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서로박: 야콥 반 호디스의 시

필자 (匹子) 2024. 4. 20. 16:05

유대인 시인 야콥 반 호디스 (Jakob van Hoddis, 1887 - 1942)는 독문학사에서 [당대의 시인이었던 슈테판 게오르게, 게호르크 하임, 게오르크 트라클 등에 가려]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다. 그의 시적 특징은 초기 표현주의에 입각한 격정, 절망과 좌절 그리고 극심한 우울 속에 담긴 자아 상실 의식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사항은 유태 여류 시인인 엘제 라스커-쉴러를 몹시 닮은 것 같다.

 

시 “세계의 종말”은 야콥 반 호디스의 대표작이며, 나아가 초기 표현주의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시민의 뾰족한 머리에서 모자가 날아가고,

공중에서는 온통 마치 외침 같은 게 울려퍼진다,

기와들이 무너져 내려, 두개로 쪼개지고,

해안에는 -우리는 읽는다- 밀물이 솟구친다.

 

폭풍이 거기 있어, 거친 파도 두터운 제방을

뭉개버리기 위하여 뭍 가에서 솟구치고.

대부분 사람들은 마구 흘리고 어떤 콧물을.

열차들은 삽시간에 모든 다리에서 추락하고.

 

Weltende

Jakob van Hoddis

 

Dem Buerger fliegt vom spitzen Kopf der Hut,

In allen Lueften hallt es wie Geschrei,

Dachdecker stuerzen ab und gehn entzwei

Und an den Kuesten -liest man- steigt die Flut.

 

Der Sturm ist da, die wilden Meere hupfen

An Land, um dicke Daemme zu zerdruecken.

Die meisten Menschen haben einen Schnupfen.

Die Eisenbahnen fallen von den Bruecken.

 

이 시가 집필된 계기는 다음의 두 가지 사건에서 발견될 수 있다. 그 하나는 1908년 시칠리아의 메시나를 강타한 지진이요, 다른 하나는 1910년에 나타난 헨리 살별이다. 이태리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많은 피해가 속출하였는데, 이는 시인에게 하나의 재앙 앞에 나타나는, 일종의 전조 (前兆)로 작용하였다. 또한 사람들은 당시에 헬리 살별을 처음으로 보았는데, 신문에서는 세기말의 나쁜 조짐으로 보도한 바 있다.

 

실제로 이 시는 -나중에 요하네스 베혀가 술회한 대로- 세계대전을 예견하는 그러한 작품이었다. 야콥 반 호디스는 불과 8행으로 이루어진 단시를 통하여 무엇보다도 세기말적인 파국의 분위기 그리고 외부 현실과 개개인의 인식 사이에 도사린 엄청난 간극을 지적하려고 했다. 특히 후자는 4행의 "우리는 읽는다 (liest man)"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당시 베를린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대중 일간지가 사상 초유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밖에 시 "흥!", "밤 (夜)" "전복", "기적의 전설" 등과 같은 시는 당시의 포만한 시민들의 경박함을 노골적으로 야유하고 있다. 그들은 프로이센의 부흥과 함께 부를 어느 정도 축적하게 되고, 온 세상에서 끌어모은 장신구 등으로 집안을 치장했다. 또한 "이태리" 연작시에서 시인은 교양 시민으로 자처하는 속물들이 멋모르고 얼마나 괴테를 애호하는가를 비아냥거리고 있다. "야콥 반 호디스의 괴테 패러디"에 관한 연구" - 이러한 테마도 생각해 볼만하다.

 

야콥 반 호디스의 시들은 연대기적으로 체계화되기 무척 어렵다. 왜냐면 시인은 발표의 어려움을 겪어 자신의 시들을 오랫동안 서랍 속에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초기시에서는 그다지 독창성이 발견되지 않는다. 가령 신화와 전설의 소재, 고전적 문체 혹은 외설적인 경구 등은 모방이나 도전 그 이상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1910년에서 1914년 사이에 집필된 시편들 그리고 유작으로 남겨진 시작품들은 슈테판 게오르게의 특성을 답습한 듯 보인다. 가령 복잡한 문장 구문, 단어 설정 등에서는 신낭만주의적 흔적이 엿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주관적인 시각이 강조되어 있긴 하지만, 명확하게 호디스의 심적 상태를 조명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관한 모티브 내지 이야기 구조 등은 (고전 문학을 공부한 덕택에 씌어진 것인데) 야콥 반 호디스의 시편들의 기본적 골격을 이루고 있다. “페르제우스”, “카르타고”, “모험가” 등의 시가 이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초기의 “신화 시”와 후기의 “신화 시”의 기능은 약간 다르다. 초기 시의 신화적 소재는 전통적 특징과 전통적 상징에 의존하고 있는데 비해서, 후기 시의 신화적 소재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신화적 의미와는 구분되고 있다.

 

1912년 시인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에 종교적 내용을 담은 시들이 많이 씌어졌다. “탄식”, “밤” 그러나 이러한 작품에서 주도적으로 나타나는 정조는 경건함이 아니라, 깊은 내면적 불안이다. 구체적으로 말해 호디스는 플로티노스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용한 “빛”의 의미를 정반대로 사용하고 있다. “어둠은 신의 찬양을 알리기 위해 도사리고/ 기도하는 자는 환호하며, 빛을 떠나 방황한다.”

 

물론 당시대의 시인들 (파울 체히, 테오도르 도이블러, 오스카 뢰르케)은 “빛의 사라짐”, “태양의 하락” 등을 하나의 “위협”으로 묘사한 바 있다. 그러나 야콥 반 호디스는 그것들을 공포와 재앙으로 묘사한다. 이러한 묘사는 고트프리트 벤의 “시체 공시장”에서 표현된 것보다도 더욱 단호하고도 격렬하다.

 

어떤 악마의 웃음이 푸른 하늘에 닦인다

거리에는 메마른 먼지가 고통을 호소한다.“ (「낮」)

 

게오르크 트라클이 “석양”과 “희미한 빛”을 최소한 휴식과 위안으로 받아들인 반면에, 야콥 반 호디스는 그것들을 “자의식의 침해” 내지는 “자신의 의무감 상실”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둠이 깔려드는 적막은 호디스에 의하면 자기의 파멸 내지는 무언가 압도당한다는 느낌을 반영하고 있다. 시인이 오랫동안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 생활을 영위한 것도 모두 자신의 특유한 피해 의식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야콥 반 호디스는 종교적 연민을 담은 체질적으로 여리고 비극적인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게오르크 하임이 야만적이고 힘찬 분위기를 선호했다면, 야콥 반 호디스는 “연하고 풍자적이며 종교적이고도 회의적”인 시를 썼다는 것이다. 호디스는 자신의 소외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다.

 

너는 고독하게 황무지에서 당황한 듯 걸어가고

너무나 거칠고 자랑스레 인간과 욕망을 잡으려 했어.

너는 시방 이곳 가옥에게 감히 물으려 하지 않지.

너를 어린아이로 착각하며 인사하던 꿈에 관해서.

(「오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