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박설호: (3) '시 작품은 상처 치유의 연고다'

필자 (匹子) 2024. 9. 7. 10:23

(앞에서 계속됩니다.)

 

5. 마샤 칼레코의 「대도시에서의 사랑」

 

凸: 이어지는 작품은 「대도시에서의 사랑」입니다. 마샤 칼레코 (Mascha Kaléko, 1907 - 1975)는 생소한 시인인데요?

凹: 네. 그미는 세인의 뇌리에서 멀어진 시인이지요. 칼레코는 1907년 아우슈비츠에서 가까운 크르차노프에서 유대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미의 가족들은 1914년에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하였으며, 1918년부터 거기서 살았습니다. 재정적 이유에서 대학을 다니지 못한 칼레코는 낮에는 회사에서 비서로 일하며, 밤에 글을 썼다고 합니다. 1933년 시집 『시로 쓴 속기 노트 Lyrisches Stenogrammheft』로 잠깐 알려졌지만, 그미는 히틀러의 탄압으로 독일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칼레코는 1938년 미국으로 건너갔고, 1966년에는 다시 이스라엘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대충 안면을 익히고

언젠가 때가 오면 랑데부에 자신을 던진다.

정확히 명명될 수 없는 어떤 무엇이 -

더 이상 서로 헤어지지 않게 유혹한다.

딸기 아이스크림 두 번째 먹을 때부터 반말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잿빛 나날 속에서

예견한다, 즐거운 저녁 시간 알리는 불빛을.

그들은 일상의 걱정과 괴로움을 나누고,

월급 외 수당의 즐거움을 서로 털어놓는데,

그 외의 말들은 그냥 전화로 해결한다.

 

그들은 대도시 혼잡한 번화가에서 만난다.

집에서는 불가능하다. 세 들어 사니까.

- 소음과 자동차 소리의 혼란 속에서,

- 수다쟁이 아낙네들의 손뼉 소리 지나치며

둘이서 조용히 걷는다, 손잡지도 않고.

 

그러다가 조용한 벤치에 앉아 입을 맞추고,

- 아니면 소형 보트 안에서 서로 애무한다.

사랑 나누기는 일요일로 제한되어야 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누가 생각할까?

그들은 구체적으로 말하고 드물게 얼굴 붉힌다.

 

그들은 장미도 수선화도 선물하지 않고,

집으로 심부름꾼을 보내지도 않는다.

주말여행, 입맞춤이 싫증 나게 되면,

그들은 제국 우체국의 속기 전보를 통해

“끝이야” 한마디로 알릴 수 있으니까.

 

凸: 가난한 자의 슬픔이 꾸밈없이 묘사되는군요. 시편은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지만, “신 즉물주의Neue Sachlichkeit”의 측면에서 어떤 체념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凹: 동의합니다. 시는 대도시에서 살아가고 있는 직장 여종업원들의 사랑을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1920년대의 베를린이 틀림없습니다. 예컨대 “제국 우체국”이라는 시어가 이를 증명해주고 있어요.

 

凸: 어째서 연인들은 자신의 거주지라든가 커피숍에서 만나지 않았을까요?

凹: 저녁 무렵에 “대도시 혼잡한 번화가에서” 만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커피 한 잔의 가격은 25 – 30 페니히 정도였으므로, 단순 직장인들에게는 비싼 편이었다고 합니다. 차라리 길가에 파는 아이스크림을 10페니히 주고 마시는 게 부담이 적었습니다. 연인들이 “아이스크림 두 번째 먹을 때부터 반말”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집으로 애인을 데리고 갈 수도 없었습니다. 세 들어 사는 노동자들은 월세 계약서에 “애인을 데려올 수 없다.”는 규정에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공원 벤치 아니면, 소형 보트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경제적 궁핍함 때문에 상대방에게 미래를 약속할 수도 없었습니다.

 

凸: (...)

凹: 일요일 오후 공원에서의 어설픈 입맞춤 그리고 부끄러운 애무 - 그것이 20년대 가난한 젊은이들의 애정 표현의 전부였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에 대한 그들의 갈망은 차단될 수 없었지요. 시민 공원이나 호수에서 머물지만, 그들의 낭만은 꿈속에서 찬란하게 만개하고 있었습니다.

凸: 마지막 연은 놀랍습니다. 여성이 자발적으로 헤어지자고 내뱉지 않습니까?

 

凹: 그렇습니다. 앞에서 다룬 귄더로데 시인에겐 사랑의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 대도시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했지만 파트너의 선택 및 파기의 권한을 획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경제적 자립으로 인하여, 여성의 지위가 약간 향상된 탓입니다. 여성들은 회사와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 밖에 대도시라는 익명적 분위기가 자유연애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지요. 19세기 말만 하더라도 남자가 구애하는 경우는 당연하게 받아들였지만, 여성이 적극적으로 구애하는 경우는 드물었으며, 어색하게 비쳤습니다.

凸: 19세기 말 프로이센에서 남자와 남자 사이의 “결투Duell”라는 제도가 철폐되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합니다. 결투는 남자의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는 수단으로 합법적으로 실행되었는데, 여성 문제로 인한 갈등이 주류를 태반이었습니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은 한낱 “사랑받는 객체”로 취급받았으니까요.

 

6. 엘제 라스커-쉴러의 「파라오와 요셉」

 

凸: 20세기 초에 여성들은 약간씩 자유를 쟁취하지 않았습니까?

凹: 그렇지요. 1920년대에 이르러 일부 여성은 자유롭게 연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제 라스커-쉴러 (Else Lasker-Schüler, 1869 – 1945)는 자유분방한 보헤미안의 대표적 주자였지요?

凸: 라스커쉴러는 1899년 작가, 페터 힐레 (Peter Hille, 1854 - 1904)를 알게 되었으며, 그의 도움으로 문단에 등장하였습니다. 표현주의 청년 양식에 속하는 시집 『지옥의 강』이 출간되었습니다. 1912년 발덴과 이혼한 뒤 라스커-쉴러는 극도의 궁핍함에 시달렸습니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자, 팔레스티나로 떠났습니다. 1943년 마지막 시집 『나의 푸른 피아노』가 예루살렘에서 간행되었습니다. 작품 「나의 푸른 피아노」를 살펴보기로 하지요.

 

파라오는 그의 활짝 핀 여자들을 쫓아냈지요,

그들은 아몬의 정원처럼 향기 품어요.

 

그의 왕 머리통은 내 어깨 위에 쉬고

여기서 곡식 냄새가 흘러나와요.

 

파라오는 금으로 이루어졌어요.

그의 눈은 마치 색깔 변하는

나일 강의 파도처럼 오고 갑니다.

 

그의 심장은 내 피 속에 놓여 있어요,

열 마리 늑대가 나의 물통으로 향했어요.

 

파라오는 언제나 나를

구덩이에 쳐 넣은

형제들을 생각합니다.

 

기둥들은 잠 속에서 그의 팔이 되지요,

그리고 위협을 가해요!

 

그러나 그의 꿈꾸는 듯한 심장은

나의 토대 위에서 졸졸 흐릅니다.

 

그래서 나의 입술은 거대한

달콤함을 시로 노래해요.

우리 아침의 밀 안에서.

 

凸: 구약성서의 「창세기」의 내용이 언급되고 있군요.

凹: 네, 토마스 만 (1875 - 1955)은 방대한 소설, 『요셉과 그 형제들 Joseph und seine Brüder』을 집필한 바 있습니다.

凸: 라스커-쉴러의 시는 직접 요셉을 다루지 않는 것 같은데요?

凹: 이집트의 풍년과 흉년은 시인의 관심사가 아니지요. 작품 속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파라오와 요셉 사이의 관계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남자이지만, 요셉은 여자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는 가령 바빌로니아와 페니키아의 신 타무즈(Tammuz)의 면모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凸: 요셉은 자신의 막내 동생에게 “타무즈는 처음에는 처녀였는데, 죽음의 힘을 지닌 청년으로 변신하였다.”라고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지요.

凹: 일단 시를 살펴봅시다. 요셉은 시인 자신과 동일시되고 있습니다. 제2연, “그의 왕 머리통은 내 어깨 위에 쉬고/ 여기서 곡식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곡식 냄새는 성서에 나오는 이삭과 벼에 관한 꿈입니다. 그것은 풍요로움을 상징합니다.

凸: 경제적 의미인가요?

凹: 아닙니다. 요셉은 파라오를 사랑함으로써 어떤 사랑의 결실을 얻으려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금으로 이루어”진 태양입니다. 그의 도움을 통해서 나일 강의 파도는 마른 곡식을 덮쳐서 그 땅을 비옥한 곡창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비록 “열 마리 늑대”가 요셉을 위협하지만, 요셉은 파라오의 도움으로 모든 역경을 이겨냅니다. 찬란하고 풍요로운 사랑의 삶은 “우리 아침의 밀”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凸: 어떠한 계기에서 시가 집필된 것일까요?

凸: 당시 43세인 라스커-쉴러는 26세의 고트프리트 벤 (Gottfried Benn, 1886 - 1956)을 사모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1912년 베를린에서 처음으로 상봉했습니다. 유대인의 이국적 아름다움을 지닌 중년 시인은 젊은 “신교도, 매부리코에다 표범의 심장”과 날카로운 눈매의 소유자, 벤에게 뜨거운 열정을 감지했습니다. 당시에 벤은 피부비뇨기과의 개업을 앞두고 도발적인 시들을 발표했습니다. 시편들은 『시체 공시소Morgue』라는 시집으로 간행되었지요. 라스커-쉴러는 처음에는 젊은 의사 시인과 유희 삼아 하룻밤의 연인이 되려고 했는데, 나중에는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그미의 열망은 성취되지 않았지만, 탁월한 문학 작품을 남기게 했습니다.

 

凸: 작품의 주제는 여성의 권리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凹: 그렇게 해석할 수 있겠지요, 러시아의 혁명 운동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 (Alexandra Kollontai, 1872 - 1952)는 세상에 세 가지 유형의 사랑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결혼, 매춘 그리고 자유연애가 그것이지요. 이전에는 여성들에게 자유연애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가정주부, 혹은 창녀의 신분으로 파트너와 살을 섞을 수 있었지요. 어쨌든 시는 여성의 내적 욕망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혁신적 특징을 보여줍니다. 사랑의 권리는 여성과 남성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