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X, 오늘은 조르주 바타이유 (Georges Bataille, 1897 - 1962)의 철학 논문 『에로티즘 (L’Érotisme)』에 관해서 말씀드릴까 합니다. 이 작품은 1957년에 간행되었습니다. 바타이유는 40년대에서 50년대에 걸쳐 『태양의 항문 L’anus solaire』(1926),『C. 수도원장』 (1950),『하늘의 푸름 (Le Bleu du ciel)』 (1957) 등과 같은 일련의 에로틱 소설을 집필하여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상기한 작품이 포르노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나름대로의 입장을 개진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예술론을 정립시키기 위해서 바타이유는 본서를 집필하게 되었습니다.
제 1장 “금기와 금기의 일탈”에서 바타이유는 에로틱에 관한 자신의 고유한 이론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제 2장 “에로틱에 관한 다양한 연구”는 지금까지 발표한 논문 그리고 강연문들을 토대로 다른 작가들의 성에 관한 입장에 대한 분석의 글이지요. 가령 마르퀴 드 사드 (Marquis de Sade), 피에르 안젤리크 (Pierre Angélique),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C. Levi-Strauss), 킨제이 (A. C. Kinsey) 등에 관한 분석이 그것들입니다. 특히 바타이유는 지금까지 학자들이 에로티즘을 제대로 천착하지 못했다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학문 행위는 인간의 전체적 삶을 세부적으로 구명하지 못하고 삶의 일부분에 해당하는 특수한 분야에 국한되어 전개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로티즘의 영역은 학문의 영역에서 도외시되었다고 합니다.
조르주 바타이유 (Georges Bataille, 1897 - 1962)
보다 세밀하게 살펴보기로 합시다. 바타이유는 논문 “킨제이, 하부세계 그리고 노동”에서 미국의 성 연구가 킨제이의 성 연구를 집중적으로 추적하고 있습니다. 킨제이는 남성의 성적 태도, 여성의 성적 태도 등을 연구하여 여러 가지 통계 자료를 제시한 바 있지요. 킨제이의 연구 결과는 바타이유에 의하면 부분적으로는 만족할만한 연구 성과를 드러내고 있지만, 모든 것을 객관적 데이터로 설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객관적 데이터는 그 자체 삭막하기 이를 데 없으며 인간의 에로스를 제대로 서술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에로스의 영역은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영역, 즉 내적 현실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내적인 사랑의 감정과 에로스의 정서는 일반적 통계 자료 등을 토대로 합당하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 동물은 다른 동물의 경우처럼 종족 유지의 본능만 지니고 있는 게 아니라, 내면에 쾌락 충동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충동은 인간 개체마다 조금씩 다르다고 합니다. 이로써 바타이유는 피상적 유사성으로써 모든 인간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설명하려는 킨제이의 글을 비판합니다.
“모든 인간 존재는 다른 인간 존재들과 다르다. 그의 출생, 죽음, 삶의 결과 등은 다른 사람에게는 하나의 관심사일지 모르지만, 개별적 인간은 제각기 자신의 삶에 직접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그러니까 태어나는 사람은 한 사람이며, 죽는 사람도 한 사람인 것이다. 두 개별적 존재 사이에는 하나의 심연이 존재하며, 불연속적 특성이 그들을 서로 구분하게 한다.”
인간은 여타의 동물과는 다릅니다. 동물들은 오로지 정해진 발정기의 시기에 욕망을 느끼고 짝짓기 하지만, 인간 동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성적 욕구는 불연속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하나의 특성으로 규합될 수 없는 욕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어떤 고립된 상황을 박차고 나가기를 애타게 갈망합니다. “우리는 모두 잃어버린 영속성을 동경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연히 개인적으로 고독한 상태, 일시적 개인성에 감금된 상태를 몹시 견디기 어렵다고 여긴다”
바타이유는 “연속성”의 개념을 어떤 결실을 위한 진행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친애하는 X, 가령 생식과 수정의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를테면 정자와 난자는 제각기 비연속적으로 활동합니다. 그럼에도 생식의 순간 연속성의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이때 그것들이 때로는 죽음을 맞이하는 까닭은 서로의 만남이 불연속적으로 일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호 소통을 위한 욕구의 기간이 일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에로틱 역시 이러한 연속성을 추구하는 노력에 의해서 정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죽음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인간의 에로틱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구분된 개체가 만나려는 욕구와 관련됩니다. 남성과 여성은 육체적으로 하나가 되려고 갈망합니다. 이는 어떤 동일성을 추구하려는 갈망이지요. 그것은 궁극적으로 어떤 직접적 세계를 넘어서는 종교적인 동일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종교적 특성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타이유는 육체의 에로스, 심장의 에로스 등을 구분합니다. 에로스의 모든 형태들은 바타이유에 의하면 성스러운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에로틱은 바타이유에 의하면 노동의 발전 과정 그리고 종교의 역사적 발전과정과 관련된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X, 그렇다면 노동의 발전과정과 종교의 역사는 어떠한 관련 하에서 이해될 수 있을까요? 바타이유는 이를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구석기시대의 “기술적 인간 (Homo faber)”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구석기 시대에 인간의 노동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도구를 발명하게 된 것입니다. 원시인은 자신의 삶을 보존하기 위하여 도구를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효용성을 중시하였습니다.
효용성을 고려하는 인간에게 죽음 그리고 섹스는 쓸모 있는 노동과는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음과 섹스는 무질서에 따르기 때문에 질서를 존중해야 하는 노동과는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죽음과 섹스를 노동의 세계에서 완전히 추방하게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도입된 것이 이른바 금기 사항이었습니다. 일을 열심히 하여 재화를 창출해야 하며, 성을 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하나의 강령이었습니다. 성 능력은 자신의 재화 창출의 능력과 반비례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바타이유는 인간의 심리적인 방랑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인간은 “제각기 다른 세계에 속하며 살아간다. 그가 스스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인간은 삶 속에서 갈팡질팡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기서 바타이유의 핵심적 카테고리인 일탈행위인 “파계 Transgressio”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질서는 금기 사항을 분명히 규정합니다. 인간은 주어진 공동체에서 질서를 지키면서 살아가기 위해서 해서는 안 될 일을 미리 설정합니다. 이러한 금기 사항은 바로 죽음 그리고 섹스 등과 같은 폭력성으로 규정됩니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은 불연속성으로서의 질서에 해당하는 카테고리이지요. 따라서 인간은 바타이유에 의하면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 속에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인간은 오로지 질서로 뿌리내리고 있는 주어진 금기를 떨쳐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스스로 추구하는 내적인 연속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주어진 계율의 파기로써 가능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금기는 두 가지의 내적 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죄책감 그리고 고통이라면, 다른 하나는 묘한 쾌감의 반응입니다. 금기는 쾌락을 야기하지만, 동시에 금지를 강요합니다. (정항균: 243). 에로티즘의 본질은 바타이유에 의하면 성적 쾌락과 금기라는 풀 수 없는 엉킴에서 비롯합니다. 쾌락의 현현 없이는 금기가 있을 수 없고, 금기의 느낌 없이는 쾌락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 삶의 시간은 노동의 시간과 성스러운 시간 (다시 말해서 자신의 에로스를 실천할 수 있는 시간)으로 양분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스러운 시간”은 성적 방종의 시간을 가리킬 뿐 아니라, 희생의 시간 내지 살육 금지의 파기를 가리킵니다. 모든 금지의 대상은 바타이유에 의하면 성스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바타이유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즉 “인간은 본질적으로 제반 종교적 금지 사항을 지키지 말고, 어겨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X, 바타이유의 주장에는 어떤 극단적인 태도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노동 행위를 “싫지만, 삶에 필수적인 무엇”으로, 에로스를 “좋지만, 무한정으로 억압당하는 무엇”으로 규정하는 태도입니다. 바타이유는 노동과 향유가 동시에 공존할 수 없는 무엇으로 처음부터 단정하고 있습니다. 아주 드문 사례이기는 하지만, 도자기 굽는 어느 노동자는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순간 지고의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 노동자에게는 바타이유의 이론은 전혀 들어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내가 당신에게 바타이유를 거론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금기를 투시하고, 이를 극복하며, 일탈해야 한다.”는 혁명적 저항의 정신입니다.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에 어떤 사악한 금기 사항이 주어져 있다면, 우리는 이를 발견하고, 일탈 내지는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간통죄와 같은 형법 규정을 생각해 보세요.
참고 문헌
- 정항균: 메두사의 저주, 문학동네 2014.
- 바따이유, 조르주: 에로티즘, 조한경 옮김, 민음사 1996.
- Batailles, Georges: Das obzöne Werk, Reinbek bei Hamburg 1977.
- Bateilles, Georges: Die Erotik. Matthes & Seitz, München 1994..
- Surya, Michel: Georges Bataille: An Intellectual Biography. London / New York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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