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1) 몽테를랑의 "젊은 처녀들"

필자 (匹子) 2023. 1. 3. 10:52

 

1. 위풍당당한 마초, 여성에 대한 경멸 그리고 인종주의: 이것은 앙리 드 몽테를랑 (Henri de Montherlant, 1895 – 1972)과 그의 문학에서 일차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몽테를랑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의용군으로 참가하였다. 이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발표된 소설 『꿈』(1922)에서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전쟁 영웅이 묘사되고 있다. 남성적 기개를 지닌 작가는 젊은 시절에 투우 경기에 몰입한 바 있으며,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의 소설 『소년들』이 2018년에 유정애의 번역으로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간행된 바 있다. 몽테를랑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독일의 작가, 에른스트 윙거Ernst Jünger를 닮았다. 절대로 흔들리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지키는 강인한 남성의 기개는 스토아 사상가의 “아타락시아 ἀταραξία”에서 비롯한 것이다. 의연한 자세로 마음의 평정을 추구하는 남성상은 특히 에른스트 윙거의 문학 작품에서 정교하게 묘사된 바 있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윙거가 수미일관 나치 군국주의 및 이에 근거한 제반 정책에 날카롭게 비판했다면, 몽테를랑은 백인의 우월성을 중시하면서, 일시적으로 파시즘에 동조하기도 했다.

 

2. 남자의 에고이즘 그리고 여성편력:『젊은 처녀들Les jeunes filles』은 몽테를랑의 4부작 소설이다. 작품은 1936년에서 1938년까지의 기간에 발표되었다. 몽테를랑은 이전의 소설 『꿈』 그리고 『투우사Les Bestiaires』에서 여성과 남성 그리고 이들 사이의 사랑과 성과 관련되는 심리적 차이와 갈등을 심도 넘치게 파고든 바 있다. 소설은 주로 주인공인 작가 피에르 코스탈의 여성 편력을 세밀하게 서술하고 있다. 코스탈은 자유로운 영혼으로서 소설을 쓰면서 살아가는 작가다. 그의 소설은 최근에 많이 팔려서 엄청난 인기를 일시적으로 누리고 있다. 코스탈은 엘리트 관료주의를 추종하는 사내인데,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만 살아간다. 그의 에고이즘은 자신을 사랑하는 여인들의 마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두 번째 소설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주인공은 여성들에 대해 오로지 자그마한 연민의 감정만을 품을 뿐이다.

 

 

3. 테레제 팡트뱅.: 첫 번쩨 작품 『젊은 처녀들 Les jeunes filles』는 서간체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사건은 코스탈의 일기로 서술되어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코스탈은 성공 가도를 달리는 소설가인데, 두 명의 처녀가 나타나서 그에게 접근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제각기 주인공의 소설을 읽고 작가에게 매료된다. 두 여성의 마음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 남자에 대한 열광적 집착으로 변화한다. 한 여성은 테레제 팡트뱅Thérèse Pantevin이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이다. 그미는 시골 출신으로 순박하지만. 외모에 있어서는 너무나 볼품없는 처녀인데, 오래전부터 신비주의의 신앙에 매몰되어 있다. 말하자면 사랑이란 테레제에게 아가페적인 헌신과 다르지 않다. 그미는 주에 대한 경건한 믿음 그리고 코스탈에 대한 애호 사이의 분명한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한다. 종교적 헌신의 자세는 테레제의 마음속에 백마 탄 왕자에 대한 불타는 황홀의 감정과 묘하게 겹치고 있다. 결국 그미는 현실과 가상 사이를 오가다가 결국 어느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4. 앙드레 아케보: 다른 여성은 앙드레 아케보Andrée Hacquebaut라는 이름을 지닌 여성이다. 그미는 섬세한 감정을 지녔으며, 인문학적 소양을 쌓은, 명석한 여성이다. 그렇지만 앙드레는 외모에 있어서 너무나 볼품이 없다. 지금까지 그미에게 관심을 기울인 사내는 한 명도 없었다. 그미는 문학 작품을 통해서만 사랑과 성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뿐이다. 코스탈은 앙드레와 조우할 때 그미의 어설픈 행동으로 인해 자주 혼란스러움에 사로잡힌다. 연애 경험이 부족한 그미로서는 가슴속으로 불쑥 파고드는 코스탈의 태도에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느낄 수밖에 없다. 두 사람 사이에서 당김과 밀침은 계속 이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인공은 앙드레에 대한 자신의 관심이 사라지는 것을 감지한다. 그래서 그는 앙드레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다른 한편 앙드레는 작가 코스탈이야 말로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내라고 확신하고 있다. 사랑하는 임의 마음이 식어가는 게 앙드레로서는 너무 가슴 아프다. 그래도 앙드레는 언젠가는 그가 자신에게 돌아오리라고 굳게 믿는다. 앙드레는 일시적으로 파리에 머물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지만, 그때마다 코스탈은 놀란 토끼가 되어 자신에게서 멀어질 뿐이다.

 

5. 솔랑주 당디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연민: 두 번째 작품 『여성에 대한 연민Pitié les femmes』은 하나의 사건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코스탈은 근자에 이르러 솔랑주 당디오Solange Dandillot라는 여성과 사귀게 된다. 그미는 부유한 집안의 처녀인데, 아름다움, 우아함 그리고 자연미를 겸비하고 있다. 고집이 세고 편협하다는 점 외에는 이른바 시민 사회에서 여자로서 갖추어야 하는 모든 조건을 지니고 있다. 작품은 주인공과 솔랑주 사이의 애정이 어떻게 전개되는가 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코스탈은 아름답고 착한 솔랑주를 처음 바라보는 순간 완전히 넋이 나가게 된다. 두 남녀는 미래를 약속하면서 꿈에 부풀어 있다. 두 사람 사이의 달콤한 데이트가 이어지고 있을 때 갑자기 앙드레 아케보가 나타나서, 두 남녀를 방해한다. 이는 주인공을 몹시 불편하게 만든다. 코스탈은 애써 냉정을 취하면서 그미의 사랑을 거절한다. 다음날 다시 찾아오면, 자신을 끈덕지게 귀찮게 하는 그미에게 끔찍하게 굴욕을 안겨주리라고 작심한다. 문제는 솔랑주가 그들의 대화를 몰래 엿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코스탈은 그미에게 자초지종을 해명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토로한다. 즉 자신은 다른 여성에게서 오로지 연민의 정만을 느낄 뿐이라는 것이다. 앙드레와 같은 사회심리적 별종은 측은함을 자극하여, 남자의 호감을 얻으려고 발버둥 친다고 한다.

 

6. 솔랑주 결혼을 요구하다: 주인공의 이러한 발언은 애인의 질투심을 달래려는 방편이지만, 모든 여성에 대한 자신의 무관심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변명 아닌 변명으로서 엄밀히 따지면 여성을 하나의 객체로 고찰하는 주인공의 궤변일 뿐이다. 여성들은 그의 눈에는 자신과는 다른 객체로 투영되며, 간간이 동정심을 부추기는 그러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어지는 장에서 솔랑주는 주인공을 길가에 버려진 천방지축의 응석받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마음을 안정시키려면 결혼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믿는다. 솔랑주는 주인공에게 결혼할 것을 강하게 제안한다. 이때 코스탈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이를 거부한다. 평소에 그는 결혼을 하나의 구속이라고 생각해 왔다. 코스탈은 결혼 문제로 고심한다. “유부남 가운데 영리한 자는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영리한 자는 결혼하지 않기 때문이다. Les hommes mariés sont généralement stupides. Les hommes intelligents ne se marient pas.” 자신이 결혼에 응하지 않으면, 솔랑주는 자신을 떠나고 말 것이다. 코스탈은 이성적으로는 결혼을 받아들이려 하지만, 내심 자신이 새장에 갇힌 한 마리 장끼 신세로 전락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머리와 마음이 제각기 따로 움직이므로 번민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