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서로박: 부마항쟁과 라보에시 (1)

필자 (匹子) 2021. 6. 16. 19:26

자네 번역은 엉터리야.” 윤노빈 선생님은 1981년 초 부산에서 출국을 앞둔 제자에게 그렇게 일갈하였다. 1980년 5월에 부산의 어느 출판사는 나의 번역서, “보에시, 노예근성에 대하여”를 간행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그 소책자를 거의 잊고 살았다. 1989년 여름, 마치 오디세우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10년간의 방랑을 끝내고 귀국하여 낙향하였다.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까까머리 제자들은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이때 그 소책자가 흩어진 서가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러나 반가움은 하나의 순간적 감정에 불과했다. 소책자를 다시 읽었을 때, 거기서 많은 오역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윤 선생님의 말씀은 엄연한 사실로 확인되고 있었다. 나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학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출간”이라는 만용을 저지른 까닭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회고하건대 나를 파농 (Fanon)처럼 격렬하게 행동하게 한 것은 무엇보다도 당시의 정황이었다. 유신 말기의 독재가 지배하는 현실은 나와 같은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고통과 노여움을 안겨주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함구하며 살고 있었다. 바른 말이 실종된 시대에 우리는 애써 금서만을 접하려고 했다. 오로지 금지된 책들만이 우상에 의해 감추어진 이성을 은밀히 비추어준다고 우리는 믿었다.

 

어느 날 윤 선생님은 우리에게 복사 본 한 권을 빌려주며,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것은 라 보에시의 “자발적 복종”의 독어 판이었다. 우리는 선생님이 건네준 책자를 하나의 “암시”로 받아들였다. 마치 숄 남매가 뮌헨 대학에서 쿠르트 후버 교수와의 상봉으로 백장미 운동을 일으켰던 것처럼, 나 역시 친구들과 함께 윤 선생님이 빌려준 책을 열심히 해독하였다. 때로는 저자의 놀라운 선견지명에 무릎을 치기도 했다. 어느 날 우리는 그것을 출판하기로 결심했다. 이 일이야 말로 독재의 끔찍함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라고 판단하였다.

 

소책자의 표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그대로 실려 있다. “사람들은 어리석기 때문에 항상 독재자를 용서한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그렇게 용서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약 독재자의 잔혹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보다 더 분명한 의식을 지니고 있었더라면, 사람들은 독재자의 잔악무도한 행위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칼리굴라는 어느 여자를 뜨겁게 사랑했고 그녀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고 믿었다. 그녀의 너무나 아름다운 상반신을 바라보면서 칼리굴라는 그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내가 명령만 내리면, 이렇게 아름다운 당신의 목도 단칼에 잘려나갈 것이오.’

 

(...) 이 역시 어째서 많은 고대의 독재자들이 그들의 간신들에 의해서 살해되었는가? 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은 독재 정치의 본질을 알았고, 독재의 권력이 남용되는 만큼, 독재자의 총애 역시 오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도미티아누스는 스테파누스에 의해서, 코모두스는 그의 첩들 가운데 한 사람에 의해서, 카라칼라는 마리누스에 의해서 제각기 살해당했다. 권력의 중심부에서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이는 무엇을 반증해주는가? 독재자는 누구를 사랑하지도, 누구로부터 사랑 받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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