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림 (명저)

라 보에시: 자발적 복종 개정판 서문

필자 (匹子) 2024. 12. 2. 10:06

친애하는 J, 자발적 복종의 원고를 다시 꺼내 읽습니다. 저자가 16세기 유럽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혹자는 이 책이 21세기 극동에서 살아가는 우리와 직결되지 않는다고 속단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라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은 유럽의 역사에서 수없이 인용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 운동 그리고 아나키즘 운동의 역사의 획을 긋는 문헌입니다. 수세기 동안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을 주창해 왔는데, 라보에시의 글은 유럽 민주주의의 발전에 오랫동안 크고 작은 영향을 끼쳤으며, 19세기 이후의 여러 가지 진보적 운동의 지침서로 사용되었습니다. 

 

역자는 우리 앞에 계층 사회가 존속하고,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아래에 사람이 존재하는 한, 자발적 복종이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인하여 인간 사이의 불평등이 많이 해소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돈이 모든 세력을 장악하여 인간 사이의 불평등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구조 상의 불평등은 현저하게 사라졌지만, 금력으로 인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평등은 여전히 온존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한 자발적 복종은 자유의 문제 뿐 아니라, 인간의 평등의 문제 또한 포괄하는 귀한 문헌임에 틀림없습니다.

 

여러 번에 걸쳐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타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은 두 발로 의연하게 걷는 인간이 행하는 방식일 수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블로흐의 주장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를테면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은 사랑을 위하여 의 마음에 들도록 행동하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경우 사회적 문제를 중시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가령 머슴으로 태어난 자는 처음부터 무의식적으로 주인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합니다. 이를 고려할 때 자발적 복종은 개별적 사랑의 삶의 경우를 도외시한다면 계층 차이가 존재하는 사회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억압과 굴종을 포괄하는 심리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J,  2판을 간행하면서 한 가지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역자는 무림사의 번역판에서 저자의 이름을 보에시, 울력의 제 1판에서 라 보에시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여기서는 라틴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던 시기가 중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여 라 보에시라고 표기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앞으로도 나의 번역서에서 표기상의 실수 외에도 오역이 발견되면, 지체하지 않고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역자는 역서에 가려져야하기 때문입니다. 신비로운 작가 B 트라벤 (B. Traven)은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빵을 사서 먹을 때 우리가 제빵사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울력의 강동호 사장님에게 감사의 말씀 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