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1) 이미지는 서구 문명의 아편인가? 미셸 투르니에의 '황금 구슬'

필자 (匹子) 2024. 5. 22. 09:57

1. 친애하는 J, 서구 문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그것이 무엇보다도 이미지, 즉 시각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다는 사실입니다. 서구의 사회는 눈에 비치는 세계를 중점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시각적 요소론의 세계관을 떠올리게 됩니다. 물질은 인간의 눈에 투영된 형상으로 각인되었습니다. 가시적으로 투영된 대상은 오로지 객체 내지는 표피적 대상으로 인지될 뿐입니다. 서구 문명사회는 “오성ratio”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다른 인지 기능인 청각, 후각 그리고 촉각을 도외시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물질은 가시적 대상이라는 피상적인 이미지만 두뇌에 입력되었을 뿐입니다.

 

눈(眼)은 윤노빈 교수에 의하면 모든 사물을 분할하고 절개하는 수단이었습니다. 바꾸어 말하는 인간의 눈은 모든 것을 나누고 분해한다는 점에서 “쪼개는 칼”에 비유됩니다. 서구 사람들은 물질을 상품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에서 양적으로 나누고, 특히 표피적이고 피상적인 측면을 강조하였습니다. 모든 것은 수로 분할되고, 양적으로 계산되던 것입니다. 이로써 강화되는 것은 물신 숭배의 사고이며, 이미지로서의 세계일 뿐입니다. 이미지는 투르니에에 의하면 서구 사회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아편이라고 합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2.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의 소설, 『황금 구슬La goutte d’or』은 1986년에 파리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15세의 소년, 이드리스입니다. 이야기는 북아프리카에서 가축을 키우다가 파리로 여행한 다음에 프랑스에서 삶을 이어가는 과정을 서술해 나갑니다. 이로써 작가는 서구 사회를 지배하는, 이른바 사진이라는 시각 매체의 과도한 맹신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려고 합니다. 이드리스의 고향은 북아프리카 지역인 “타벨라바”입니다. 타벨라바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안온하고 포근한 정서로 가득 찬 영역입니다.

 

그곳에는 넓게 펼쳐져 있는 사막 그리고 황무지가 퍼져 있지만, 사람들은 원시적 분위기 속에서 무속에 근거하는 미신을 부분적으로 맹신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이슬람 교인인데, 무의식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을 혐오합니다. 예컨대 이곳 북아프리카 지역의 사람들은 유럽 관광객이 소지한 카메라 속에는 사악한 약령의 에너지가 은밀하게 활개 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기에 즉흥적으로 찍어내는 스냅 사진은 인간의 영혼을 앗아간다고 지레짐작합니다. 카메라야말로 인간의 혼을 앗아가는 음흉한 날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3. 어느 날 백인 여성 한 사람이 관광차 타벨라바를 방문했습니다. 그미는 이드리스와 함께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서 사진을 현상하여 반드시 우편으로 이드리스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오래 기다렸지만 이드리스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으로부터 사진을 한 장도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이때 그의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비아냥거렸습니다. “그 프랑스 여자가 너의 영혼을 앗아가고 말았어. La française a volé ton âme”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영혼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결심은 급기야는 프랑스 여행으로 이어집니다. 사진을 되찾는 일은 한마디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업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이드리스는 출국할 때 자신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 하나를 소지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신묘한 영험을 지니고 있는 황금 구슬이었습니다. 마을에는 “체트 초바이다”라는 이름을 지닌 무녀(巫女)가 살았는데, 타벨라바에서 개최된 결혼식에서 광란의 춤을 추다가 그만 실수로 황금 구슬을 분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황금 구슬은 우연한 기회로 이드리스의 수중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4. 황금 구슬은 작품에서 무엇을 상징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 의미를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첫째로 『황금 구슬』은 프랑스 파리의 구역 이름입니다. 이는 븍 아프리카의 이질적 문화가 프랑스 파리에 편입되어 있다는 점을 암시해줍니다. 둘째로 황금 구슬은 그림과 사진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혐오하는 이드리스의 이전 세계에 대한 객관적 상징물입니다. 황금 구슬은 주인공에게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이며, 이슬람 세계의 절대적 형태로서의 부호와 같습니다. 그것은 상징적 의미에서 백인 관광객이 소지하던 사진기와는 정반대되는 물품이며,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해독제나 다름이 없습니다.

 

셋째로 황금 구슬은 고대 로마인들에게는 성인(成人)임을 증명하는 금인칙서 (金印勅書, bulla aurea)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어른이 되기 위한 과정을 마치면 습득할 수 있는 물품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하면 이드리스의 여행은 어른이 되어가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유년의 순진무구함과 결별하고, 동정(童貞)을 상실한다는 것도 이러한 여정을 암시해줍니다. 가령 주인공은 마르세유에 도착한 다음에 우연히 홍등가에 머물다가, 안타깝게도 소중한 황금 구슬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이는 자신이 그림과 무관한 유년 시절의 천진난만함과 결별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5. 이드리스는 프랑스로 향하는 과정에서 고향과 정면으로 대립하는 새로운 상과 마주하게 됩니다. 사하라 사막 가장자리의 도시, “베니 아베 Béni-Abbès”의 어느 박물관에서 어떤 신비로운 거울 하나를 오랫동안 관망합니다. 진열장 위에는 유리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이드리스가 유년을 보낸 오아시스의 친숙한 생활 공간이 마치 파노라마 영화처럼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이드리스는 알제리 북부도시인 베샤르에서 어느 사진관을 찾아갑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곳의 사진사에게 부탁하여 두 장의 합성 사진을 제작하게 합니다. 그것은 사막의 풍경 그리고 파리의 밤 풍경을 배경으로 하여 거기다 자신의 위풍당당한 모습를 합성시키는 몽타주 작업이었습니다.

 

지중해를 건너기 전에 이드리스는 알제리 항구 도시 오란Oran에서 그곳 주민인 여자와 안면을 익히게 됩니다. 그미는 라라 라미레즈라는 이름의 나이 든 여성이었는데, 주인공에게 입양하겠다면서 함께 살자고 애원합니다. 라라는 주인공이 자신의 죽은 아들과 너무 닮았다고 말하면서, 아들의 묘비로 데려가기까지 하였습니다. 프랑스로 입국하려면 여권 하나가 있어야 합니다. 오란에 머물 때 이드리스는 라라 라미레스의 아들 여권을 몰래 훔칩니다. 뒤이어 자동촬영기에서 여권용 사진을 찍어서, 사진을 라라 라미레스의 아들 여권에다 붙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