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2) 유르스나르의 "검은 작품"

필자 (匹子) 2022. 12. 24. 11:06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소설의 구도는 연금술의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다.: 소설은 마치 교양 소설과 같은 특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 단락으로 나누어집니다. 세 단락은 마치 연금술의 세 단계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가령 연금술의 첫 번째 단계인 흑(黒)은 방랑의 삶을 가리키고, 두 번째 단계인 백 (白)은 정적의 삶을 가리키며, 연금술의 세 번째 단계인 적(赤)은 영어(囹圄)의 삶을 지칭합니다. 소설의 이러한 구도는 자유에서 구속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현상적 세계에서 암흑의 세계로 변화되는데, 우리는 여기서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파고들려고 하는 작가의 관점을 추체험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연금술, 학문의 연구 그리고 깨달음으로 향한 노력은 신에게 자신을 의탁하려는 믿음과는 다르다는 사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시종일관 방해하는 것은 (신권과 금권의)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8. 첫 번째 단락, 방랑의 삶: 작가는 제논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불안정한 삶을 서술합니다. 여기서 작가는 제논의 개인적인 삶의 과정을 16세기의 역사적 사건과 문학적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제논은 벨기에의 브리게에 있는 부유한 은행가인 삼촌 리그레의 집에서 성장합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므로 생활고 없었지만, 제논은 외로움을 많이 탑니다. 삼촌의 집에 거주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한 다음에 어머니인 일종드는 네덜란드의 상인 시몬 아드리안젠과 결혼했던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딸, 마르타가 태어납니다. 제논은 청년 시절에 경제적 어려움 없이 의학과 연금술에 몰두하게 됩니다. 뒤이어 혼란스러운 시간이 찾아옵니다. 주인공의 어머니, 일종드는 의붓아버지인 아드리안젠과 함께 재세례 종파에 가담했습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세례파를 이단으로 규정합니다. 1530년에 독일의 도시 뮌스터의 목사인 로터만은 재세례 운동에 동조하면서, 가톨릭교회에 대항하여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역사서에 기술된 뮌스터의 재세례파 폭동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종교적 갈등과 이로 인한 전쟁은 1535년에야 비로소 종식됩니다. 일종드와 아드리안젠은 혼란스러운 폭동의 틈바구니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8. 이어지는 혼란스러운 삶: 마르타는 주인공 제논의 여동생이었습니다. 그미는 부모가 사망하자 시몬 아드리안젠의 여동생 살로메의 집에서 성장합니다. 살로메는 이미 당시 독일의 막강한 가문, 푸가 집안의 아들과 혼인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페스트라는 질병이 창궐하여 집안이 풍비박산되었습니다. 모두 사망하고, 마르타 혼자만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이때 제논은 페스트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마르타를 치료해줍니다. 마르타는 제논이 자신의 오빠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이때 그의 마음속에는 사랑의 열정이 솟구치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많은 여성을 만났지만,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린 적인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제논은 그미와 사랑을 나누고 하나의 몸이 되는 것이 근친상간이라는 범행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제논은 마음속으로 엄청난 갈등을 느낍니다. 제논은 공부를 끝낸 다음에 유럽 전역과 소아시아를 방랑합니다. 소문에 의하면 제논은 시신을 신봉하는 종파에 가담하여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는 장군의 주치의로 일하면서 이단에 해당하는 서적을 집필합니다. 이로 인하여 제논은 왕궁으로부터 여러 가지 고초를 당하게 됩니다.

 

9. 두 번째 단락, 정적의 삶: 두 번째 단락에서 제논은 방랑 생활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고향인 벨기에 브리게로 되돌아옵니다. 세상은 자신을 이단의 혐의를 지닌 용의자로 간주합니다. 그래서 제논은 자신의 이름이 제바스찬 테우스라고 말합니다. 뒤이어 그는 성 코스마스 병원에서 빈민을 돕는 의사로 일합니다. 이때부터 그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철학 문헌을 탐독합니다. 어느날 그는 프란체스코 수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독자들은 이 대화를 통해서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갈등 그리고 종교 개혁 운동, 이로 인한 종파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유럽 전역을 식민지로 삼던 에스파냐 정권의 폭거에 관한 정보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제논은 인간의 사상으로 인한 영향보다는 사상 자체에 관해서 더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그리고 여러 가지 사상적 대립이라는 양극성 자체는 그의 눈에는 의심스럽게 비칩니다. 결국 제논은 자신이 추구하는 철학적 사고에 그다지 신명을 느끼지 못합니다. 다른 영역에서도 얼마든지 선입견이 자리하고 있으며, 사악함이 자라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하자, 그는 자신의 철학 연구가 하나의 도피적 행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를 입수하고 주인공을 체포하려 했을 때, 제논은 편안한 마음으로 이를 받아들입니다.

 

10. 세 번째 단락, 영어의 삶: 제논이 체포되었을 때, 그곳 수도원의 원장은 마르타를 찾아갑니다. 수도원장은 제논의 은사였는데, 불행에 처한 제자를 돕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르타는 그 사이에 결혼을 통해서 리그르의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아 도시의 유지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수도원장이 그미에게 도움을 청했을 때, 마르타는 자신의 오빠가 누군지 모른다고 말하면서 도움을 거절합니다. 재판이 거행되었을 때 제논은 얼마든지 자신의 이단적인 견해를 공개적으로 번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이를 거부합니다. 어쩌면 제논은 이 순간 자신이 높은 단계의 지혜에 도달했다고 확신합니다. 인간은 누구든 간에 자의든 타의든 간에 어떤 덫에 갇히게 되는데, 이것이 자신을 함몰시키는 것인지 아닌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살아서 화형대에서 타 죽느니, 미리 죽는 게 낫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제논은 처형 전날 밤에 자신의 동맥을 끊습니다.

 

Das Labor des Alchemisten" im Amphitheatrum sapientiae aeternae von Heinrich Khunrath (1595)

 

11. 검은 작품의 의미: 그렇다면 유르스나르의 소설 『검은 작품』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제논 리그레는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 수사, 철학자, 의사 연금술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연구로 인해서 교회 권력과 시종일관 마찰을 빚습니다. 제논은 죽음 직전에 신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어느 정도 감지하게 됩니다. 어쩌면 유르스나르는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르네상스 시대의 어느 시점이라고 판단한 게 분명합니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프랑스의 어원에 의하면 “다시 태어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실 중세의 시대에 사람들은 기독교 종교에 의해 잠들어 있었으며, 죽어 있었습니다. 르네상스의 시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연금술이라는 생명의 물을 마시고 잠에서 깨어나거나, 죽음의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인간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를 을렀을까요? 작가 유르스나르는 이러한 “피 흘림을 거친 자유의 쟁취”를 상징적 의미에서 “검은 작품”이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12. 제논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작품에는 파라켈수스, 미구엘 세르베토, 에치엔 돌레, 토마소 캄파넬라, 조르다노 브루노 등의 글이 발견됩니다. 작품 속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문장 역시 자주 인용되어 있습니다. 파라켈수스 (Paracelsus, 1493 – 1541)는 연금술 등에 대한 스위스 당국의 탄압으로 수없이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미구엘 세르베토 (Miguel Serveto, 1511 – 1553)는 에스파냐의 의사였는데, 사이비 의술로 혹세무민한다는 이유로 처형당했습니다. 에치엔 돌레 (Étienne Dolet, 1509 – 1546)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출판업자였는데, 이단의 혐의로 공개적으로 처형당했습니다. 캄파넬라 (Tommaso Campanella, 1568 – 1639)는 이단과 반역의 혐의로 26년 동안 옥살이를 마치고 프랑스로 도주한 철학자입니다. 조르다노 브루노 (Giordano Bruno, 1548 – 1600)는 이단의 혐의로 고소당해서 화형대에서 불타 죽은 지식인이었습니다. 자고로 믿음은 자신의 심리적 아픔을 달래주고 치유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줍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에 돈과 권력이 첨가되면, 그것은 “참된 신앙”이 아니라, 인간, 인간의 자유 그리고 인간의 학문 행위를 옥죄는 끔찍한 형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