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1) 유르스나르의 "검은 작품"

필자 (匹子) 2022. 12. 23. 10:46

1. 유랑하는 작가, 영원한 이방인: 친애하는 Y, 오늘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Marguerite Yourcenar, 1903 – 1985)의 소설 한 편을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그미는 벨기에 출신의 미국 작가인데, 본명은 마르그리트 드 크레이엥쿠르입니다. 유르스나르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었으므로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성장했습니다. 정치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아버지와 함께 유럽 그리고 중동 지방에서 유랑하면서 살았습니다. 1935년 산문시집 『불Feux』을 간행했습니다. 이때 편집자였던 앙드레 프레노 (André Fraigneau, 1905 – 1991)를 사랑하게 되었는데, 앙드레는 동성연애자였기에 그미의 사랑 고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2. 자신의 반려를 동성에서 찾다.: 1937년 유르스나르가 미국의 영문학 교수인 그레이스 프리크 (Grace Frick, 1903 – 1979)을 만나게 되었을 때, 자신의 내면에 동성에 대한 연정이 처음부터 뿌리박혀 있음을 감지하게 됩니다. 먼 훗날 유르스나르는 어느 인터뷰에서 무엇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동성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다고 술회하기도 했습니다. 두 여인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미국에서 살아갑니다. 두 여인의 동행은 그레이스 프리크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레이스 프리크는 유르스나르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해주어 발표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채식주의자였던 그미는 자연보호와 동물 보호 운동 적극적으로 가담하기도 했습니다. 1980년 초에 유르스나르는 프랑스의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와 함께 캐나다의 바다사자 포획에 대한 반대 운동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3. 학문을 탐구하며 자신과 싸우는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는 평생 우울증과 불안 증세에 시달렸는데, 이러한 증세를 달래준 것은 바로 독서와 글쓰기였습니다. 그미의 문학적 특징은 고전과 역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역사 소설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유르스나르는 틈만 나면 고전과 역사를 탐구하였는데, 이러한 학문적 자양은 자신의 작품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프랑스 학술원이 1960년대 말에 벨기에 출신의 미국 소설가를 과감하게 회원으로 받아들인 것을 감안하면, 우리는 유르스나르의 학문적 그리고 문학 예술적 토대가 얼마나 굳건하고 심도 넘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다루게 되는 작품 『검은 작품 L’œuvre au Noir』(1968) 또한 역사 속에 나타난 연금술 그리고 비밀스러운 카발라 학문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4. 연금술, 새로운 물질을 산출하려는 노력인가? 유르스나르는 1934년에 이미 「뒤러에 의하면 D’apres Dürer」라는 제목의 소설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간행된 일련의 연금술의 논문에 나타난 물질의 붕괴 그리고 용해 현상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사실 연금술에 관한 평가는 오늘날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줍니다. 혹자는 금이라는 고유한 금속을 다른 물질로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허구이며 거짓이라고 단정합니다. 이에 따르면 연금술은 일종의 검은 마술을 추구하는 “흑마법”으로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혹자는 연금술이 지상의 사악하고 더러운 물질을 기독교적으로 순화시키고 정화하려는 노력과 결부된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작가 유르스나르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연금술의 과정이 물질의 근본을 밝히려는 대담한 실험과 관련되는가? 아니면 그것은 다만 상징적 의미로서 허상과 편견을 떨치기 위한 정신적 검증 과정인가?

 

 

5. 의사, 철학자 그리고 연금술사: 작품의 주인공은 역사에 등장했다고 하는 가상적인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은 제논이지만, 엘레아 출신의 철학자 제논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는 1510년에서 1559년 사이에 살았습니다. 제논의 해적이는 당시의 유명한 학자 에라스뮈스 폰 로테르담의 그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제논은 어느 상당의 고위수사와 시민 가정의 처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논은 평생 수사로 살아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관심을 기울인 영역은 철학, 의학 그리고 연금술이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의 관심은 스위스 출신의 기상천외한 학자, 파라켈수스를 방불케 합니다. 제논은 신앙의 영역과 의학의 영역에 있어서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으려고 합니다.

 

6. 금을 만들어내는 기술 그리고 물리 역학의 철학: 제논은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놀라운 열정으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합니다. 그 밖에 주인공에게는 엄청나게 거대한 성적인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제논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당시의 시대적 모순을 집요하게 추적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제논의 사고는 스콜라 학문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여기서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말하자면 연금술에서 그리고 물리 역학의 철학에서 하나의 체제 비판적인 동력을 끌어내고 싶었습니다. 미래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그 두 가지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자가 사물의 내면에서 어떤 신적인 고결한 무엇을 도출해내는 작업이라면, 후자는 당시 현실에서 함부로 발설할 수 없는 무신론 사상을 가리킵니다. 이로써 제논은 한편으로는 경험적 차원에서 물질의 본질을 찾아내고 싶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카발라주의자의 제자처럼 놀라운 상상력으로 미래를 투시하고 싶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