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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3)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즈'

일부 동독 사람들 가운데에는 과거 구동독 사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우리는 "오스탈기Ostalgie"라고 명명한다. (이 조어는 "동쪽 + 향수Ost + Nostalgie"를 합성한 단어다.) 괴거를 동경하는 사람들은 극우의 세계관을 드러내는데, 구동독 지역에서 외국인 혐오가 극성을 부린 까닭은 이러한 심성과 관련된다. 과거의 순수한 독일인들의 행복이 오늘날 급변하는 정세에 의해서 침탈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의 극우파들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를 품고 있다. 태극기 부대의 맹목적 과거에 대한 동경은 사회적 진보주의자들을 악마로 매도하고, 역사적 진보를 역행하게 만든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심플 스토리즈』는 결코 간단한 이야기들이 아니다.: 친애하는 S, 슐체의 작품의 겉..

48 최신독문헌 2024.12.08

(단상. 531) 김건희 그리고 평강 공주

여성이 남자를 선택할 때 무엇을 따지는가? 돈과 권력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구혼남의 좋은 패로 활용되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낭군 선택의 가장 중요한 기준일까? 평강 공주는 바보 온달과 결혼하여 그를 훌륭한 장수로 거듭나로록 도와주었다. 사실 바보 온달과 평강 공주의 이야기에는 현실성이 결핍되어 있다. 구중궁궐에서 살아가는 평강 공주가 온달을 직접 만날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그 밖에 바보와 결혼하리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중에 온달을 찾는 자극제가 되었다는 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쨌든 평강 공주는 인간의 적극성과 희생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수동적으로 행복의 감이 자신의 입안으로 떨어지기를 바라는 신데렐라보다 더 우리를 감동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과도한 적극성은 때로는 혼인 생활의 독이 될 수 있다...

3 내 단상 2024.12.07

서로박: (2)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즈'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의사소통의 차단 내지는 부재 현상: 이러한 이야기들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변환기 속에서 겪어야 하는 변화된 사회 내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인간적 실수로 빚어진 사건일 수 있습니다. 소설적 화자는 각 장마다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알텐부르크 사람들의 의사소통의 차단 내지 부재 현상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음색은 평온하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독자를 몹시 쓸쓸하게 만듭니다. 왜냐면 독일 통일은 동쪽 독일 지역의 알텐부르크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회 계층의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리게 해주었지만, 그들을 근본적으로 불행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더 ..

48 최신독문헌 2024.12.07

서로박: (1) 잉고 슐체의 '심플 스토리즈'

1. 단편적 장편: 친애하는 S, 잉고 슐체는 전환기 이후의 시기에 활동한 독일 신진 작가들 가운데에서 가장 촉망 받는 작가로 손꼽힙니다. 적어도 단편에 있어서는 최고의 작가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지요. 그의 작품집 『간단한 이야기들』은 전환기 시기의 동쪽 독일지역의 사회적 변환을 주제화하고 있습니다. 출판의 편집자는 “스토리즈Stories”라는 영어식 표기를 고려하지 않고, “스토리즈storys”로 표기하였습니다. 이로써 『심플 스토리즈』는 하나의 장편 소설로 명명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엄밀히 따지면 서로 연관된 단편 모음집 내지는 “단편적 장편”이라고 표현하는 게 타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짧은 이야기 모음은 -영화 기법으로 설명하자면- 로버트 알트만 Robert Altman ..

48 최신독문헌 2024.12.06

서로박: 그뢰쉬너의 '모스크바의 얼음'

친애하는 G, 오늘은 당신에게 전환기의 소설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맨 처음의 작품으로서 마그데부르크 출신의 작가 아네테 그뢰쉬너 Annette Gröschner (1964 - )가 200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모스크바의 얼음 Moskauer Eis』를 선택해 보았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아냐 코베라는 여성입니다. 그미는 베를린에서 나이든 할머니의 임종 소식을 접하고, 고향인 마그데부르크로 향합니다. 할머니의 집에는 아버지가 사용하던 방이 있었습니다. 수년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버지의 방은 먼지 그리고 거미줄로 뒤엉켜 있었습니다. 아냐는 아버지의 방에서 커다란 냉동박스를 발견합니다. 아냐는 일순간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냉동박스 안에는 오랫동안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아버지의 시체가 있..

48 최신독문헌 2024.12.05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개정판 서문

친애하는 J,『 자발적 복종』의 원고를 다시 꺼내 읽습니다. 저자가 16세기 유럽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혹자는 이 책이 21세기 극동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직결되지 않는다고 속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라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은 유럽의 역사에서 수없이 인용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 운동 그리고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의 획을 긋는 문헌입니다. 수세기 동안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주창해 왔는데, 라보에시의 글은 유럽 민주주의의 발전에 오랫동안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으며, 19세기 이후의 여러 가지 진보적 운동의 지침서로 사용되었습니다.  역자는 우리 앞에 계층 사회가 존속하고,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에 사람이 존재하는 한,『 자발적 복종』이 여전히..

1 알림 (명저) 2024.12.02

서로박: (2)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참과 진리는 때로는 거짓과 궤변에 의해 거부당하기도 한다. 세 번째 막에서는 두 교사 사이의 엄청나게 폭력적이고 거친 논쟁이 벌어집니다. 두 명의 후보자는 파이디피데스의 능력과 관점을 설득하려고 노력합니다. "올바름을 옹호하는 자“는 자기 훈련을 위한 교육이라는 전통적인 이상을 강조합니다. 반면에 "거짓을 옹호하는 자”는 이른바 현대적 의미에서 궤변의 중요성 그리고 견강부회(牽強附会)의 사고방식을 내세웁니다. 거짓과 속임수를 통해서 즐거운 생활방식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종국에는 “올바름을 옹호하는 자”는 는 패배를 선언합니다. 말하자면 거짓을 옹호하는 자의 놀랍고도 교활한 말재간 덕분에 거짓과 속임수가 승리를 구가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구름의 합창단은 스트렙시아..

37 고대 문헌 2024.11.30

서로박: (1)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

1. 낙선작이 더 위대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νεφελεί」은 기원전 423년 아테네에서 개최된 디오니소스 축제 당시에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에서 수백 년을 이어 공연되었는데, 이 가운데에 시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연출가인 필로니데스Philonides의 공연이 가장 훌륭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필로니데스는 자신의 연출을 위해서 아리스토파네스의 「벌σφήκες」, 「개구리βάτραχοι」 그리고 두 편의 유실된 작품을 심도 넘치게 연구한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은 디오니소스 축제에 당선작으로 선정되지는 못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크라티노스Kratinos의 「술병πυτίνη」가 일등 작품으로, 아메입시아스Ameipsias의 ..

37 고대 문헌 2024.11.30

서로박: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사랑을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첫사랑의 경험은 사람에 따라서 의외로 썰렁한 기억으로 남아있기도 하지요. 어쩌면 우리 같은 현대인들은 첫사랑을 찬란한 것으로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맨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치고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으며, 사랑의 대상이 수없이 바뀐다고 하더라도 사랑하는 자의 설렘은 사랑의 강도를 차치하고라도 언제나 하나의 설렘으로 남습니다.  첫사랑이 아름답다면, 두 번째 사랑, 세 번째 사랑은 아름답지 않단 말인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를테면 마지막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죽음으로 인하여 영원히 이별..

31 동구러문헌 2024.11.28

틸로 자라친: 독일은 사라질 것이다.

(때로는 하자를 지닌 책도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더 이상 이 책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테니까. 그런데 우리 나라 사람들은 훌륭한 책, 좋은 책에 관해서 침묵을 지킨다. 가장 불행한 여인이 잊혀진 여인이듯이, 가장 불행한 것은 탁월한 책이 외면 당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 책의 제목을 "독일은 멈추고 있다."로 번역했는데, 이는 오역이다. 무엇을 멈춘단 말인가? abschaffen 이라는 단어는 "철폐하다" "없애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이다. 게다가 독일인들은 현재형의 문장으로 미래를 표현한다.) 2010년에 독일에서 간행된 책 한권이 무려 120만부나 팔려나갔습니다. 소설이 아니라, 전문서적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는 대단한 반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틸로 자라친 (194..

14 유럽 정치 202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