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박설호: (2) '시 작품은 상처 치유의 연고다'

필자 (匹子) 2024. 9. 7. 10:20

3. 시빌라 슈바르츠의 「사랑은 신들조차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요」

 

凸: 자료를 뒤져보니 시빌라 슈바르츠 (Sibylla Schwarz, 1621 – 1638)는 암울한 바로크 시대에 살다가, 이른 나이에 이질에 걸려 세상을 하직했다고 합니다.

凹: 시인의 삶에 관해 약술해 주시지요.

凸: 네. 시빌라 슈바르츠는 1621년 포메른의 항구도시, 그라이프스발트의 시장의 셋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포메른은 동프로이센에 속하는 지역으로서, 근대 식민지 쟁탈의 역사에서 피로 얼룩진 곳입니다. 슈바르츠는 어린 시절에는 유복하게 지냈으나, 1627년부터 30년 전쟁으로 심한 고초를 겪었습니다. 일찍이 어머니를 잃은 뒤에 그미는 이듬해인 1631년, 약 10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작품들은 사랑, 우정 그리고 죽음 등의 깊은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사랑은 신들 또한 가만두지 않아

모든 걸 극복할 수 있게 해

모든 심장을 동여매기도 하지

눈동자의 명확한 빛을 통해서

심지어 아폴론의 심장조차 찢겨

그의 명석함을 사라지게 하지

화살이 그의 가슴에 꽂혀 있어

그는 어떤 휴식도 찾지 못해

주피터의 심장도 꽁꽁 묶여 있어

헤라클레스는 쓰라리고 달콤한

고통에 의해 극복되고 있어

허나 단순한 인간들의 심장은

이러한 아픈 마음을 과연 어떻게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을까?

 

凹: 「시랑은 신들조차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요」 에는 16세의 처녀의 놀라운 통찰력이 담겨 있군요. 시에는 두 명의 그리스 신, 한 명의 영웅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다프네에 대한 “아폴론”의 사랑입니다. 그러나 다프네는 사랑에 둔감합니다.

凸: 두 사람은 어째서 쫓고 쫓기는 사이가 되었을까요?

凹: 에로스의 농간 때문이지요. 어느 날 아폴론은 에로스를 조롱하는데, 이에 대해 에로스는 심한 모멸감을 느낍니다. 에로스는 아폴론의 가슴에 금 화살을, 아름다운 요정, 다프네의 가슴에 납 화살을 쏨으로써 자신이 받은 치욕을 되갚아 줍니다. 이로써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구애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합니다. 아폴론은 애간장을 태우면서 고통스러워했습니다. 둔감한 다프네는 시종일관 아폴론을 거부합니다. 자신의 기력이 소진되었을 때, 월계수로 변신합니다.

 

凸: 두 번째로 “주피터 (제우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뭍 여성들을 농락하지 않았습니까?

凹: 글쎄요. 제우스는 헤라의 질투심으로 열망하는 여성들을 모조리 차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불가능한 사랑으로 인한 고통은 주피터의 “심장”을 꽁꽁 묶어버립니다. 세 번째 사항은 “헤라클레스”의 죽음과 관계됩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12가지 과업을 성공리에 마친 뒤에, 두 번째 부인, 데이아네이라와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이때 네소스는 성욕을 부추기는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하려 합니다. 이때 헤라클레스는 반인반마의 간계를 알아차리고, 놈을 살해합니다. 그러나 네소스는 죽기 전에 피 묻은 헝겊을 데이아네이라에게 건네주면서, 충고합니다. 만약 그미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좋아하게 되면, 그의 옷에다 헝겊을 붙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헤라클레스가 아내에 대한 지조를 지킨다는 것이었습니다.

凸: 네수스의 속임수가 문제였군요.

 

凹: 그렇습니다, 헤라클레스가 “이올레”라는 여자에게 접근했을 때, 데이아네이라는 네수스의 헝겊을 남편의 옷에 부착합니다. 이때 헤라클레스의 몸에 맹독이 퍼져, 엄청난 고통으로 나뒹굽니다. 그는 산정에서 장작을 피운 뒤에, 화염 속에 뛰어들며 자살합니다. 데이아네이라는 결국 자결하면서 남편의 뒤를 따르지요.

凸: 신의 마음을 뒤엉키게 하는 것이 바로 사랑과 반목, 질투와 보복 등의 감정이군요. 놀라운 것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허나 단순한 인간들의 심장은/ 이러한 아픈 마음을 과연 어떻게/ 완전히 떨쳐버릴 수 있을까?” 불사의 신들도 사랑 앞에서 어쩔 줄 몰라 쩔쩔매는데, 하물며 하찮은 인간이 사랑의 강렬한 심리적 작용으로부터 어찌 벗어날 수 있을까요?

 

凹: 인간은 언젠가는 사멸하는 존재이므로, 죽음은 역설적으로 연정을 더욱 부추기고, 연인들을 더욱 강렬하게 채찍질합니다. 놀라운 것은 슈바르츠가 인간만이 느끼는 사랑의 본질을 예리하게 간파했다는 사실입니다.

凸: 30년 전쟁 당시 가난과 폭정이 전 유럽을 강타했습니다. 유럽 인구의 3분의1이 전쟁과 기아 등으로 그리고 페스트라는 질병으로 죽었지요?

凹: 그렇습니다. 제어할 수 없는 사랑의 열정은 당시에 금기로 여겨지던 그리스 신화를 통해서 적절히 묘사되고 있습니다. 슈바르츠는 사랑을 깊이 체득하기에는 나이가 어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미는 오로지 독서와 상상력으로써 사랑의 본질적 의미를 선험적으로 깨닫고, 이를 문학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4. 카롤리네 귄더로데의 「꿈속의 키스」

 

凸: 카롤리네 귄더로데 (Karoline Günerrode, 1780 – 1806)는 불과 26세의 나이에 자살했지요?

凹: 네. 19세기 유럽에서 여성의 삶 자체가 하나의 핍박이었습니다. 귄더로데는 “티안Tian”이라는 남자 필명을 사용하였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자신의 문학이 폄훼당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凸: 그미는 귀족 신분이었지만, 가난했지요?

 

凹: 그렇습니다. 귄더로데는 세 명의 남자에 의해 차례로 농락당했습니다. 첫째로 자유분방한 시인, 클레멘스 브렌타노 (Clemens Brentano, 1776 - 1842)는 “티안”이 군다의 친구, 카롤리네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연애 유희를 제안했습니다. 1800년에 그는 그미의 “단물을 빨아먹은” 다음에, 부유한 작가, 조피 메로 (Sophie Mereau, 1770 - 1806)와 동거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로 귄더로데는 브렌타노의 친구이자 나중에 프로이센의 법학자로 이름을 떨치게 될 프리드리히 칼 폰 사비니 (Friedrich C. von Savigny, 1779 – 1861)와 사귀게 됩니다. 사비니는 귄더로데와 격렬한 사랑을 나눕니다. 이 무렵 브렌타노의 여동생, 군다는 사비니가 귄더로데의 정인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감언이설로 사비니를 꾀었는데, 사비니는 이에 넘어가서, 몇 달 후에 시인에게 결별을 선언합니다.

 

凸: 사비니는 어째서 귄더로데를 배신했지요?

凹: 가난한 시인보다는 명망 높은 브렌타노 가문과 혼사를 치르는 게 출세에 도움이 된다고 여겼던 것이지요.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사비니는 급진적 혁명에 동조하는 귄더로데를 부담스럽게 여겼습니다. 셋째로 귄더로데는 창작을 통해서 이별의 마음을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우연히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 프리드리히 크로이처 (Friedirch Creuzer, 1771 - 1858)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사하는 마음 때문에 13세 연상인, 스승의 딸과 결혼한 유부남이었습니다. 크로이처와 귄더로데는 고대 문학의 관심사 때문에 자주 만났습니다. 학문적 욕구는 순식간에 불타는 사랑의 격정으로 변합니다. 어느 날 귄더로데가 비밀 연애를 끝내자면서 결혼을 요구했을 때, 크로이처의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인지하였고, 이혼을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심한 크로이처는 귄더로데에게 이별의 편지를 보냅니다. 어느새 소문이 퍼져 주위 사람들에게서 “가정을 파탄 내는 카르멘”이라고 시인에게 손가락질합니다. 그미는 내면을 갉아먹는 극도의 고통 그리고 주위 사람들의 비난으로 인한 굴욕감으로 자학하다가, 1806년 7월 어느 날 단도로 가슴을 찌르고 라인 강 아래로 떨어져 죽습니다.

 

凸: 기막힌 사연이로군요. 그러면 시를 살펴볼까요?

 

어느 키스가 나의 삶의 기운을 불어넣었어요,

가슴속 가장 깊은 애타는 그리움을 달래주었어요.

어둠이여, 다가와, 나를 내밀한 밤 속에 가두세요,

그래서 내 입술이 새로운 희열을 빨아들이도록.

 

그러한 삶은 꿈속으로 그만 가라앉고 말았어요,

그래서 영원한 꿈을 바라보려고 나는 살아요,

다른 모든 기쁨의 광채를 경멸할 수 있어요,

오직 밤이 그렇게 달콤한 위안을 속삭이기에.

 

낮은 사랑의 달콤한 희열을 느끼기엔 부족해요,

뽐내는 낮의 빛이 나를 몹시 아프게 하고,

태양의 열기는 나를 활활 태워버리고 말아요.

 

그러니 지상의 태양빛 앞에서 눈 감으세요!

밤 속에 숨으세요, 밤은 당신의 갈망을 달래주고

레테 강의 서늘한 물길처럼 고통을 치유하니까요.

 

凸: 이 작품은 시인이 1804년 친구, 군다의 결혼식에 불참하면서, 애인, 사비니에게 보낸 것입니다. 일견 센티멘탈한 느낌을 짙게 풍기는데요?

凹: 그러나 반복해서 읽으면, 우리는 어떤 비판적 가시를 추출해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가시는 시적 자아가 낮의 삶보다는 “꿈속의” 삶을 더욱 낫게 여긴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이를테면 “낮”, “지상의 태양 빛” 그리고 “태양의 열기” 등은 추악하고 경멸스러운 대상입니다. 이것들은 전통적 가치만을 준수하는 “고루한 속물homo normalis”들의 향일성(向日性)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시인은 사비니와 같은 속물주의 내지는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려 했는지 모릅니다.

凸: 시적 주제가 시인이 처한 정황에만 국한될 수는 없을 텐데요?

 

凹: 물론이지요. 시인은 상기한 작품에서 낮 대신에 “밤”을 그리고 “지상의 태양 빛” 대신에 “레테 강의 서늘한 물길”을 강조합니다. 물론 시인의 이러한 자세는 얼핏 보면 단순한 죽음 충동 내지는 낭만적 동경으로 파악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다른 관점에서 당시 초기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은밀히 퍼져 나온, 이른바 “소외” 현상과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산업 혁명 이후에 인간 삶의 소외라는 문제점이 드러난 사실을 생각해 보십시오.

 

凸: 그 점은 에른스트 피셔 (Ernst Fischer, 1899 - 1972)의 독일 낭만주의 연구에서 거론된 핵심 사항이 아닌가요?

凹: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19세기 초부터 남성 사회 내의 기능주의와 오성중심주의가 무엇보다도 강화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영혼적인 것”, “감각적인 것” 그리고 “여성적인 것”은 더욱 철저하게 무시되었습니다. 따라서 “꿈속의 키스” 그리고 “내밀한 밤”의 희열은 초기 자본주의 시대에서의 소외 현상을 지적하는 이미지 내지는 분화되지 않은 삶에 관한 대안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