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1) 사르트르의 "존경스러운 창녀"

필자 (匹子) 2023. 1. 14. 10:47

친애하는 S, 인간은 누구나 주어진 인습의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습이 한 인간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할 정도로 막강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습이란 이른바 사회적 통념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1930 - 2002)의 전문 용어로 표현하자면 아비튀스habitus의 개념과 일맥상통합니다. 지금 여기의 통념은 다수의 사회 구성원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교육을 통해서 규정되고 확정되는 특정한 견해를 가리킵니다. 한국 사회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이 일류가 아니라고 단정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우리는 SKY 대학출신자들이 무조건 영리하고,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사회적 통념에 의해 비롯되는 것인데, 이게 말하자면 이데올로기와 같은 부정적 통념의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부정적 통념에 근거한 하나의 판단은 잘못된 것입니다. 개개인의 능력을 정해주는 것은 우리가 현재 추구하는 노력이지, 우리가 과거에 거두었던 성적이 아닙니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상대평가의 교육 제도를 통해서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을 말살하고, 개개인들에게 등수를 매겨 왔습니다. 이는 학벌이 개개인의 능력을 말해주는 수단이라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착각과 오류는 미국 사회의 흑인들에게서 수없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오랜 세월 억압과 부자유에서 살아온 흑인들은 자신의 존재가 천부적으로 저열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백 년 전부터 노예적 삶은 흑인들의 일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은 많이 변화되었지만, 당당한 자유인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흑인들에게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문제는 인간의 자기 비하적인 굴종적 자세에 있습니다. 스스로 모자라고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1905 – 1980)는 프랑스의 문호로서 수준 높은 철학서 그리고 문학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극작품들은 그렇게 많이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필자는 이 자리를 빌려 그의 극작품 「존경스러운 창녀La putain respectueuse」를 소개할까 합니다. 이 작품은 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드라마인데, 1946년 11월 8일 파리의 앙투안 극장에서 초연되었습니다. 사르트르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미국을 방문했는데, 귀국 후에 이 작품을 탈고했습니다. 작품에는 “미국 남부의 어느 곳”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건대 작품은 인종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리지라는 이름을 지닌, 몸을 파는 여성입니다. 그미는 어디론가 기차를 타고 가다가, 살인 사건을 목격하게 됩니다. 어느 흑인이 기차에서 살해당했던 것입니다. 술 취한 백인 두 사람은 기차에서 눈에 거슬리는 두 흑인 남자를 조롱하고 모욕을 가합니다. 급기야 그들은 “검둥이 두 마리”를 차창 밖으로 던지려고 합니다. 이때 실랑이와 주먹다짐이 오가게 되었는데, 이때 백인 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피스톨을 꺼내어 흑인 남자 한 사람을 쏴 죽이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때 다른 백인 남자는 살인 사건에 엮이기 싫어서 어디론가 도망칩니다. 살인을 저지른 백인 사내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으며 돈 많은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문제는 백인 남자가 사람들을 시켜서 살인 사건을 “없었던 일”로 둔갑시키게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친구들은 다음과 같은 거짓 소문을 퍼뜨립니다. 흑인 남자들이 주인공 리지를 겁탈하려고 했는데, 백인 사내 한 명이 불쌍한 여인을 도우려고 하다가, 자신을 정당하게 방어하기 위해서 총을 쏘았다는 게 거짓 소문이었습니다. 그곳 지역의 백인들은 분개하여, 어떻게 해서든 살인을 저지른 흑인 남자를 체포하게 합니다. 다른 한편 그들은 주인공 리지에게 압박을 가합니다. 주인공 리지가 판사 앞에서 하마터면 흑인에게 겁탈당할 뻔했다고 증언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프레드라는 이름을 지닌 남자가 리지를 찾아옵니다. 프레드는 살인자의 사촌이었는데, 그미를 법적 증인으로 요청하기 위해서 그미를 방문했던 것입니다. 프레드는 그미와 하룻밤을 보낸 다날에 경찰관 두 명을 대동하고 리지를 찾아옵니다. 경찰과는 매춘의 혐의로 그미를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합니다. 그러나 리지는 이를 거부합니다. 프레드의 과도한 요청에 화를 내면서 그미는 판사에게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강하게 버팁니다. 프레드가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지 못하게 되자, 이번에는 살인자의 아버지가 리지를 방문합니다. 그는 미국의 상원의원이었습니다. 상원의원은 어머니의 괴로운 심정을 전하면서 리지를 설득하는 데 성공을 거둡니다. 스스로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회적으로 명망 높은 부인이 자신에게 감사를 전한다는 말에 감복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미는 거짓을 증언하겠다는 서류에 서명하게 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