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바타이유의 C 신부 (2)

필자 (匹子) 2022. 12. 6. 10:57

(앞에서 계속됩니다.)

 

(8) 헐떡 수캐의 일기: 로베르의 방황은 이제 시작됩니다. 낮이면 그는 “지킬 박사”로, 밤이면 “하이드 씨”로 변신하여 살아갑니다. 땅거미가 내리면, 로베르는 몰래 성당을 빠져나와, 밤길을 마치 헐떡 수캐처럼 싸돌아다닙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밤 그는 드디어 용기를 내어서, 에포닌을 찾아갑니다. 샤를르와 함께 있던 에포닌은 초인종 소리에 바깥을 내다봅니다. 어느 성직자가 “물 쥐” 한 마리가 되어, 문 앞에서 서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에포닌은 몹시 기뻐합니다. 자신의 유혹이 드디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미는 샤를을 떠나보낸 뒤에, 로베르를 들어오게 하여 정을 통합니다. 그날 밤 로베르는 그미의 고객이 아니라, 하룻밤의 연인이었습니다.

 

(8) 바람난 성직자: 친애하는 R, 이게 과연 가능한 이야기일까요? 일단 소설의 줄거리를 계속 살펴보기로 합시다. 로베르는 에포닌을 열망합니다. 그러나 그미는 두 번째 만날 때부터 화대를 요구합니다. 로베르는 비애감을 느낍니다. 에포닌은 어린 시절에 자신의 연인이었지만, 이제 그미는 성욕의 도구일 뿐입니다. 신에 대한 죄의식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 밤샐 줄 모른다.”고, 로베르는 이제 모든 여성들을 열망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로지 그리고 레몽드가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끝내 알아냅니다. 로지와 레몽드는 도시 근교의 호텔에서 접대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로베르는 두 여자를 만나러 비밀리에 도시를 떠납니다. 어느 호텔에서 두 여자와 함께 낮을 보내는 것은 그의 일상사가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도시 R로 되돌아옵니다. 다시 에포닌을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어느새 그는 거짓말을 일삼는 탕아가 된 것입니다. 이제 로베르는 에포닌보다도 더 강렬하게, 샤를보다도 더 완강하게 성적 유희에 탐닉합니다.

 

(9) 비정치적 탕아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불쌍하도다!: 당시 도시 R은 독일 군인들에 의해 점령당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자주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신부를 밀고합니다. 그 무렵에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R 시의 역 근처에서 독일 장교에게 폭탄 테러를 가했던 것입니다. 로베르 역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고문당합니다. 불에 달군 인두가 그의 등을 파고듭니다. 살타는 냄새가 피어오르고, 입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로베르는 절대로 레지스탕스 운동과는 관계없이 살았다고 항변하지만, 아무도 이를 믿지 않습니다. 로베르는 모든 것을 체념합니다. 자신의 육체를 파고드는 극도의 고통에 대해 오히려 쾌락을 느낍니다. 이 순간 자신의 존재가 샤를르 그리고 에포닌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함께 일한 자가 누구인가? 하고 게슈타포가 물었을 때, 로베르는 죽기 직전에 “에포닌” 그리고 “샤를” 등을 거명합니다. 그 후 에포닌은 체포되어 1년 뒤에 처형당합니다. 쌍둥이 형, 샤를은 살아남지만, 고통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10) 소설의 배경과 구조: 친애하는 R, 소설은 여러 가지 문헌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샤를의 보고서입니다. 죽기 전에 샤를은 편집자에게 소설 내의 세부적 사건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였습니다. 둘째는 신부 C의 일기입니다. 그는 도시 R을 떠난 시점부터 죽기 직전까지 모든 것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밖에 여러 문헌들이 소설 집필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설은 작가 조르주 바타이유의 삶에 관한 내용을 시사해준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소설 내용 및 주제는 작가의 삶과 완전히 공통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C. 신부”는 바타이유가 30년대에 쓴 여러 작품의 내용 및 주제와 흡사합니다. 가령 “내적 경험 (L'expérience intérieure)” (1943), “죄지은 자 (Le coupable)” (1944) 등의 수기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바타이유의 아포리즘의 문헌이 신비주의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포리즘 속에는 사드 (Sade), 블레이크 (Blake), 니체 그리고 프로이트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11) 소설의 주제와 드레버만: 소설의 주제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23세의 기독교인의 경건주의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그의 이중인격의 요소를 찾아내는 일, 바로 그것입니다. 바타이유는 특히 종교적 인간의 내면에 도사린 감성을 노골적으로 까발리는 일을 무엇보다도 중시했습니다. 작가는 이른바 금기로 되어 있는 방종한 외설적 요소를 기독교인에게 접목시켜, 종교 자체를 철저하게 거부하려고 합니다. [파다본의 교수이자 신부인 오이겐 드레버만 (E. Drewermann) 역시 “성직자들 (Die Kleriker)”라는 방대한 책에서 종교인의 내적 상태를 예리하게 분석한 바 있지요.

 

여기서 드레버만은 성직자의 동성연애의 성향 그리고 수음 행위 등에 관해서 세부적으로 기술하여, 독일 사회에 커다란 물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지만 의도에 있어서는 바타이유와는 다릅니다. 드레버만은 성직자도 인간이며, 성직자의 고뇌와 은밀한 성을 밝히는 작업이 기독교의 위대한 정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반해 바타이유는 기독교 이데올로기 자체가 성 그리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가령 바타이유는 1928년에 발표한 “눈의 역사 (Histoire de l'œil)”를 통해서, 왜곡된 성 윤리 내지 인간의 삶에 대해 일일이 간섭하는 종교 이데올로기를 여지없이 비판하지 않았던가요?

 

(12) 마광수와 장정일 그리고 바타이유: 바타이유의 작품들은 대체로 독자의 마음속에 풍자 내지 “조소”의 에너지를 불어넣습니다. 말하자면 독자들은 바타이유의 작품 속에서 극한적 감정들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오르가슴과 같은 쾌락, 극도의 희생으로 인한 괴로움, 처형하고 싶은 분노의 욕구 그리고 극도의 절망 등이 그것들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인간 동물이 아직도 획득하지 못한 어떤 불가능한 무엇, 알려지지 않은 무엇 그리고 인식되지 않은 무엇 등을 유추하게 합니다.

 

이를 고려할 때 바타이유는 상기한 극한적인 감정들을 하나의 수단으로 채택하는 게 분명합니다. 쾌락, 고통, 분노 그리고 절망 등은 세상의 공허함에 대한 일종의 저항의 제스처입니다. 그것들은 바타이유의 주장에 의하면 개인적 권한을 해방시킬 수 있는 무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R, 과연 바타이유의 주장이 타당한 것일까요? 그것은 “의도”라는 측면을 고려할 때 납득이 가지만, 작가가 선택하는 방법 자체에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의 비판적 시각 자체에 오히려 잘못이 있을까요?

 

(13) 이야기는 너와 직결되지 않는다. (De te non fabula): 일단 바타이유의 견해에 대한 평가를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이는 나의 권한 그리고 능력 밖의 일감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나로서는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사항을 전하고 싶습니다. 즉 바타이유의 작품 내용 그리고 그 주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바타이유의 작품은 서구의 종교적 풍토 그리고 서구의 사회적 배경 하에서 출현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두 가지 사항만 첨가하겠습니다. 첫째로 서구 세계의 교회는 우리의 경우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이데올로기로 작용해 왔으며, 지금도 그렇게 작용합니다. 둘째로 서구인들의 외로운 삶을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은 어째서 그들이 매년 정신 나갈 정도로 휘황찬란하게 사육제를 치르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R, 삶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고통이나 절망이 아니라, 고독과 외로움이 아닙니까? 그렇기에 편안하게 살면서 지루해 하는 강남의 젊은이를 못내 부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