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프리스의 문학세계 (3)

필자 (匹子) 2023. 3. 14. 10:09

(앞에서 계속됩니다.)

 

4. 비행선(1)

두 번째 작품, 비행선 Das Luftschiff오블라두로 향하는 길 Der Weg nach Oobladooh과는 달리 동서독에서 공히 1974년에 발표되었습니다. 비행선을 소재로 한 작품은 주로 20세기 이후의 유럽 문학에서는 생텍쥐페리의 일련의 소설 외에는 거의 출현하지 않았는데, 프리스가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시켰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생텍쥐페리의 소설과 프리스의 비행선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리라고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전자가 모성과 이에 대한 일탈이라는 심층 심리적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다면, 후자는 시민주의 사회의 부자유와 이에 대한 일탈 욕구라는 어떤 사회학적이자 정치적인 모티프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소재가 유사하다고 해서 주제가 유사하리라고 판단하는 것은 성급한 태도입니다.

 

프리스가 이 작품을 구동독에서 발표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왜냐하면 구동독의 문화 관료들은 작품의 성향을 그다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당시는 체제 안주를 중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비행선의 내용에서 드러나는 비행내지 떠남이라는 모티프는 구동독 문화정책의 권장 사항으로 적합하지 않는 것으로 비쳤습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반파시즘 문학의 계열로 수용되어, 구동독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참고로 구동독에서 간행되는 모든 출판물은 당국의 사전 심의과정을 거칩니다.)비행선의 부제는 내 할아버지의 전기에 바탕을 둔 판타지에 관한 유작입니다. 실제로 작품은 자전적 요소를 강하게 드러냅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프란츠 크사버 슈탄네바인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공상의 천재였는데, 비행기 제작에 골몰하며 이전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입니다. 프리스는 첫째로 그의 딸 폴로니아 Polonia의 기억 그리고 둘째로 주인공의 손자, 치코 요나스의 서술, 셋째로 작가의 논평 등에 바탕을 두어 복합적인 관점을 동원하여 모든 것을 고찰하였습니다. 따라서 서술자의 관점 역시 세 가지의 복합적 관점으로 얽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슈탄네바인의 딸, 폴로니아의 관점, 소설의 화자인 치코의 관점 그리고 가상적 작가의 관점이 그것입니다.

 

소설의 화자인 치코 요나스는 스토리를 신속하게 전개해 나갑니다. 프란츠 크사버 슈탄네바인은 일찍이 조실부모하여 양부모 밑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양부모는 그가 나중에 인쇄 기술을 배워서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지만, 주인공은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슈탄네바인은 어느 날 가출하고 맙니다. 왜냐하면 그는 소시민의 가정 및 협소한 주위환경에 답답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비행선을 타고 여러 나라를 비행하는 일에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그를 매료시킨 것은 애드벌룬이었습니다. 어느 날 슈탄네바인은 비행선 모임에 가담하여 약간의 비행 기술을 익혔는데, 이때부터 그는 한 가지 사항에 집착하게 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날틀을 직접 제작하고 조립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편집 망상은 어린 시절부터 날짐승을 몹시 부러워하는 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슈탄네바인은 어느 여름에 에스파냐로 거주지를 옮깁니다. 그는 에스파냐의 빌바오에서 독일의 특허청의 사원으로 일합니다. 뒤이어 그는 도나 마틸데라는 에스파냐의 여성과 결혼하여, 슬하에 세 명의 딸을 거느립니다. 테레사, 폴로니아 그리고 플로라가 세 딸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으로서는 자신의 꿈, 한 가지를 도저히 접을 수 없었습니다. 비행선을 직접 제작하여 유명한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그 꿈이었습니다. 슈탄네바인은 1917년과 1918년 사이에, 다시 말해서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에 자신을 유혹하는 사명감에 부응하기 위하여독일로 떠납니다. (53).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비행기 제작의 투자자를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독일 사업가들은 비행기 사업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없는 무모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번의 실패를 거듭한 슈탄네바인은 서서히 현실 감각을 상실한 채 꿈의 망상에 시달리곤 합니다. 가족과 친구를 에스파냐에 남겨두고 혼자서 독일에서 생활하는 고독이 그를 더욱더 심리적으로 고립시켰던 것입니다.

 

5. 비행선(2)

1933년부터 독일에서는 히틀러가 집권하게 되고 독일 전역에 나치 세력들이 득세하게 됩니다. 나치당은 에스파냐에 비행장을 건설하기 위하여, 주인공에게 접근합니다. 독일의 산업체 사장은 비행장과 비행선 제작을 위한 재정적 도움을 주겠다고 말합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슈탄네바인은 그가 내미는 계약서에 성급하게 서명합니다. 사실 자신의 비행선은 처음부터 수직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이착륙을 위한 비행장은 처음부터 불필요한 시설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사장에게 서명하기 전에 자세히 설명해야 했는데도 슈탄네바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는 소리귀에타의 다음과 같은 푸념적 발언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당신의 투자자, 파코씨는 처음부터 당신을 속였어요. 전쟁을 염두에 두면서 활주로를 생각했으니까요. 당신의 발명품에 대해서 추호도 관심이 없었어요. 전쟁 야욕은 당신의 계획, 당신의 상상 그리고 인민 전체에 반하는 일입니다.” (383). 1935년 에스파냐 내전이 발발했을 때, 슈탄네바인은 현실과 가상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합니다. 마치 돈키호테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지나간 기사의 시대로 착각하고 성스러운 전쟁에 참가하여 미치광이처럼 싸우듯이, 슈탄네바인 역시 비행선을 개발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주인공의 조수이자 제자인 소리귀에타는 비교적 현실적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합니다. 비행장을 독일 공군에게 임대하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충고했으나, 슈탄네바인은 이를 무시해버립니다. 주인공의 가족들은 슈탄네바인의 안위가 걱정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소리귀에타를 독일로 떠나게 합니다. 주인공은 소리귀에타와 함께 에스파냐로 다시 되돌아옵니다.

 

소리귀에타는 정치적으로는 공화주의를 표방하는, 이른바 좌파 지식인에 속하는 인물입니다. 그가 독재자 프랑코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어느 날 에스파냐 정부군은 소리귀에타의 집을 급습합니다. 이로써 소리귀에타는 체포되어 프랑코 독재자의 정치범이 되어 감옥에 수감됩니다. 바로 이 사건이 발발한 직후 슈탄네바인은 사태를 수습하려고 거사를 추진합니다. 소리귀에타를 프랑코 독재 체제의 허술한 감옥으로부터 빼내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조수가 새로운 비행기의 설계도를 비밀 금고에 감추어두었기 때문에 소리귀에타가 없으면, 자신의 사업을 추진할 수 없다는 게 거사의 이유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에스파냐를 프랑코 독재 치하에서 구원하리라는 의도는 처음부터 주인공의 안중에 없었습니다. 슈탄네바인은 자신이 만든 수류탄 투척기 Mörser”라는 이름을 지닌 비행기를 타고 감옥으로 날아가서 소리귀에타와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많은 정치범들을 구출해냅니다.

 

6. 비행선(3)

친애하는 F, 소설의 내용이 어떠했는지요? 물론 소설의 줄거리를 일직선적으로 이어가는 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릅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사항은 다양한 소설의 관점입니다. 소설의 관점은 세 가지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폴로니아는 자신의 아버지를 회고하면서 그의 구체적 삶을 서술합니다. 이를테면 슈탄네바인의 알려지지 않은 일화라든가 비밀스런 이야기들은 그미에 의해 전해지고 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폴로니아가 보수적 시민주의 내지 소시민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고찰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슈탄네바인에 대한 그미의 시각은 편파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우호적입니다. 이에 반해서 손자인 소설적 화자인 치코는 할아버지의 어정쩡한 정치적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슈탄네바인은 비정치적인, 아니 반정치적인 태도를 고수하다가, 에스파냐의 프랑코 정부군뿐 아니라, 독일의 나치로부터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하면 주인공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우호적이지도 않으며 악의적이지도 않습니다. 물론 작가는 자신의 아이들인 레나, 봅 그리고 미하를 염두에 두면서, 슈탄네바인의 유고에 담긴 거짓된 사항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비판적 관점은 근본적으로 역사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에 입각해 있습니다. 작가는 한편으로는 바보, 몽상가 그리고 발명가로 살아갔다는 점에서, 슈탄네바인이 에스파냐의 악한 소설의 주인공의 면모를 지닌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작은 거인의 꾀 내지 술수를 지니지 못했음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그는 과거의 세계를 정확히 통찰하지 못하는 관계로 어떠한 새로운 미래의 세계도 설계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의 편집 망상은 어쩔 수 없이 종이배의 상으로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주인공의 장단점이 어떻든 간에, 소설의 삼차원적 관점은 독자로 하여금 한 인간의 과거사에 대한 객관적 거리감을 견지하게 해줍니다.

 

상기한 바와 같이 다양한 관점으로 인하여 슈탄네바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고도 모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손자는 자신의 할아버지인 슈탄네바인을 현실도피주의자로 규정합니다. 주인공은 비행하는 인간은 지상의 궁핍함을 떨칠 수 있다.”고 순진하게 생각했습니다. 손자는 자신의 할아버지의 시민주의의 세계관 그리고 그의 정치적 둔감함을 신랄하게 비아냥거립니다. 그렇지만 슈탄네바인은 가상적 작가의 관점에 의하면 다른 한편 주인공을 사회적 제약과 장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열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주어진 사회의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 한 개인을 철저히 억압하고 구속한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은 자신이 행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최한의 자유를 구가했다고 합니다. 작가 프리스는 나중에 이 작품을 직접 시나리오로 개작했는데, 시나리오에서 주인공 슈탄네바인은 마지막에 되젠 Dösen에 있는 정신 병원에 수감됩니다.

 

7. 비행선(4)

또 한 가지 생략될 수 없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그의 조수의 관계입니다. 첫째로 비행선의 배경은 세르반테스의 명작의 어느 장면을 유추하게 합니다. 이를테면 사업 파트너인 레빈과 쉬테는 작품 내에서 슈탄네바인이 작성한 위험한 문헌을 발견해내려고 마틸데의 별장을 마구잡이로 수색하는데 (212쪽 이하), 이는 세르반테스의 작품에 묘사된 놀라운 도서관의 장면과 무척 유사합니다. 둘째로 작품의 인물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인물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돈키호테의 경우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는 소설에 전개되는 과정에서 제각기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끼칩니다. 산초 판사는 처음부터 현실주의자의 시각을 견지하고 돈키호테의 망상을 기이하게 여기지만, 나중에는 그가 어째서 시대착오적으로 행동하는가를 이해하고, 어떤 더 나은 무엇에 대한 동경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다른 한편 돈키호테는 산초 판사의 영향으로 죽기 직전에 현실감각을 되찾으면서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후회합니다. 그렇지만 비행선의 경우는 이와는 약간 다릅니다. “창공의 기사” (261), 슈탄네바인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소리귀에타의 영향을 받고 어느 정도 현실 감각을 되찾는 반면에, 소리귀에타는 주인공으로부터의 어떠한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확고한 정치의식을 지니고 있으며, 옳든 그르든 간에 마지막에 이르러 소련으로 망명을 떠날 정도로 사회주의 신념을 실천에 옮기는 인물입니다.

 

친애하는 F,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항만 덧붙이기로 하겠습니다. 비행선에 영향을 끼친 작품으로서 우리는 장 파울 Jean Paul의 작품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비행사 지아노초의 운항 일지(1800)을 가리킵니다. 장 파울의 작품은 맨 처음 그의 대표적 장편인 거인 Titan의 부록으로 발표되었는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접하고 찬탄을 금치 않았습니다. 지아노초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다가, 우연한 기회에 비행선을 타게 됩니다. 이때 그는 자신이 창공에서는 멋지게 살지만, 지상에서는 역겹게 생활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비행을 계속하다가, 비행선은 어느 지역에 착륙하게 되는데, 그곳은 공교롭게도 전쟁터였습니다. 그곳에서 지아노초는 절도범으로 몰려 체포됩니다.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삶은 자신의 운항일지에 상세하게 기록됩니다. 결국 주인공은 비행선의 추락으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