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6. 마르세유에 도착하는 순간 이드리스는 수많은 광고 사진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은 북아프리카 지역의 여행을 부추기는 광고였습니다. 말하자면 제 3 세계는 프랑스인들에게 착취하는 식민지, 관광 여행의 장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사진의 도시 파리에서 이드리스는 순식간에 여러 직업을 전전합니다. 숙식을 위해서는 생활비가 필요했습니다. 아실 마즈Achille Mage라는 이름의 감독은 그를 삼류 영화의 엑스트라로 고용하는데, 주인공은 야자수 숲이라는 음료수의 광고 모델로 활약합니다.
에치엥 밀랑Étienne Milan이라는 이름의 사진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파리의 “굿 도어Goutte d’Or” 구역에 거주하는데, 흑인 청년을 싸구려 광고를 위한 모델로 활용합니다. 이로써 이드리스는 서구 소비 사회의 도구로 전락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는 광고 속에 가무잡잡한 얼굴을 내밀면서, 희희낙락합니다. 이는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하게 합니다. 이따금 그는 자신의 존재가 하나의 보잘것없는 일회용품으로 까발려지는 데 대해서 크고 작은 고통을 느낍니다. 우연히 이드리스는 아브드 엘 가타리 광고 학교에 발을 들여놓는데, 여기서 마침내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여깁니다.
7. 아브드 엘 가파리는 광교 학교를 세워서 캘리그래피를 가르치는 사내였습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블론드 여왕에 관한 전설”을 들려주면서, 자신의 예술 작업에 대단한 자부심을 드러내었습니다. 모든 그림은 아브드 엘 가파리에 의하면 “온갖 비밀들이 서로 뒤엉킨 부호의 집합체”라고 합니다. 만약 누군가 이러한 암호를 바르게 독해하는 법을 배운다면, 그는 제반 회화 작품을 이해하는 비밀스러운 권능을 획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캘리그래피의 철학적 의미를 이해하는 자는 이른바 서구의 아편이라는 이미지의 망각 속으로 침잠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부호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그래픽을 체계적으로 습득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부호란 서구 사회가 중시하는 피상적 이미지의 배후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계의 가시적 겉모습이 아니라, 세계의 본질적 심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아브드 엘 가파리의 그래픽은 서구 사회의 가시적이고 피상적인 면모 내부로 파고들어, 인간의 다른 감각으로 밝혀낼 수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의 암호를 투시하는 수단이 됩니다.
8. 이드리스는 마지막에 이르러 타벨라바에서 조우한 바 있는 프랑스 여인으로부터 끝내 자신의 사진을 돌려받지 못합니다. 대신에 주인공이 소설의 마지막에 쟁취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자유,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드리스는 우여곡절 끝에 라플라스 벤도메La Place Vendôme에서 건축 노동자로 일하며 살아갑니다. 우연한 기회에 어느 보석상 주인을 알게 됩니다. 보석상 주인은 근동 지방 그리고 북아프리카에서 보석을 입수하는 밀수꾼이었는데, 그가 황금 구슬을 소지한 것을 알아차립니다. 언젠가 이드리스는 마르세유에서 자신의 부적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황금 구슬이 자신이 소유했던 바로 그 부적인지, 아니면 또 다른 귀중품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자신의 수중에 넣고 싶은 욕구가 불현듯 자신의 마음속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낍니다.
황금 구슬을 반드시 되찾아야만 자신의 과거 세계 그리고 이전의 자아를 획득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두운 밤에 이드리시는 보석상을 찾아가서 망치로 보석상의 진열장을 부순 다음에 꿈에 그리던 자신의 보물을 순식간에 탈취합니다.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립니다. 경찰이 서서히 접근하는 동안 이드리시는 멀리 도망치지 않고 가게 앞에서 언젠가 체트 츠바이다가 고향의 결혼식에서 시연한 바 있는 원시적 광란이 댄스를 덩실덩실 추기 시작합니다. 일순간 그미가 부르던 노래의 후렴구가 생각이 납니다. “잠자리는 잠자리, 죽음의 계략을 헛되게 하고, 글자는 귀뚜라미의 움직임, 삶의 비밀스런 면사포를 걷어내네. La libellule est une libellule. Elle détruit la ruse de la mort. Le personnage est le mouvement d'un grillon et révèle le secret de la vie.”
9. 투르니에는 소설을 통해서 오래전의 창작 계획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그것은 차제에 철학적 소설을 집필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투르니에에 의하면 서구의 사람들은 충만한 삶을 보람차게 살아가는 게 아니라. 어떤 구도, 이를테면 이미지에 갇힌 채 허송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지는 망각의 아편과 같습니다. 이미지에 집착하는 것은 미적 황홀 속에 빠짐으로써 자의식을 상실하는 태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이미지에 의존하는 삶은 그 자체 허무맹랑한 삶입니다. 왜냐면 이미지는 인간의 사고를 교묘하게 은폐하며, 인간의 비판 의식을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TV는 언제나 피상적 이미지만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수많은 광고는 피상적 아름다움을 시청자의 마음속에 입력하기 때문입니다. 바보상자는 수많은 이미지로써 인간의 의식을 둔감하게 만듭니다. 외적으로 아름다운 이미지는 여성의 심리를 더욱 자극합니다. 오늘날 여성은 성형 수술을 통해 자신의 미모를 더욱더 아름답게 만들려고 애를 씁니다. 피부가 망가져도 일부 여성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형에 집착합니다. 이미지에 갇혀 살아가는 우리는 투르니에에 의하면 삶의 본질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황금 구슬은 이미지 없는 상징물입니다. 그것은 서구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자신의 영혼을 오롯이 몸과 마음속에 지켜내려는 이슬람 사람들의 부적과 같습니다.
10. 미셸 투르니에는 서구 사회가 서서히 무엇을 상실해나가는가를 비판적으로 서술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서구 사회와 제삼 세계 사이에는 가시적이고 피상적인 이미지라는 기준에 의해서 이분법적으로 단순히 대비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동방의 세계 내지는 북아프리카는 사진과 이미지를 혐오하는 오아시스라면, 프랑스 사회는 온갖 광고와 사진으로 넘실거리는, 물질 만능주의를 드러낸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서구 사회와 아프리카 이슬람 사회 사이의 대비만 강조한다면, 이는 제삼 세계 (아시아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등)의 고유한 문화를 도외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각가가 프랑스 사회 내의 이슬람 문화의 수용에 관한 문제 그리고 프랑스 외국인 노동자의 뿌리 없는 비참한 삶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하자에도 불구하고 『황금 구슬』은 북아프리카의 이질적 문화를 프랑스 사회와 복합적으로 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투르니에의 소설적 구상에서 미하일 바흐친의 서사 구도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품 "황금 구슬"은 이세욱의 번역으로 2007년 문학 동네에서 간행되었습니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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