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행' (4)

필자 (匹子) 2022. 12. 2. 10:46

7.

 

소설은 마지막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로마에 도착하기 전에 순례자들은 야영하기로 결정합니다. 이때 세르반테스는 스스로 잘못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해 냉소적인 비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설의 전체적인 이야기는 자신의 삶의 방황에 대한 참회록이라는 느낌을 드러내는데, 이는 작가의 자기비판에 바탕을 둔 냉소적 풍자에 기인합니다. 페리안드로아우리스텔라는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손목을 잡은 채 밤을 지새웁니다.

 

다음날 아침에 또 다른 순례자들이 합류하게 됩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르날도데무르 공작이 순례자의 복장 차림으로 끼여 있었습니다. 아르날도 왕자는 여전히 아우리스텔라와의 결혼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으며, 데무르 공작 역시 첫눈에 그미에게 반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명품은 명품, 그야 말로 명불허전이라고, 아름다운 여성은 대부분의 남성의 눈에 아름답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 남자들이 “빛 좋은 개살구”, 즉 “겉은 속인다. Der Schein trügt.”라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둔감한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공작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아우리스텔라를 차지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페리안드로는 다시금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순례를 마치면, 사랑하는 임을 아르날도에게 보내기로 아르날도에게 약속했던 게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도중에 아르날도데무르 공작은 결투를 벌이게 되고, 두 사람 모두 부상을 당하게 됩니다. 데무르 공작은 심한 결투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임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드디어 로마에 도착합니다. 아우리스텔라는 기독교 교리와 사상을 하나씩 습득해나갑니다. 그미는 페리안드로와 함께 천국의 삶이 얼마나 위대하고 찬란한지를 생생하게 체험해 나갑니다. 아르날도 왕자는 주인공과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이 페리안드로와 헤어진 다음에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는 더 이상 아우리스텔라에게 집착하지 않겠노라고 주인공에게 약속합니다. 아우리스텔라는 심한 열병으로 몸져눕게 됩니다. 힘든 여행, 로마에서의 바쁜 일과 그리고 완강하게 다가오는 데무르 공작의 구애로 인한 심리적 고통이 그미의 몸을 피폐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다행히 그미는 일주일 후에 건강을 되찾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아우리스텔라는 애인에게 자신의 결심을 털어놓습니다. 차제에 페리안드로와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신에게 바치겠다는 게 그 결심이었습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그에게 의존했던 이유는 근본적으로 신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페리안드로는 깊은 충격에 빠지게 됩니다. 심신이 절망적인 상태에 빠져드는 것 같았습니다. 배신감, 사랑의 상실로 인한 고통 그리고 공허감. 페리안드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로마를 떠나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친애하는 C, 자고로 사랑은 이렇듯 가장 깊은 심연으로 향하기 마련입니다. 가장 깊은 심연은 궁극적으로 절대적 사랑, 즉 신에 대한 귀의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심원한 사랑의 감정, 즉 플라토닉 사랑에는 육체성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여성성 남성성을 서로 분배하면서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따라서 이 경우 성행위는 사랑에 대한 자기 확인의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모든 동물은 교접 후 쓸쓸함을 느낀다. omne animal triste post coitum”, 왜냐하면 교접은 사랑에 대한 순간적 확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르반테스는 바로 이러한 특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준 작가라고 생각됩니다. 돈키호테는 토보소에 살고 있는 둘시네아라는 이름의 처녀를 만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그미에 비해 못난 사내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키르케고르가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레기네 올젠과의 만남을 포기했듯이, 돈키호테는 그미에 대한 자신의 상이 깨질까 두려워 둘시네아를 마치 하늘 위의 별처럼 생각할 뿐입니다. 아우리스텔라 역시 가장 깊은 사랑을 신으로 향한 사랑이라고 믿고, 페리안드로를 저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8.

소설의 마지막 대목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우리스텔라는 기도하면서 로마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미의 마음 한구석에는 사랑하는 임에 대한 아련한 기억 그리고 어떤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때 두 명의 방랑자가 어느 술집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 사람은 춤꾼, 루틸리오였고, 다른 한 사람은 세라피도라는 이름을 지닌 늙은이였습니다. 세라피도는 오래 전에 페리안드로를 가르친 적이 있는 은사였습니다. 그들은 두 주인공의 비밀을 밝혀냅니다. 즉 페리안드로는 아이슬란드의 왕자, 페르실레스이며, 아우리스텔라는 네덜란드의 공주, 시히스문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밀을 우연히 전해들은 사람은 막시미노였습니다. 막시미노는 아이슬란드의 왕자였는데, 당국의 사주를 받아서 페리안드로를 살해하라는 밀명을 수행하려 하던 중이었습니다. 자신이 살해하려던 사내가 바로 자신의 형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막시미노는 거사를 준비하던 중에 심한 부상을 입게 되었는데, 죽기 전에 형을 만나서 이 사실을 전해줍니다. 아우리스텔라 역시 이러한 비밀을 접하고, 자신의 마음을 돌립니다. 사랑하는 페리안드로, 아니 페르실레스 왕자가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으로 소설은 끝납니다.

 

친애하는 C, 소설은 수많은 모험 이야기를 통하여 한 가지 사항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인간의 구원이 무엇보다도 가톨릭의 정신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수많은 이단 종교 그리고 새롭게 나타난 프로테스탄트의 사상 역시 나름대로의 장점과 존재 가지를 지닌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여행과 방랑은 작가에게는 삶의 여정을 가장 명확하게 그리고 참되게 보여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이러한 거울 속의 방향을 분명하게 정해주는 것이 바로 가톨릭의 정신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세르반테스의 소설은 통한의 계곡으로부터 완전한 고향으로 향하는 지속적 발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합니다. 순수함, 아름다움 그리고 고결함을 포괄하는 것은 세르반테스의 견해에 의하면 자고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본 작품의 한국어판으로는 에스파냐학자, 조구호 교수님과 임효상 선생님이 번역한 『사랑의 모험』(바다출판사 2000)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