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6. 장과 폴 사이에 나타난 갈등: 뒤이어 장과 폴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장과 폴은 서로 갈등을 빚게 되는데, 이는 장의 태도에 기인합니다. 어느 날 장은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과 하룻밤 정사를 치른 다음에, 그것도 모자라 파리에서 소피라는 젊은 처녀를 사귀게 됩니다. 이때 장은 그미와 이탈리아에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대놓고 선언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폴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만듭니다. 장이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면서 폴과의 관계를 근절하려는 데 비해, 폴은 장과의 애틋한 사랑의 관계를 시종일관 고수하려고 합니다.
어느 날 장은 혼자서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폴은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아차리고 그의 뒤를 추적합니다. 사실인즉 폴은 장에 대한 사랑의 감정 외에도,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반쪽 형제를 지켜주고 보호해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 장은 폴이 자신에게 과도하게 집착한다고 믿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그의 추적으로부터 멀리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소피와 함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로 밀월여행을 떠납니다. 폴은 다시 두 사람의 뒤를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장의 도피와 폴의 추적은 이런 식으로 끝없이 이어집니다. 장의 오랜 오디세이아는 공교롭게도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이 건설될 시점에 종언을 고하게 됩니다. 장이 서베를린에 머물 때, 폴은 동베를린에 체류하고 있었습니다. 동독은 젊은 노동력이 해외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불과 며칠 사이에 거대한 장벽을 건설했던 것입니다. 이는 1961년 8월 16일부터 8월 25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때 폴은 본의 아니게 동베를린에 갇히게 된 것이었습니다.
7. 폴은 사고로 팔과 다리를 잃게 되다. 폴은 베를린 장벽과 맞닿은 건물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 장이 머무는 서베를린으로 건너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소문 끝에 그는 지하 통로를 통해서 시 경계선을 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때 상층의 건물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합니다. 폴은 안타깝게도 건물의 잔해에 파묻히게 됩니다. 폴은 구조 직후에 다행히 목숨은 부지했으나, 중상을 입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는 왼쪽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수술을 받게 됩니다.
폴의 사지가 절단되었다는 사실은 작품 주제를 고려할 때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폴의 존재는 팔다리 절단으로 인하여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인 장과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완전히 끊겨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삶에서 두 사람은 영혼의 차원에서 일심동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폴은 장애인이 된 다음에 비로소 두 형제가 영원한 타자라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이 종결됩니다. 마치 로빈슨 크루소가 혼혈인인 방드르디 (프라이데이) 존재로부터 태양의 따뜻한 자양을 얻게 되듯이, 휠체어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파울은 처음으로 조우하는 고독한 처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려고 합니다.
8. 성령의 바람: 투르니에의 작품 “쌍둥이 행성Les Météores”이라는 제목은 그 자체 의미심장함니다. 두 형제의 진정한 사랑은 미셸 투르니에의 추론에 의하면 성적인 본능 그리고 암수로 분할된 불충분한 동물적 속성을 극복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는 이성애가 아니라, 동성애의 방식,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일란성 쌍둥이의 “신비적 합일unio mystica”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투르니에는 이러한 가능성을 추적하면서 “성령의 바람Le vent paraclet”에 대해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습니다. 이는 기독교 사상의 관점에서 이해됩니다.
예컨대 역사적 예수는 인간의 마음속에 성령이 자리하도록 도움을 주고 이를 준비하게 하는 과업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과업이 끝나게 되자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떠났고, 세상에는 바람만이 남게 됩니다. 그렇지만 바람 속에는 성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성령의 바람은 차제에는 세상을 강림의 축제로 변화시키게 작용하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령은 신앙의 특징 외에도 어떤 기상학적 특징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성령은 그 자체 바람이지만, 심리적으로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불어오는 폭풍이고 호흡이며, 숨결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성령의 바람은 쌍둥이 행성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기리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유동하게 합니다.
9. 쌍둥이 사도 도마: 재미있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의 12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도마 사이의 관계입니다. 도마는 아람어에 의하면 “te'oma”, 즉 어원상으로 “쌍둥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토마스 디디무스Thomas Didymus, 역사적 차원에서 예수의 쌍둥이 형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도마는 처음에는 “그리스도의 부활résurrection du christ”에 의혹을 제기하였습니다. (나그함마디에서 발굴된 도마 복음서는 도마가 회의하고 의심하는 자의 면모만을 지니고 있다는 통상적인 편견을 허물고 있습니다.)
도마에게 중요한 것은 예수의 시신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예수의 정신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살아남은 유대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다석 류영모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리스도의 “몸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얼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분명하게 제시한 사도가 바로 도마였습니다. 도마는 진실로 그리스도의 성스러운 영혼이 지상에 뿌리내려 확장될 수 있다고 믿은 사도 가운데 한 분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투르니에가 작품 『쌍둥이 행성』의 초고에서 알렉상드르라는 인물 대신에 토마스 쿠세크라는 인물을 등장시킨 것은 결코 우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스러운 영혼은 작가에 의하면 신앙의 차원에서만 이해되는 게 아니라, 성령의 바람이 영혼에서 다른 영혼으로 얼마든지 이어지고 확장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 불의 정신분석, 혹은 만물은 흐른다: 미셸 투르니에는 “성령의 바람Le vent paraclet”을 자신의 초고에서 소설의 제목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중에 1979년 자신의 산문 모음집을 똑같이 “성령의 바람”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에세이 모음집에서 작가는 프랑스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의 문헌,『불의 정신분석 La psychoanalyse du feu』(1938)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자신의 유년과 독일 체류의 경험 그리고 창작에 관한 여러 가지 모티프 등이 차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오랫동안 성령을 맞이하고, 그를 성스러운 영혼에 대한 믿음을 이행하는 존재로 이해한 게 틀림없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인간 영혼은 누구든 간에 어떤 사랑의 자극을 받아서, 유동하고 꿈틀거리는 존재입니다. 성령의 이러한 바람 내지는 공기의 흐름이야말로 인간과 사물의 모든 변화를 시간상으로 달성하게 하는 모티프라고 작가는 처음부터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 과정을 거쳐서 바람으로 작용하는 무엇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바슐라르는 바람이 변화와 이전을 촉구하는 매개체라고 철학적으로 해석한 바 있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흐른다.πάντα ῥεϊ”라는 개념의 출발점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불 그리고 물은 -파르메니데스가 설정한 바위와 암석과는 달리-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얼마든지 생성과 사멸을 반복하는 기본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걔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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