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조형 예술

서로박: 마네의 '풀밭 위의 아침 식사' 해설

필자 (匹子) 2024. 4. 14. 10:51

사람들은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을 좋아하여, 그의 삶의 행적을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때마다 마네는 “꽃밭에 가보세요. 그곳에 가면 나의 삶이 다 보일 것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나중에 에른스트 블로흐는 이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행적에 관해 묻는 리포터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의 저작물을 구해서 보세요. 그 속에는 나의 삶이 용해되어 있습니다.” 각설, 마네는 자신의 사적인 삶에 관해서 언급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랑 그리고 이와 결부된 프라이버시를 공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네에게는 커다란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던 네덜란드 출신의 수잔네 렌호프를 연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리의 저명한 판사였던 마네의 아버지는 자신의 집에서 피아노를 가르치던 네덜란드 출신인 수잔네 렌호프를 유혹하여 1852년에 사생아 레온을 낳게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마네는 투르게네프의 단편 소설 「첫사랑」에 묘사되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실제 현실에서 고스란히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마네는 수잔네에 대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을 느꼈지만, 자신의 감정을 감추면서 살았습니다. 마네는 1860년 가을에 부모님을 떠나서, 파리 북쪽에 있는 수잔네 렌호프의 집으로 이주했습니다. 1863년에 아버지가 사망한 뒤에, 마네는 수잔네와 혼인하였고, 레온을 자신의 아들로 입적하였습니다.

 

 

수잔네 렌호프와 그미의 아들 레온. 파리 도르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오늘 다루려고 하는 작품은 마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풀밭 위의 아침 식사Le Déjeuner sur l’herbe」입니다. 원래 이 작품의 제목은 “경박한 네 사람La partie carée"이었으나, 나중에 ”목욕Le bain“으로 바뀌었고, 나중에 ”풀밭 위의 아침식사“로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살롱 관계자들은 여인의 나체가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인하여 세인들에게 작품의 공개를 꺼려했습니다. 1863년 나폴레옹 3세는 파리의 살롱에서 전시되지 못한 그림 혹은 조각 작품들을 전시하라고 요청했는데, 이 기회에 마네의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어째서 경박한 네 사람이 작품의 주제에 합당한지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젊은 시절 이 그림을 접했으나, 필자는 이 그림이 뜻하는 함의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마네는 어째서 나체의 여성을 작품의 한 복판에 배열했을까요? 차라리 모든 사람들이 반라의 모습을 드러내었더라면 그렇게 어색하지는 않았으리라고 여겨졌습니다. 나중에야 필자는 작품의 주제를 어느 정도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풀밭 위의 아침 식사」 두 가지의 특이한 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째로 사실 그림을 그리려면 네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원근, 명암, 색감 그리고 윤곽을 가리킵니다. 화가는 네 가지 특징을 미리 설정하고 작품 창작에 임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네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명암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풍경화의 경우 태양 혹은 달빛을 바탕으로 밝기가 설정됩니다. 풍경화의 경우 윗부분은 환하며, 아랫부분은 어두운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네의 작품에는 전혀 다른 빛이 환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마치 “지하 명부의chtonisch” 빛으로서 아래에서 위로 향하여 환하게 비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지령Erdgeist”에 관해서 언급합니다. 주인공 파우스트는 지하세계의 영혼을 느끼면서 땅 속의 열정을 피부로 느낍니다. 마네의 등장인물들 역시 다른 세계의 질서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등장인물 네 사람은 주어진 현실의 모든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질서로부터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내적 열정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Kundera)을 느끼게 하는 “경박한 네 사람”입니다.

 

 

 

빅토린 모렝 Victorine Meurent의 모습

 

둘째로 마네의 작품은 미리 말씀드리건대 자유연애를 구가하는 여성의 자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두 여인은 두 사내와 풀밭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습니다. 바구니의 물건들이 이리저리 널려 있고, 한 여인은 벌거벗은 몸으로 앉아 있으며, 다른 여인은 목욕을 즐기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두 남자가 옷 입은 차림으로 담소를 나누고 있다는 점입니다. 네 명의 등장인물 가운데 세 명은 당시에 실존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마네의 남동생, 외젠느 마네 Eugène Manet, 마네의 처남인 조각가, 페르디난트 렌호프Ferdinand Leenhoff 그리고 앞에 앉아 있는 여성은 마네의 모델로 자주 활동한 빅토린느 모렝 (Victorine Meurent, 1844 - 1927)이라는 화가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나체의 여성의 모습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헬레나를 그대로 빼박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작품은 마르크안토니오 라이몬디 (Marcantonio Raimondi, 1475 - 1534)의 동판화 파리스의 판」이라는 작품입니다. 원래 이것은 이탈리아의 위대한 화가 라파엘로 산티 (1483 - 1520)의 작품이었는데, 라이몬디의 동판화로 오늘날 전해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의 세 여신, 헤라, 아테네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신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판결은 트로이의 은폐된 왕자 파리스가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세 여신들은 다음과 같이 약속하면서 자신을 선택해줄 것을 강권했습니다. 헤라는 세상에 대한 지배를, 아테네는 지혜를 그리고 아프로디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인 헬레나를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파리스는 결국 아프로디테를 선택합니다. 라이몬디의 동판화에서 오른쪽 아랫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거기에는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헬레나가 앉아 있습니다. 동판화를 확대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헬레나는 그리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많은 사내들과 자유분방한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그미는 발정난 암캐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아스트리덴 왕가는 헬레나의 바람기를 차단시키기 위해서 가족 가운데 젊은 사내들로 하여금 그미와 결혼시키기 위해서 제비를 뽑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메넬라오스가 남편으로 선정됩니다. 다른 한편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유부녀 헬레나를 유혹합니다. 헬레나 역시 늠름한 사내 파리스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두 남녀는 그리스를 탈출하여 이집트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나중에 파리스가 트로이 왕국의 왕자라는 비밀이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파리스가 헬레나를 납치했다고 잘못 판단하면서 트로이 사람들 전체에게 노여움을 표명합니다, 이는 10년 동안의 트로이 전쟁의 불씨로 작용하였습니다. 그리스 군인들은 유혹하는 암캐의 눈빛 때문에 έμεΐο κυνώπιος εΐνεκα” 트로이로 향하여 진군하였다고 합니다.

 

 

 

20세기에 소련의 여성운동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는 여성도 얼마든지 성행위를 마치 물 한잔 마시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천명한 바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면서 그미는 사랑의 세 가지 유형인 혼내 정사, 매춘 그리고 자유연애 가운데에서 자유연애를 선택하였습니다. 다시 마네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렇다면 마네가 마르크안토니오 라이몬디의 동판화에 묘사되고 있는 헬레나의 포즈를 작품 속에 그대로 묘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자유연애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작품 속의 네 남녀는 “경박한 네 사람La partie carée”입니다. 도덕적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말씀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 동하면 서로 사랑의 파트너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림 속의 남녀들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종한 삶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인가요? 우리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령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마음은 대체로 사랑하는 임에게 다가가는 경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모두 사랑하는 태도는 어쩌면 변태적 질병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 (1840 - 1926)의 작품 「풀밭 위의 아침 식사Le Déjeuner sur l’herbe」입니다. 작품은 1865년에 제작되었으니, 그의 나이 25세 때 그려진 것입니다. 이 그림은 오랫동안 묵혀져 있어서, 액자에는 곰팡이기 끼어 있었는데, 나중에 예술 애호가가 발견하여, 현재 파리의 도르세 박물관에 비치되어 있습니다. 모네의 작품에 등장하는 네 명의 인물들에게서는 아무런 특징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헬레나의 흔적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19세기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의 팔랑스테르 공동체에서 행해지던 자유연애를 예찬하려는 흔적 역시 발견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모네의 작품은 마네의 작품에 비해서 사상적 예술적 가시를 은폐시키고, 아름다운 피크닉의 한 장면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작품은 마네의 「철길Le Chemin de fer」입니다. 이 작품은 어디론가 떠나는 모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떠나간 남편을 찾아가고 있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서 먼 여행을 앞두고 있을까요? 우리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습니다. 이 장면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의 내용을 연상시킵니다. 귀족인 차세키나 공주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뒤에 어느 시골의 농장에서 거주합니다. 그미에게는 17세의 아름다운 딸 지나이다가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농장주 표도르의 아들인데, 지나이다를 사랑합니다. 그러나 지나이다는 변덕스러운 처녀였습니다. 알고 보니 표도르는 몰래 지나이다의 몸을 탐하고 있었습니다. 차세키나 공주는 자신의 딸이 어떻게 육체적으로 그리고 심리적으로 파멸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매불망 모스크바의 전남편으로부터의 편지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작품 「첫사랑」은 실제로 모네가 겪었던 아버지와의 갈등과 불화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