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3) 몽테를랑의 "젊은 처녀들"

필자 (匹子) 2023. 1. 5. 11:38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소설 속에 묘사되는 남성의 심리: 사부작 소설은 20세기 초 프랑스에 살던 젊은 여성들 그리고 엘리트 의식을 지닌 남성 작가의 무의식적 욕망을 꿰뚫고 있다. 그런데 작품에는 남성들의 이기주의적 자세, 여성에 대한 경멸하는 시각 그리고 결혼제도에 대한 비판 등이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남성 독자들은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이켜볼 정도로 주인공 코스탈이 자신과 유사하다고 느끼곤 했다. 그렇다면 『젊은 처녀들Les jeunes filles』의 주제는 남성적 일방적 오만 그리고 편견으로 요약될 수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몽테를랑은 자신이 주인공 코스탈과 동일시되는 데 대해 반기를 들었다. 코스탈은 자신과는 다른 남성적 주체라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작가의 냉소적 태도 그리고 남성적 교만함은 작가와 등장인물 사이에 공히 나타나고 있다. 시몬느 보부아르는 2의 성 Le deuxième sexe에서 몽테를랑의 작품이 여성에 대한 일반적 냉소주의를 표현하고 있으며, 코스탈이라는 인간형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하였다. 코스탈과 만나는 여성들은 보부아르에 의하면 그야말로 공허한 존재에 불과하며,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통해 존재감을 찾아가는 대부분 여성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14. 주인공의 인성이 문제인가, 아니면 남성 중심주의의 사회적 인습이 문제인가?: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코스탈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온갖 교태를 부리며, 자신에게 향하는 고통을 감내하지만, 주인공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여성들은 현실 감각이 결핍된, 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들이다. 솔랑주는 전통적 인습에 의존하고, 테레제는 신앙과 믿음에 의존하며, 앙드레는 처음에는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적어도 그들이 각자의 인생에서 자아 정체성을 상실하는 한 그들이 사랑의 삶에서 어떤 바람직한 출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실패는 자신 외에도 코스탈이라는 인간형, 다시 말해서 그의 기회주의적 냉소주의에 기인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는 그 책임을 20세기 프랑스의 남성중심주의적 관습, 도덕 그리고 법에 물어야 할 것인가?

 

몽테를랑의 사부작은 싫든 좋든 간에 여성 혐오의 특징 그리고 남성적 강인함과 지적 탁월함을 치켜세우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앙드레 지드의 남성 예찬이 몽테를랑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프랑스 작가, 모리스 바레스 (M. Barrès, 1862 – 1923)의 남성적 나르시시즘 그리고 유럽의 퇴폐적인 당디즘의 음험한 영향 역시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코스탈의 여성관에 대한 진지한 분석도 아니고, 그에 의해 착취당하는 여성들의 심리 분석도 아니다. 어쩌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작가의 뇌리에 뿌리 내리고 있는 하나의 사변적인 여성상에 불과할지 모른다.

 

15.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해석과 창조적 오해: 작품의 주제는 묘하게도 어떤 여과 장치를 통해서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사실 20세기 초의 유럽 독자들은 몽테를랑의 문학을 접하면서 작가의 여성 비하적 관점 내지는 여성에 대한 작가의 편견을 예의 주시한 게 아니라, 20세기 초 사람들의 여성 비하와 여성 차별이라는 관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로써 20세기 초 유럽의 통상적인 관습으로서의 여성관이 세인의 관심을 끌게 된 셈이다. 달리 말하자면 독자들은 몽테를랑의 여성 비하의 견해를 수용한 게 아니라, 남성중심주의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저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처지를 막연히 수용했을 뿐이다. 여기서 작가의 창작 의도는 기이하게도 가려진 반면에, 20세기 초의 남성 사회의 폐단이 독자의 관점에서 은밀하게 전달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의 독자들이 독서 시에 스스로 읽고 싶은 부분을 일방적으로 선별한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간파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당시의 여성 독자들에게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는 사실 역시 독자들의 “창조적 오해”와 관련된다.

 

앙리 드 몽테를랑 (1895 - 1972)

 

16. 창조적 오해의 여러 가지 범례: 문학의 수용의 과정에서 창조적 오해는 자주 발생한다. 가령 우리는 발자크 문학의 수용 과정에서도 이에 대한 예를 발견할 수 있다. 오노레 발자크는 정치적으로 왕당파라는 수구 보수주의의 입장을 견지했으나, 발자크의 소설 시리즈에 해당하는 『인간 희극La Comédie humaine』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경제적 사회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현실의 잘못된 부분 내지는 모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로 인하여 그의 문학은 저자의 의도와는 달리 사회의 변화를 촉구하는 자극제로 활용되었다. (루카치는 19세기 리얼리즘의 문학을 논하면서 문학적 수용 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기현상에 관해서 자세히 해명한 바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Il Principe』은 어리석은 민중을 다스릴 수 있는 사악한 술수를 가르쳐 주지만, 평민이 이 책을 접하게 되면, 사악한 폭군의 술수와 간계를 간파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몽테를랑의 사부작은 오늘날 페미니즘을 추구하는 여성의 관점에서 고찰하면, 남성들의 오만과 이기심을 파악하게 한다. 그렇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몽테를랑의 소설은 남성과 여성의 심리를 간파하고 어떤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비판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모든 문학은 이런 방식으로 동전의 양면과 같은 양쪽 측면으로 해석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다. (장편) 소설에서 나타난 창조적 오해는 어느 부분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작가의 창작 의도는 어느 정도까지 독자의 수용에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이러한 일련의 물음들은 수용미학의 차원에서 별도로 추적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