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70

박설호: (4) '시 작품은 상처 치유의 연고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7. 나오는 말씀 凸: 결론을 요약해주시겠습니까?凹: 두 가지만 말씀드리지요. 첫째로 앞에서 거론한 작품들의 배경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이른바 “남성중심의 사회”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인간의 오욕칠정은 남녀노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존재합니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지금까지 가부장주의로 강화된 관습과 도덕 때문에 이를 표현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었습니다.凸: 가부장주의가 문제로군요.凹: 네, 사랑의 삶에서 여성이 차별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유부남이 바람을 피우면, 아내에게 죄를 짓지만, 유부녀가 바람을 피우면, 남편과 자식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오늘날에도 많아요. 이러한 생각 자체에 여성 차별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학은 역설적으로 어떤 ..

21 독일시 2024.09.07

박설호: (3) '시 작품은 상처 치유의 연고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5. 마샤 칼레코의 「대도시에서의 사랑」 凸: 이어지는 작품은 「대도시에서의 사랑」입니다. 마샤 칼레코 (Mascha Kaléko, 1907 - 1975)는 생소한 시인인데요?凹: 네. 그미는 세인의 뇌리에서 멀어진 시인이지요. 칼레코는 1907년 아우슈비츠에서 가까운 크르차노프에서 유대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미의 가족들은 1914년에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하였으며, 1918년부터 거기서 살았습니다. 재정적 이유에서 대학을 다니지 못한 칼레코는 낮에는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며, 밤에 글을 썼다고 합니다. 1933년 시집 『시로 쓴 속기 노트 Lyrisches Stenogrammheft』로 잠깐 알려졌지만, 그미는 히틀러의 탄압으로 독일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칼레코는 1938년 미국으..

21 독일시 2024.09.07

박설호: (2) '시 작품은 상처 치유의 연고다'

3. 시빌라 슈바르츠의 「사랑은 신들조차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요」 凸: 자료를 뒤져보니 시빌라 슈바르츠 (Sibylla Schwarz, 1621 – 1638)는 암울한 바로크 시대에 살다가, 이른 나이에 이질에 걸려 세상을 하직했다고 합니다. 凹: 시인의 삶에 관해 약술해 주시지요.凸: 네. 시빌라 슈바르츠는 1621년 포메른의 항구도시, 그라이프스발트의 시장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포메른은 동프로이센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근대 식민지 쟁탈의 역사에서 피로 얼룩진 곳입니다. 슈바르츠는 어린 시절에는 유복하게 지냈으나, 1627년부터 30년 전쟁으로 심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일찍이 어머니를 잃은 뒤에 그미는 이듬해인 1631년, 약 10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품들은 사랑, 우정..

21 독일시 2024.09.07

박설호: (1) '시 작품은 상처 치유의 연고다.'

아래의 글은 창작 21, 2024년 여름호에 실린 글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1. 들어가는 말씀 凸: 반갑습니다. 선생님이 고르신 시들은 중세, 바로크 시대, 19세기 초, 20세기 초에 발표된 것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시인들의 연애관이 약간의 시대적 편차를 보여줍니다. 凹:: 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직업과 결부된 계층 차이는 천부적인 것으로 확정되어 있었지만, 남녀 차별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존재는 중세 이후로 천시되었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사고하는 주체”가 아니라, “아름다운 객체”로 취급되었습니다. 凸:: 그것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요?凹:: 성을 억압하는 기독교 세계관의 영향이 큽니다. 죄악이 “바빌론의 창녀”로 상징화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교의 ..

21 독일시 2024.09.07

클라분트의 '사랑의 노래'

클라분트 (1890 - 1928)는 독일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활동했는데, 일찍 폐결핵으로 요절하였다. 그의 본명은 알프레트 한시케 (Alfred Hanschke)이다. 클라분트는 특히 아시아 문학을 수용하여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의 극작품 「분필 원 (Der Kreidekreis)」은 중국의 전설에 바탕을 둔 것인데, 브레히트의 「코카사스의 분필 원」이 집필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  사랑의 노래 클라분트 멋지게 원 그렸던 너의 입,나를 스쳐 지났던 너의 미소,나를 포옹했던 너의 눈빛,나를 따뜻하게 하던 너의 앞섶,나를 휘감았던 너의 팔,내 주위에서 울려 퍼졌던 너의 말,내가 안으로 자맥질하던 너의 머리칼,나를 헉헉 숨쉬게 했던 너의 호흡,너의 심장, 거친 망아지,아무 숨김이 없는 영혼,내게 속해,..

21 독일시 2024.08.31

귄터 아이히: 꿈 IV

거리에는 이정표들이 있다,쉽게 인식할 수 있는 여러 강줄기높은 점 가장자리에는 전망 기구들호수들을 푸르게 그려놓은 여러 지도숲들은 초록으로.- 세상에서 길 찾기는 쉬운 편이다. 그러나 내 곁을 지나가는 그대여, 그대의마음속 풍경은 어찌 그리 감추어져 있는가!빽빽한 숲, 감추어진 심연에 대한두려움이 이따금 엄습한다, 안개 속에서 더듬거리며.난 알아, 누가 네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그대 말은 메아리 쳐서 우릴 혼란스럽게 한다는 걸.- 목표를 지니지 않은 도로,출구 없는 어느 영역, 몰락한 이정표. 해마다 새로운 사실들이 무언가를 감추고,어느 공터는, 사랑의 흥미로운 눈에는 너무 많이 자라나,점점 빽빽해지는 잎에 의해 고독으로 덮여 있다. Träume (IV) Es gibt Wegweise..

21 독일시 2024.07.11

서로박: 야콥 반 호디스의 시

유대인 시인 야콥 반 호디스 (Jakob van Hoddis, 1887 - 1942)는 독문학사에서 [당대의 시인이었던 슈테판 게오르게, 게호르크 하임, 게오르크 트라클 등에 가려]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그의 시적 특징은 초기 표현주의에 입각한 격정, 절망과 좌절 그리고 극심한 우울 속에 담긴 자아 상실 의식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사항은 유태 여류 시인인 엘제 라스커-쉴러를 몹시 닮은 것 같다. 시 “세계의 종말”은 야콥 반 호디스의 대표작이며, 나아가 초기 표현주의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시민의 뾰족한 머리에서 모자가 날아가고, 공중에서는 온통 마치 외침 같은 게 울려퍼진다, 기와들이 무너져 내려, 두개로 쪼개지고, 해안에는 -우리는 읽는다- 밀물이 솟구친다. 폭풍..

21 독일시 2024.04.20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시, '죽음', '사랑'

죽음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아, 죽음의 방은 너무나 어두컴컴하네 그가 움직이면 슬픈 소리가 나. 이제 그 시간이 다가오면 그는 무거운 망치를 들어올리네 Der Tod Ach, es ist so dunkel in des Todes Kammer, Tönt so traurig, wenn er sich bewegt Und nun aufhebt seinen schweren Hammer Und die Stunde schlägt. 사랑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 사랑은 아무것도 개의치 않아 문도, 빗장도 몰라 모든 것을 뚫고 들어오지. 사랑은 시작 모르게 오랫동안 날개를 펄럭였어 영원히 날개를 퍽럭이지 Die Liebe Die Liebe hemmet nichts; sie kennt nicht Tür noch Riegel,..

21 독일시 2023.12.18

로만 리터의 시 "우체국에서 낯선 사람 끌어안기"

우리는 차타고 돌아간다, 한 두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휴게소에서 커피 마시고 테이블 가장자리의 맥주 깔개를 높이 던졌다가 공중에서 붙잡았다. 나중에 운전은 교대될 것이다. 밤이다, 약간 비가 내리나, 자동차 안은 따뜻하다. 운행 중에 들리는 바람의 파열음, 계속 둔탁하게 들리는 바퀴소리 완충기 장치의 무게는 피곤하게 만드나, 잠이 오지는 않는다. 나는 자신의 가죽 속의 짐승처럼 느낀다. 어떤 동굴, 어떠한 물기도 스며들지 않는 가죽 속의 어느 동물, 두렵지 않다. 내 어깨에 기대고 있는 어느 여자 꼼짝하지 않고, 커브를 돌 때 그녀는 무겁기도 가볍기도 하다. 이러한 애무를 위해서 손을 건드릴 필요도 없다. 신속하게 지나가는 불빛 서서히 스쳐가는 붉은 빛들, 그건 다른 차들이다. 통상적인 위험에 해당한다..

21 독일시 2023.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