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2) 몽테를랑의 "젊은 처녀들"

필자 (匹子) 2023. 1. 3. 10:57

(앞에서 계속됩니다.)

 

7. 가톨릭 방식의 결혼에는 이혼이 없다.: 세 번째 소설의 제목인 『선함의 악령Le démon du bien』은 그 자체 “형용모순oxymore”의 표현이다. 코스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처해 있다. 결국 그는 동정심과 긍휼의 감정 속에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다. 솔랑주는 주인공과 만나 사랑을 나누지만, 정작 동침만을 거부하고 있다. 그럴수록 코스탈의 열정은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를 뿐이다. 이때마다 솔랑주는 자신과 결혼식을 올리자고 요구한다. 그러나 코스탈로서는 가톨릭 방식으로 그미와 혼인하는 게 영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가톨릭 방식의 결혼은 나중에 절대로 무효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의 결혼은 그의 마음에 하나의 부자유의 끈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솔랑주의 어머니는 귀찮을 정도의 성대한 결혼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8. “결혼은 남자를 새장에 갇히게 한다.”: 코스탈은 오랜 번민 끝에 솔랑주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속마음을 전한다. 즉 자신은 이런 방식의 헤어날 수 없는 혼인을 통해서 구속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정심 때문에 결혼하게 되면, 당사자는 불행해진다. On est malheureux on se marie par pitié.”는 것이었다. 뒤이어 주인공은 혼자 스위스의 제네바로 여행을 떠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문제로 인해서 솔랑주와 이별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솔랑주와의 틀어진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서, 다시 그미를 찾아간다. 이때 코스탈은 사랑에 대한 자신의 애타는 갈망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을 감지한다. 그와 마주한 여자는 매력과 감흥이라고는 발견되지 않는 불쌍한 영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솔랑주에게 이별을 선언한 다음에 코스탈은 소설의 집필에 매진한다. 글쓰기는 일시적으로 자신에게 심리적 해방감을 맛보게 하는 가장 즐거운 일감이라는 것을 그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9. 네 번째 소설 『나병환자들Les lépreues』(1838): 첫 번째 장은 주인공이 파리로 귀환할 때의 정황을 다루고 있다. 솔랑주는 지금까지 주인공에게 혼인만을 요구했는데, 이러한 요구가 거부당하자 심리적으로 몹시 피폐해 있다. 그렇지만 그미는 끈덕지고도 집요하게 결혼을 요청한다. 그래서 코스탈은 솔랑주를 달래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무심결에 내뱉는다. 그것은 조만간 결혼하겠다는 승낙이었다. 이에 대해 솔랑주는 몹시 기뻐하지만, 주인공의 마음에는 답답함과 지루함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이 가득 차 있다. 만약 그미와 결혼하게 되면, 자신은 일류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음식을 먹겠지만, 온갖 지루한 농담이나 나누면서 허송하리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솔랑주의 삶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그는 하나의 묘책을 떠올린다. 그것은 자신의 숨겨둔 아들의 사진을 그미에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사실인즉 코스탈에게는 숨겨진 아들 브루네가 있었다.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그는 술집 여자와 살을 섞었는데, 그미는 지방으로 잠적하여 코스탈의 아이를 출산했다. 술집 여자는 모든 사실을 숨기다가, 몇 년 후에 아들의 사진을 우편으로 보낸 바 있었다. 사실을 접한 솔랑주는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차라리 이별이 게 낫지 않을까 하고 고심한다.

 

10. 나병에 걸린 여인: 소설의 두 번째 장은 주인공이 라디자라는 여인과 함께 지냈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코스탈은 모로코에서 육감적인 여인 라디자Rhadidja를 찾아간다. 두 사람의 강력한 열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동침으로 이어진다. 코스탈은 그미의 몸과 마음을 사랑한다. 왜냐면 라디자는 언제나 자연스럽게 육체적 사랑 놀음을 마다하지 않지만, 한 번도 주인공에게 부담스러움을 가하지 않는다. 왜냐면 그미는 사랑의 유희 외에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주인공이 만난 여성들은 자신에게 언제나 혼인을 요구하며, 경제적으로 법적으로 일심동체가 되자고 요구했는데, 라디자는 이러한 요구로 코스탈을 압박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그미가 안타깝게도 나병에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코스탈은 이를 잘 알면서도 그미와의 육체적 접촉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날 꿈속에서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 그것은 나병에 걸려서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파리로 돌아온다.

 

11. 인생의 무대에는 아직 장막이 드리우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솔랑주는 여전히 코스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미는 끈덕지게 코스탈에게 전화하고 매주 편지를 보낸다. 언젠가 앙드레가 그러했던 것처럼 솔랑주 역시 사랑의 집착을 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럴수록 코스탈의 모골은 송연해진다. 자신에게 집착하는 여성들이 마치 피부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여겨진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전에 사귀었던 앙드레의 변신이었다. 앙드레는 주인공의 추측과는 달리 사랑의 미몽에서 깨어난다. 자신의 사랑이 일방적인 욕구로서 탐욕과 소유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그미는 자신이 코스탈을 사랑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감지한다. 자고로 사랑은 임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전달될 때 그 진정성이 밝혀지는 법이다. 앙드레는 자그마한 복수를 계획한다. 그미는 코스탈과 만나자고 약속한 뒤 커피숍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로써 그미는 헐떡 수캐로 살아가는, 자신의 바람둥이 애인을 바람맞힘으로써 통쾌하게 일방적으로 차버린 것이다.

 

 

12. 작품의 문체와 구조: 몽테를랑의 작품은 문체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작가는 때로는 서정적으로, 때로는 일상의 평범한 언어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무엇보다도 지리멸렬한 독서의 과정을 방해하기 위함이다. 간간이 등장인물의 어리석음이 풍자되고 있으며, 열정적인 성서 구절도 자연스럽게 활용되고 있다. 때로는 모든 사건을 꿰뚫는 전지적 화자 (全知的 話者)가 등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등장인물이 직접 화자로 활동하기도 한다. 주인공의 편지와 일기가 작품 속에 삽입되기도 하며, 등장인물에 대한 작가의 관점이 소설의 주제와 맞물려서 은밀하게 서술되기도 한다. 사실 독자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사부작 소설의 마지막까지 독파하기 위해서는 작가로서 여러 가지의 서술 방식을 활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