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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348) 여성 혐오 (1)

대부분 남성들이 품고 있는 여성 혐오는 조신한 여성을 무조건 좋게 생각하고 이른바 "고삐 풀린 계집"을 화장실의 변기통으로 간주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 풍토의 결과이다. 여성 혐오는 여성의 성기에 대한 증오 내지 매춘부에 대한 멸시에서 극에 달하고 있다. 포르노그래피는 엄밀히 말해 “부도덕한 갈보”, “암소” 그리고 “보지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라는 의미와 일치한다. (G. 루빈: 일탈, 516쪽). 성 노동자 그리고 여성의 성기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사라지지 않으면, 여성 혐오는 결코 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 내 단상 2017.02.01

(단상. 347) 성 단상 (2)

8: 흑인과 백인을 서로 구분하는 것은 잘못된 선입견의 발로이다. 피부색은 달라도 인간의 모든 피는 붉다. 늙으면, 흑인, 백인 그리고 황인의 머리칼은 모두 하얗게 변한다. 중요한 것은 호모 아만스의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이다. 9: 모든 이론은 처음에는 가설로 성립된다. 그런데 그게 하나의 진정성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라는 현실적 조건이 첨부되어야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지금 여기”의 전제조건 하에서 타당성을 인정받은 학문적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 이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10: 심리학의 경우 특정한 현실적 조건 하에서 학문적 정당성을 획득한 보편타당한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그 현실적 조건 하에서 얼마든지 적용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심리학의 관심사는 처음부터 다..

3 내 단상 2017.01.31

(단상. 346) 성 단상 (1)

1: 심리적 질병에 관한 한 정상인과 장애인의 구분은 흐릿한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조금이라도 장애의 요인을 지니지 않은 인간은 한 명도 없다. 이와는 반대로 세상 어디에도 더 이상 조금이라도 심리적으로 호전될 수 없는 환자는 한 명도 없다. 2: 호모 아만스는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한 애호의 감정을 감히 발설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깊은 사랑은 당사자로 하여금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든다. 깊은 곳에 고여 있는 사랑의 묘약은 말문을 닫게 하는 것이다. 아, 사실을 거짓으로, 거짓을 사실로 뇌까리는 청개구리의 습성을 답습하는 버릇은 바로 그 때문일까? 3: 말과 언어는 우리의 마음을 속이거나 감추는 “불충족한 소리의 옷” (김광규)이다. 깊은 곳의 무의식적 욕구는 최상의 경우 언어적 표현을 통해서 어떤 암..

3 내 단상 2017.01.30

서로박: (5) 블로흐가 파악한 기독교 속의 유토피아

23. 인간신 사상 (1): 블로흐는 에크하르트 선사의 신비주의에서 그리스도의 인간 신 사상의 핵심을 발견합니다. 신은 에크하르트 선사에 의하면 인간과 세계의 가장 깊은 내면, 중앙 부분 그리고 가장 중심부, 바로 그곳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이른바 종교의 인간화에 관한 루드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의 테제와 유사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세계는 신으로 되돌아오고, 역으로 신은 인간이 사는 세계 속으로 되돌아옵니다. 신께서는 특히 인간들로 향해서 발길을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초월했다고 생각되는 신, 현존하고 계신다는 신께서 결국 인간의 마음속에서 찬란히 빛을 발하는 신비적 순간 속으로 완전히 해체되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찬..

26 유토피아 2017.01.18

서로박: 블로흐가 파악한 기독교 속의 유토피아 (4)

18. 루터의 성서 중심주의 비판: 오늘날 시각으로 고찰할 때 루터의 성서 중심주의는 그리스도 사상의 연구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거하는 것이지, 문헌에 의해서 전파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문헌이 중요하지만, 여기에는 상당히 많은 왜곡된 내용이 얼마든지 첨가될 수 있습니다. 성서는 예수가 죽은 뒤부터 차례대로 기술되기 시작했는데, “정경이 가장 오래되었다”라는 주장, “정경이 외경보다 더 정통성을 지닌다.”는 주장 그리고 “정경이 역사적으로 더 신빙성이 있다.”는 주장 역시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 수많은 신학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으므로 깊이 언급하는 것을 생략하기로 합니다. 어쨌든 역사적 예수는 가톨릭주의의 이른바 보편적 기독교 입장과 영지주의 등 ..

26 유토피아 2017.01.17

서로박: 블로흐가 파악한 기독교 속의 유토피아 (3)

12. 종말론의 의미: 기독교는 블로흐에 의하면 태초의 진리로서의 알파가 아니라, 마지막 오메가로서의 종말론적 사고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데미우르고스의 세계 창조의 진리 내지 영원한 올바름으로서의 의미보다는 마지막 시점에 새롭게 탄생할, 또 다른 세계로서의 예루살렘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이라 여신은 점성술의 숙명을 강조합니다. 그미는 인간의 운명을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으며, 어떤 누구라도, 심지어는 올림포스의 신이라고 하더라도 운명을 거역할 수 없다고 못을 박습니다. 이에 반해서 기독교의 유일신 야훼는 회개와 변화 가능성에 따라 인간에게 자신의 숙명을 비켜가게 조처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기독교는 참회를 통한 운명의 변화 가능성..

26 유토피아 2017.01.16

서로박: 블로흐가 파악한 기독교 속의 유토피아 (2)

6. 이웃 사랑이 실천되는 나라: 다시 블로흐의 논의로 되돌아가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꿈꾼 세상은 이웃 사랑, 즉 박애가 실천되는 나라였습니다. 당시에도 부자는 가난한 자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로마의 권력자는 힘없고 돈 없는 사람을 착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빈부의 차이, 계급의 차이가 온존하는 세상을 올바른 세상이 아니라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세상이 차제에는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 여기에서의 현실 변화를 은근히 갈구한 것은 당연합니다. 기독교신앙은 블로흐에 의하면 교인들이 소외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라를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나라는 한마디로 이웃 사랑이 실천되는 나라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제각기 미립자와 씨앗들로서, 조화로운 나라에서 살아갈 수..

26 유토피아 2017.01.15

서로박: 블로흐가 파악한 기독교 속의 유토피아 (1)

1. 혁명적 선취의 상으로서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나라: 이 장에서 우리가 다루려는 것은 기독교 사상과 유토피아 사이의 접목 가능성에 관한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무신론자인 에른스트 블로흐가 파악한 기독교 사상 속에 도사리고 있는 유토피아로 논의를 제한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신앙인이 아니라, 기독교의 밖에서, 다시 말해서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기독교와 유토피아 사이의 관련성을 가장 명징하게 지적한 학자가 블로흐라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기독교 사상은 블로흐가 1910년대에 자신의 연구 대상의 확장의 일환으로 접한 영역에 불과했습니다. 예컨대 그에게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생각한 자유의 나라의 구체적인 범례였는데, 이것이 공교롭게도 원시 기독교 교회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

26 유토피아 2017.01.13

서로박: 사드의 소돔의 120일

친애하는 J, 오늘은 이른바 “사디즘”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프랑스의 기괴한 소설가, 도나시엥-알퐁스-프랑스와 마르키 드 사드 (D. Marquis de Sade, 1740 - 1814)의 소설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우리가 다루려고 하는 것은 『소돔의 120일 혹은 방종의 학교 Les Cent-Vingt Journées de Sodome ou L’École du Libertinage』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1785년 감옥에서 집필되었는데, 이 원고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04년에야 이반 블로흐 Iwan Bloch라는 사람에 의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반 블로흐는 우연히 발견한 누렇게 찌든 원고 뭉치를 읽고, 놀라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하여 5년 후인 1909년에 이 작..

32 근대불문헌 2016.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