의 머리는 심한 화상을 입습니다. (제 1권 17장) 돈키호테는 머리와 상반신의 화상을 치료하기 위하여 사라센 기사 피라브라가 즐겨 사용하는 연고를 몸에 바르고 먹습니다. 연고의 냄새 그리고 맛이 너무나 역겨워서 주인공은 구토와 설사의 고통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 1권 18장)
돈키호테는 야밤에 장례식 행렬을 목격합니다. 고인에 대한 슬픔의 비명 그리고 기이한 치장에 주인공은 거의 정신 나간 상태에 처합니다. 돈키호테는 사람들이 고결한 어느 기사의 시신을 훔쳐 달아난다고 고발하면서, 난동을 피웁니다. (제 1권 19장) 이에 반해서 산초 판사는 비밀리에 시신을 빼돌려서 가지고 옵니다. 횃불이 환하게 비치는 밤중에 사람들은 돈키호테를 “슬픈 자를 바라보는 얼굴 el de la Triste Figura”로 추대하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나중에 독일의 낭만주의 작가인 루드비히 티크는 이를 “슬픈 면모를 지닌 기사”라고 잘못 번역하여, 사용하게 됩니다. 나중에 밝혀진 바 있지만, 야밤에 발생하는 놀라운 모험적인 사건은 주위에서 들리는 기이한 소음 때문이었습니다. 소음은 폐허가 된 풍차의 쇠소리로 판명되는데, 돈키호테조차도 나중에 이를 나웅에야 비로소 깨닫고 쓴 미소를 짓습니다. (제 1권 20장). 돈키호테는 어느 이발사에게서 놋쇠로 이루어진 이발용 세면대를 빼앗아 옵니다. 그는 세면대를 멤블린의 투구라고 명명하고, 이를 뒤집어씁니다. (제 1권 21장).
들판에 수많은 노예들을 끌고 가는 군대 행렬이 눈에 띄었습니다. 돈키호테는 노예들을 불행한 민초로 간주하고 군대 행렬을 공격합니다. 그는 끝내 군인들을 물리치고 불행한 노예들을 구출해줍니다. 알고 보니 노예들은 불행한 사람들이 아니라, 왕궁에 소속된 노 젓는 일꾼 노예들이었습니다. (제 1권 22장) 그들 가운데에는 일급 광대, 진느 드 파사몽테도 있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당시에 마구잡이로 간행된 1600권의 악한 소설들을 신랄하게 공격하기 위하여 광대 한 사람을 작품에 등장시킨 것입니다. 진느는 나중에 산초 판사가 타고다니는 당나귀를 훔쳐서 어디론가 달아납니다. 산초판사와 돈키호테는 모레나 지역에서 민간 군대조직인 산타 헤르만다드의 공격을 당하지만, 다행히도 그곳을 탈출하게 됩니다. 이때 황금꾸러미 한 묶음과 귀중한 책 한 권이 그들의 수중에 들어옵니다. (제 1권, 23, 24장). 여기서 말하는 책이란 카르데니오라는 남자의 메모 모음집을 가리킵니다. 카르데니오는 기사 소설을 탐닉하다가 현실 감각을 상실한 몽상가였는데, 아마디스에 관한 문제를 놓고 돈키호테와 언쟁을 벌이다가 어디론가 여행하기로 결심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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